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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문보 Dec 03. 2019

변화의 갈림길 그리고 희망
<포드 V 페라리>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포드 V 페라리> (2019)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영화 <포드 V 페라리> (2019)는 레이싱 영화로 접근하든, 개인과 조직 모두에게 주어진 변화에 관한 실존적인 질문을 다루는 영화로 접근하든 둘 다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대단히 좋은 작품이다. 우선, <포드 V 페라리>가 좋은 레이싱 영화인 이유는 영화의 주요 무대인 르망 24시간 레이스 대회를 포함해 트랙 위를 질주하는 '켄 마일스(크리스찬 베일)'의 시점 숏과 반응 숏을 적절하게 번갈아 가며 활용함으로써 VR 체험을 하는 듯한 인상을 줬기 때문이다. 아울러 트랙 위를 달리는 스포츠카를 담아내는 카메라를 최대한 땅과 밀착해 로우 앵글 숏에 가까운 구도를 형성함으로써 스크린 밖(off-screen)에 있는 관객을 스크린 안(on-screen)으로 끌어들여 7,000 RPM 속도의 세계를 체험할 수 있는 짜릿한 순간을 지속적으로 안겨준다. 그런데 <포드 V 페라리>를 굉장히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후자의 접근법이다. 



이 영화는 얼핏 보면 포드 모터 회사와 페라리의 경쟁처럼 보인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더군다나 포드를 미국(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 그리고 페라리를 이탈리아(제2차 세계대전 유럽 패전국)로 치환한다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60년대에 다시 부딪히는 두 국가 혹은 대륙 간의 자존심 대결로 확대할 수 있다. 그런데 제목의 'V'를 ‘Λ’로 뒤집어 본다면, 이 영화는 포드와 페라리가 변화하는 상황에 동태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지, 아니면 적응할 의지가 있는지를 뒤좇는 영화라고 볼 수 있다. 포드는 포디즘의 문제에 직면하면서 새로운 판매 활로를 찾기 위해 스포츠카 생산에 집중한다. 페라리는 대량 생산보다 상품의 질을 높이는데 고집하는 태도를 놓지 않다가 파산 위기에 직면하면서 인수 합병이라는 변화를 고려한다. 하지만, 사실 두 회사 모두 변화를 받아들이는 척만 한다. 포드는 출전 경험조차 없는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기념비적인 사건과 사진을 남겨 다시 매출을 증가시킬 수 있는 기업 이미지를 만들고, 페라리는 회사를 인수하려는 포드를 이용해 좋지 않은 상황을 진화한다. 제임스 맨골드 감독은 이와 같은 기업의 태도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데, 특히 미국 출신 감독으로서 포드를 집중적으로 겨냥한다. 예를 들어, '켄 마일스'의 입을 빌려 포드의 몰개성을 날카롭게 지적하거나, '캐롤 셸비(맷 데이먼)'과 '헨리 포드 2세(트레이시 레츠)'와의 긴 대화에서 포드의 비효율적인 생산 라인과 거만한 태도라는 또 다른 문제점을 끌어낸다.   



근데, 변화에 관한 실존적인 고민은 개인의 문제와 결부되었을 때 <포드 V 페라리>는 더욱더 풍부하게 발전한다. '캐롤 셸비'는 과거에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우승했지만, 심장 관련 질환으로 선수로서의 생명을 마감하고 스포츠카 제조 회사를 운영한다. 여전히 스포츠카와 함께 하지만 '캐롤 셸비'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은 내면의 궤도 이탈을 경험 중이다. 그리고 자기 본성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살아가는 '캐롤 셸비'는 타인과의 관계에 의지하며 하루하루 연명해 간다. 반면, '켄 마일스'는 타고난 본성을 자각하고 살아가는 인물로 자신의 그런 모습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아들과 아내가 곁에 있기에 행복한 삶을 산다. 하지만, '캐롤 셸비'와 달리 지나치게 외골수의 인물인 '켄 마일스'는 비즈니스를 할 때도 그런 본성을 놓지 못해 결국 파산 직전의 경제적인 위기를 맞이한다. 두 사람은 포드 측에서 제시한 기간 동안 함께 일을 하며 상호 간에 영향을 미친다. '캐롤 셸비'는 서서히 타협적인 태도에 대해 회의감을 느낄뿐더러 타인과의 관계에 의존하지 않고도 본인이 누구인지 스스로 깨닫게 된다. 이전에 '켄 마일스'가 자신에게 던진 렌치를 액자에 보관했다가 나중에 그의 아들 '피터 마일스(노아 주프)'에게 돌려주는 장면이 이를 대변한다. 반면, '켄 마일스'는 지금까지 가족 이외 관계를 맺는 일을 굉장히 힘들어했을 뿐만 아니라 본인이 내세운 가치를 배반하는 타협적인 태도를 꺼려했다. 그렇지만, '켄 마일스'는 르망 24시간 레이스 단독 우승이라는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뿐만 아니라 가족을 위해 중요한 변화를 택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들 '피터 마일스'는 이에 대해 실망감을 표출하지만, 아내 '몰리 마일스(케이트리오나 발피)'가 전혀 그렇지 않다면서 텔레비전으로 남편을 바라보는 대견스러운 표정이 이를 간접적으로 증명한다. 



궁극적으로 <포드 V 페라리>는 조직과 개인에게 변화와 관련된 질문을 부여함으로써 변화의 가치를 의논한다. 물론, 제임스 맨골드 감독은 변화에 따른 결과를 변화의 가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감독은 현재와 미래에 대한 희망은 변화의 갈림길 앞에서 거만한 태도를 보이는 게 아니라 최선의 선택을 내리기 위한 진중한 자세를 잃지 않을 때 생긴다고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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