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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문보 Aug 29. 2020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 영화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

'이탈리아 젊은 거장' 특별 상영(씨네큐브 광화문)


피에로 메시나 감독의 영화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 (2015)은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를 어떻게 접근하고 받아들일 것인가를 다루는 작품이다. 영화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와 힘없이 쓰러진 채 예수를 비통하게 쳐다보는 성모 마리아의 조각상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이어서 아들 쥬세페(조반니 안찰도)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며 허공을 응시하는 안나(줄리엣 비노쉬)의 모습이 나온다. 그녀의 표정이 조각상에 상응하면서, 아들을 잃은 비극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함축적으로 묘사된다. 슬픔에 잠겨 어두운 공간에 홀로 누워 있던 안나는 아들의 여자친구 잔(루 드 라쥬)으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잔은 쥬세페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모르며, 안나는 아들의 죽음을 비밀로 묻어 두고 잔을 시칠리아로 초대한다. 공항으로 장면이 전환되고, 각자 짐을 갖고 무빙워크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무빙워크의 방향과 반대로 서서 이동하는 사람들이 먼저 나오고, 그다음에 정방향으로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무빙워크 장면을 시간의 역행과 순행으로 살펴본다면, 이는 현재에서 과거로 시간을 거슬러서 비극을 바로잡으려는 안나의 이야기를 암시한다. 더 나아가, 오르페우스 신화로 접근한다면, 역방향으로 서 있는 사람은 에우리디케, 정뱡향으로 서 있는 사람은 오르페우스라고 볼 수 있다. 즉,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은 망자가 된 아들을 현세로 데려오려는 엄마에 관한 영화이다.



쥬세페가 사망한 후, 무거운 침묵이 대저택을 내리누른다.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의 저택은 단순히 어떤 분위기를 담아내는 기능만을 맡지 않는다.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의 영화 <사랑의 시대> (2016)를 떠올려 보자. <사랑의 시대>에서 저택이 주요 공간으로 묘사되는데,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없는 저택은 코뮌(commune)을 시도했다가 실패를 경험하고, 그로 인해 서서히 무너져가는 주인공의 내면을 비춘다. 이처럼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에서도 집은 심연으로 꺼져 들어가는 안나의 내면을 투사한다. 장례식 기간에 안나는 피에트로(조르지오 콜란젤리)에게 부탁을 해서 창문을 나무판자로 가리고, 벽에 걸린 화폭들을 검은 천으로 덮는다. 마치 이 집에 영원히 살지 않을 것처럼 말이다. 빛과 인위적으로 단절된 저택은 안나의 애수가 자신을 고립시키고 싶을 정도로 헤아릴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안나는 죽은 쥬세페의 손을 놓아줄 용기가 없다. 그 대신 안나는 기적적으로 부활절에 아들과 상봉할 수 있다는 종교적 믿음을 갖게 된다. 따라서 안나는 어둠에 잠몰하는 스스로를 일으키고, 영화는 반응 숏을 활용함으로써 어둠과 하나가 될 뻔한 그녀의 얼굴을 수면 위로 떠오르듯이 그려낸다.



안나의 초대를 받은 잔은 저택에 도착한다. 하지만, 안나는 바로 잔을 맞이하지 않는다. 안나는 잔이 쥬세페의 핸드폰에 남긴 음성 메시지를 확인하며 조용히 돌아다닌다. 아들의 동선을 상상하며 걷다가, 안나는 짐을 풀고 옷을 갈아입는 잔을 문틈으로 엿본다. 안나의 시점 숏에서 카메라는 잔을 놓치지 않는데, 아들의 여자친구에게서 아들의 흔적을 발견하려는 안나의 간절함이 투영된 것처럼 느껴진다. 이후에 잔이 쥬세페를 찾기 위해 어디론가 떠나려 할 때마다 안나는 계속 거짓말을 하며 시칠리아를 떠나지 못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안나는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예수가 다시 살아남았듯이 쥬세페도 부활절에 현세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믿음이 실현되려면 잔을 매개로 끊임없이 아들의 흔적을 더듬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치 에우리디케에 대한 그리움을 이기지 못하고, 그녀를 찾아 저승으로 내려가는 오르페우스의 여정과 같다. 안나는 매일 잔과 시간을 함께 보내며 쥬세페와 관련된 대화를 이끌어낸다. 그리고 자기도 몰랐던 아들의 비밀을 알거나, 아들과 비슷한 면모를 발견할 때마다 안나는 미소를 짓는다. 아울러 안나는 부활절이 오면 아들을 저승에서 이승으로 데려올 수 있다는 희망을 확신한다.



그렇지만 부활절 당일 아침,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고, 안나는 좌절한다. 그리고 안나는 식탁에 앉아 잔에게 침착하게 말을 꺼낸다. 잔은 이에 반응하며 대화가 이어지도록 만든다. 표면적으로 두 사람의 대화는 자연스럽다. 그러나 상황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이 대화가 실질적으로 안나와 안나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안나의 발화(發話)는 그녀의 이성으로, 쥬세페를 완전히 떠나보내고 앞으로 펼쳐질 삶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와 달리, 잔의 반응은 안나의 감정으로, 쥬세페가 존재하지 않은 세상을 부정하려 한다. 이성과 감정의 충돌 사이에서 안나는 쥬세페의 망령을 보기 시작한다. 안나는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밤에 망령과 함께 부활절 행사가 열리는 도시로 외출한다. 하지만, 오르페우스가 고개를 돌렸을 때 에우리디케가 지하로 떨어져서 사라진 것처럼, 행사 도중에 안나가 고개를 돌리자 쥬세페의 망령이 영멸한다.



여태껏 안나는 종교적인 믿음과 기대로 아들과의 이별을 지연했었다. 그런데 되레 부활절은 현실에 대한 감각을 회복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다음 날 아침, 안나는 귀가하고, 잔은 그녀를 안아준 후 일상생활로 돌아간다. 안나는 그렇게 다시 혼자가 된다. 근데, 그녀는 마음의 문을 닫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영화 초반부와 달리 창문은 빛이 내부를 밝힐 수 있도록 열려 있고, 화폭들을 덮었던 검은 천이 걷혔기 때문이다. 아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사그라지지 않겠지만, 안나도 잔처럼 일상생활로 복귀하여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나갈 테다. 결국,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은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슬픔과 고독만 있는 게 아니라, 상황을 받아들이고 앞으로의 삶에 집중하는 거라고 말하는 영화이다.



* 해당 글의 원문은 아트렉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artlecture.com/article/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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