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승문보 Jun 17. 2020

영화 <사냥의 시간> (2020)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베를리날레 스페셜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베를리날레 스페셜’에 초청됐던 영화 <사냥의 시간> (2020)은 출소하는 ‘준석(이제훈)’을 마중하러 차를 몰고 가는 ‘기훈(최우식)’과 ‘장호(안재홍)’의 장면으로 시작한다. 두 인물이 편의점에서 나오면, 관객이 마주하는 대한민국은 경제가 붕괴된 사이버펑크 세계다. 소위 ‘헬조선’의 특징을 모아 그려낸 대한민국의 가상 미래이지만, 이 세계는 넷플릭스로 <사냥의 시간>을 보는 사람뿐만 아니라 극 중 청년 캐릭터들에게도 낯설다. 왜냐하면 붉은빛이 감도는 세계에서 청년들은 유령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자비에 돌란의 영화 <탐엣더팜> (2013), <단지 세상의 끝> (2016) 등의 오프닝 시퀀스를 떠올려 보면, 주인공이 등장할 때 그의 시점 숏과 동선을 보여주는 숏을 결합함으로써 주인공을 외지인 혹은 유령의 포지션에 위치시킨다. 이에 한 프레임에 시간이 하나로 흐르는 게 아니라, 핵심 인물의 시간과 주변 인물의 시간으로 나뉘어 흘러간다. 그러나 두 갈래로 쪼개진 시간이 섞인다고 단정할 수 없다. 이렇게 <사냥의 시간>의 시간과 이미지는 파악하기 어려운 층으로 이뤄진다.



이런 세계관에서 청년들은 본인들이 왜 사냥을 당하는지, 사냥을 하는지 모른 채 시간을 보낸다. 그 과정에서 청년들은 상황과 관계에 의한 내면의 변화를 경험한다. 특히, ‘준석’은 본인이 저지른 가해와 입은 피해로 인해 죄의식과 트라우마 사이에서 갇힌다. 청년의 내면, 죄의식, 트라우마, 그리고 관계는 단편영화 <아이들> (2008), 장편영화 <파수꾼> (2010) 등 윤성현 감독의 영화 세계에서 핵심 테마다. <사냥의 시간>은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은 작품이다. 다만, 방대해진 세계관 안에 핵심 테마를 늘어뜨린 후 매듭을 짓지 않았다. 시간이 흘렀음에도 타국에서 여전히 유령의 포지션에 머무르는 ‘준석’의 모습만 보여줬을 뿐이다. 그래서 <사냥의 시간>은 윤성현 감독의 영화라는 것을 알고 보는 사람에게는 실망스럽고, 이 정보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흥미를 붙이고 싶지 않은 작품일 테다. 그렇지만, <사냥의 시간>이 갈기갈기 찢어질 정도인지는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규정하지 않는다: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