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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문보 Dec 02. 2019

행복의 언덕(福岡) 위 시간과 치유, <후쿠오카>

장률 감독의 영화 <후쿠오카> (2019)


제45회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장률 감독의 영화 <후쿠오카> (2019)는 대학 시절 연극 동아리 친한 선후배 사이였던 ‘해효(권해효)’와 ‘제문(윤제문)’이 ‘순이’라는 여자 후배 때문에 사이가 멀어지고, 28년 만에 후쿠오카에서 재회하며 벌어지는 며칠간의 이야기다. 후쿠오카(Fukuoka)의 한자 표기명은 ‘福(복 복)’과 ‘岡(산등성이 강)’이 결합된 ‘福岡(복강)’으로, 이는 ‘행복의 언덕’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소담(박소담)’이 두 남자 사이에서 부유하면서 세 인물은 뚜렷한 목적지를 정해두지 않고 후쿠오카의 어딘가를 거니는데, 분명 언덕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지리적인 언덕 대신 관념적인 언덕을 오르내리면서 공간이나 장소에 깃든 시간을 경험하고, 케케묵은 앙금을 서서히 풀기 시작한다. 비록 합리성으로 세 인물의 여정을 이해하기 어렵지만, 보이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순간 이들이 경험하는 행복의 언덕 위 시간을 관객도 마찬가지로 경험할 수 있을 테다.



<후쿠오카>는 관련성이 없는 두 개의 숏을 하나의 신 안에 붙이는 점프 컷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지하에 위치한 헌책방에서 지상으로 나와 걷는 ‘소담’과 ‘제문’이 갑자기 후쿠오카 시내를 걷는 시퀀스부터 시작해 합리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시공간의 이동이 연속적으로 펼쳐진다. 이는 후쿠오카라는 도시에 깃든 행복과 화해의 감정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 긴장을 이완하려는 영화적 장치다. 아울러 “우린 너무 긴장하고 살아가니까”라는 ‘소담’의 말처럼 무언가를 경계선을 기준으로 나누려는 사고 및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부수기 위한 노력은 언어의 사용에서도 드러난다. ‘소담’이 지나가던 일본인에게 길을 묻는 장면, 놀이터 벤치에 앉아 우는 중국인과 대화는 장면, 그리고 ‘유키(야마모토 유키)’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살펴보면 분명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여기서는 인물들이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해도 소통이 가능하다. 이와 같은 설정을 통해 장률 감독은 인물들이 서 있는 혹은 앉아 있는 공간에 배어든 감정을 경험하는 시간을 프레임 안에 담아내는데 집중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후반부 ‘소담’과 ‘유키’의 키스는 대상화할 수 없는 경험, 인상 그리고 감정에 관한 하나의 이미지로 해석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후쿠오카>는 인물들의 내면에 자리를 잡는 따뜻한 감정을 포착하기 위해 핸드헬드 카메라 사용을 고수한다. 일반적으로 핸드헬드 카메라는 사실적인 분위기를 담아내기 위해 사용되지만, 이 영화에서는 세 인물 각자의 내면에 서정이 형성되고 있음을 미세한 흔들림으로 표현하기 위해 핸드헬드 카메라를 고집한다. 예를 들어, 시종일관 유지되는 흔들림은 처음에 탐탁지 않았지만,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상대방을 거울로 삼아 본인의 자화상을 그려보는 ‘해효’와 ‘제문’의 내면을 시각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또한, 카메라의 흔들림은 윤동주 시인의 시 ‘사랑의 전당’을 들으면서 28년 전 일을 다시 생각해보기 시작한 ‘해효’와 ‘제문’의 미묘한 내면의 동요가 카메라에 체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게다가, 정전 때문에 시작된 촛불 시퀀스에 사용된 핸드헬드 카메라는 변화하는 흔들림의 크기를 통해 내적 치유의 절정을 효과적으로 포착해낸다. ‘소담’의 제안으로 촛불 하나를 앞에 둔 채 세 인물은 ‘순이’와의 관계를 상기하며 연극을 시작한다. 도중에 전기가 다시 들어오자 세 인물은 연극을 멈췄지만, 촛불을 누가 먼저 끄는지 시합하면서 처음으로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는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작아지는 흔들림은 ‘해효’와 ‘제문’ 간의 감정적인 간극이 점점 메워지고 있음을, ‘소담’의 경우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느꼈던 고립감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이렇게 세 인물 각자의 내면적 궤도는 원래 자리로 돌아오며 흐름을 회복하는 동시에 성숙해진다.



후반부에 세 인물은 ‘해효’의 술집에서 보이는 철탑의 옥상으로 올라간다. 그곳에서 이들은 또 다른 시선으로 시내를 내려다보는데, <후쿠오카>가 인간과의 접촉으로 생긴 공간의 인상과 경험을 다룬다는 점에서 이는 이들이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때 ‘소담’은 아무도 없는 ‘제문’의 책방에 전화를 거는데, 그 책방에 ‘제문’과 ‘해효’가 나타난다. 점프 컷으로 완성된 이 시퀀스는 28년 전 사건으로 궤도에 이탈했던 두 인물의 시간이 비로소 회복되었음을 이야기한다. 이뿐만 아니라 후반부에 다시 등장한 지하 공간을 따뜻하게 만드는 한지등 불빛을 고려한다면, 지하에 머물렀던 시선이 지상으로 나와 새로운 경험을 하고, 원래 자리로 돌아와 지하 공간에 며칠 동안 펼쳐진 여정을 들려주는 의인화된 장면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후쿠오카>는 비록 합리성의 영역에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지만, 오히려 비합리성이 안기는 긴장의 이완 덕분에 내면적 치유를 느낄 수 있는 경험의 영화라고 정리할 수 있다.



* 해당 글의 원문은 아트렉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artlecture.com/article/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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