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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문보 Aug 25. 2020

영화 <웬디와 루시> (2008)


영화 <델마와 루이스> (1991)가 있긴 하지만, 기실 버디 무비는 남성 인물들의 우정을 다뤘고, 서로가 파트너를 격려하면서 역경을 끝내 이겨내는 영화다. 켈리 레이차트 감독의 영화 <웬디와 루시> (2008)는 이와 같은 특징을 변용한 작품이다. 주인공 웬디(미셸 윌리엄스)는 일자리를 얻으려고 그녀의 반려견이자 친구인 루시와 함께 알래스카로 향한다. 그런데 웬디는 자동차가 고장 나서 오리건 주에 발이 묶인다. 가진 게 본인 옷뿐인 웬디는 루시의 식량이 떨어지자 근처 마켓에서 도둑질을 하다가 직원에게 걸린다. 설상가상으로 마켓 앞에 있던 루시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웬디는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알래스카로 다시 향하려고 애쓴다. 그렇지만, 그럴수록 웬디는 오리건 주를 벗어나기는커녕 기계적 공정으로 인한 문제, 관료주의적 조치로 인한 문제 등을 마주한다. 



켈리 레이차트 감독은 이런 현실을 웬디의 반응 숏으로 보여주기도 하지만, 트래킹 숏, 롱 숏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가난한 자를 더 빈곤하게 만드는 현상(現狀)과 상황을 또렷이 담는다. 아울러 주인공의 환경을 다른 사람의 환경과 대조시킴으로써, 즉 인물이 아닌 환경을 영화의 얼굴로 삼아서 우정이 자본주의 시대에서 삶의 희망이 되기 힘든 현실을 그려낸다. 끝으로 영화는 알래스카에 도착하지 않은 채 끝맺는다. 가난한 자의 행복을 허락하지 않는 세계를 이상하리만큼 침착하게 건조한 공기를 머금은 채로 말이다. 이는 버디 무비의 전형적인 결말이 쉽게 증발될 희망이자, 웬디의 세상을 시종일관 관망한 결과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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