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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문보 Mar 17. 2020

현실과의 유리(遊離): 영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15주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개막작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 참전과 패배로 정치, 경제, 사회 등 국가를 이루는 여러 기반이 극심하게 흔들리는 경험을 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조기 종전을 확신했던 독일 정부는 막대한 전쟁 비용을 국채 발행으로 충당하기로 했으며, 이는 전쟁의 패배와 함께 독일을 거세게 뒤흔드는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되돌아왔다. 특히, 국민들은 직접 소유하고 있거나 은행에 맡겨 놓은 화폐가 벽지나 땔감으로 사용되는 현실을 살아가며 공포와 좌절을 느꼈을 뿐만 아니라, 물질적 및 정신적 결핍과 기존 가치관의 붕괴를 겪으며 사회에 만연히 퍼진 불안에 묶여 지냈다. 그러나 독일 정부는 이와 같은 불안을 잠재울 여력을 갖고 있지 못했다. 독일은 종전 후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전쟁배상금을 승전국에 지급해야 할 상황에 부닥쳤을뿐더러, 파괴된 생산시설 복구 등 예산을 투입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하이퍼인플레이션이라는 문제까지 더해지며 국민은 국가의 부실한 방침 때문에 더 깊은 불안에 무방비로 노출되었고, 이는 현실을 외면하게 했다. 이때 인간의 내면, 즉 현실과의 유리(遊離)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주목하는 독일 표현주의 영화 사조가 등장했다. 



로베르트 비네 감독의 영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1920)은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대표작이다. 독일 표현주의 영화는 전통 회화의 균형과 미를 무너뜨리고 왜곡시킨다. 물론 독일 표현주의 영화가 추상적인 게 아니다. 대신 인간의 감정을 작가의 주관적인 관점에서 부각해 형상화한다. 이를 미루어 볼 때,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에서 주인공은 배우들이 연기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영화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무대 미술이라고 할 수 있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은 몽유병자와 망상을 소재로 공포가 어떻게 확산하는지 알 수 없는 미지(未知)에 대한 두려움에 주목한다. “영화는 살아 움직이는 회화여야 한다”라고 주장한 표현주의 무대 미술가 헤르만 바름은 이 영화의 세트 디자이너로서 미지에 관한 공포와 망상 속 세계를 단순한 재현에 그치지 않고 조형적 해석을 거쳐 표현했다. 사각형이 찌그러진 문과 창문, 급격한 내리막길, 산처럼 뾰족하고 불규칙하게 모여있는 건물들, 그리고 채색 기법에 따른 세트 톤의 변화는 부정적인 감정에 의해 무너진 내면을 시각화한 것이다. 극 중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 범죄자의 실체를 명확히 보여주지 않고 그림자의 크기와 움직임을 위주로 묘사하는 것 또한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다. 이에 더해, 인물들의 진한 분장과 지나친 표정은 시각화 작업을 보조하며 당시 독일 국민의 비틀어진 내면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근데,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은 이야기 구조와 장면 전환기법에도 신경 쓴 작품이다. 이야기 구조부터 살피자면, 영화는 ‘프란시스’가 벤치에 같이 앉은 상대방에게 칼리가리 박사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시작하고, 6막이 시작되기 전까지 액자 구조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회상 장면이 전개되기 전에 ‘프란시스’는 1인칭 시점에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입장이었지만, 플래시백 장면에서는 3인칭 시점으로 이동한다. 액자 구조는 바깥 이야기 안에 있는 내부 이야기에 진실성을 입히기 위해 이용된다. 이때 진실성은 내부 이야기를 사실인 것처럼 느끼게 혹은 착각하게 만드는 작업을 가리킨다. 따라서, 1인칭에서 3인칭 시점으로 이동한 ‘프란시스’의 이야기는 실재적인 경험처럼 들리지만, 실은 6막에서 이 모든 것이 ‘프란시스’의 망상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에 덧붙여, 이 영화의 핵심 장면 전환기법인 아이리스인(iris in)과 아이리스아웃(iris out)은 관객이 화면의 중앙이자 망상 세계의 중심에 두 눈을 고정하게 만든다. ‘iris’는 ‘홍채’라는 뜻을 갖고 있지만, 여기서는 ‘조리개’를 가리키며, 아이리스인은 화면 중앙의 한 점에서 이미지가 원형으로 펼쳐져 프레임을 채우는 장면 전환기법을, 아이리스아웃은 정반대로 프레임을 가득 채운 이미지가 화면 중앙의 한 점으로 사그라지는 장면 전환기법이다. 화면 중심에서 점과 이미지가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므로 관객은 저절로 그 세계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끝으로 영화는 정신병원 원장 ‘칼리가리’ 박사의 웃음과 함께 종결된다. 열린 결말이기에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에 관한 해석이 다양하게 나올 수 있다. 그렇지만, 불안과 초조함이 전염병처럼 퍼지게 하는 미지의 대상을 현실에서 찾지 못하고 망상에 의존하는 ‘프란시스’의 모습을 고려하자면, 이 영화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시민들의 내면이 얼마나 심하게 초토화되었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임은 분명하다. 



* 해당 글의 원문은 아트렉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artlecture.com/article/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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