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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문보 Oct 31. 2020

빛과 어둠의 영혼: <본 투 비 블루> (2015)

씨네큐브 기획전 'MUSIC IN THEATER' 상영작


0.

토드 헤인즈 감독의 <아임 낫 데어> (2007)는 미국의 포크 록(folk rock) 가수 ‘밥 딜런’의 삶보다 그의 정체성과 음악적 영혼에 초점을 두었다. 제40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 초청됐던 로버트 뷔드로 감독의 <본 투 비 블루> (2015)도 궤를 같이한다. <본 투 비 블루>는 재즈 역사에서 전설적인 인물로 뽑히는 ‘쳇 베이커’를 다룬다. 영화가 다루는 시기는 1950년대와 1960년대로 특정되었고, 그 시기에 쳇 베이커가 겪은 일련의 사건을 재구성하여 그의 명암의 영혼을 관객에게 음악으로 들려준다. 그리고 음악에 소양이 밝기로 유명한 에단 호크가 쳇 베이커의 빛과 어둠을 연기한다. 쳇 베이커의 오랜 팬인 에단 호크는 그의 삶을 영화화하려고 했었다. 대략 20년 전, 에단 호크는 <보이 후드> (2014)와 ‘비포 시리즈’를 통해 호흡을 맞춘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과 함께 쳇 베이커의 일생을 다루는 영화를 만들려고 했지만, 프로젝트는 안타깝게도 무산되었다. 하지만, 에단 호크는 로버트 뷔드로 감독에게서 <본 투 비 블루> 출연 제안을 받으며 못다 한 꿈을 이루게 되었다.



Ⅰ.

보편적으로 전기 영화는 픽션적인 요소를 가미해 실존 인물을 다룬다. 그런데 <본 투 비 블루>에서 허구적인 요소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역할을 한다. 쳇 베이커(에단 호크)가 정상에서 내려온 후, 재기하고자 땀방울을 흘리는 이야기와 뉴욕으로 복귀해서 연주하는 장면은 실제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영화가 다루는 시기에 실제로 쳇 베이커에게 세 번째 부인이 있었지만, 로버트 뷔드로는 이런 사실을 과감히 삭제한다. 대신에 제인(카르멘 에조고)이라는 가상 인물을 창조한다. 아울러 쳇 베어커는 1960년에 이탈리아에 갇혔지만, 극 중에서는 1966년으로 시기가 미뤄졌다. 이와 같은 조작은 실존 인물의 생애를 단순 나열식으로 접근하지 않겠다는 감독의 의지이자 관객에게 입체적인 체험을 선사하기 위한 영화적 장치이다. 정리하자면, 실재와 허구를 공존시키는 것은 모든 걸 잃고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아티스트의 영혼에 철저히 집중하기 위함과 유관하다.



Ⅱ.

<본 투 비 블루>에서 주목해야 하는 대상은 ‘마약’과 ‘제인’이다 쳇 베이커에게 마약은 어둠이라면, 제인은 빛에 상응한다. 극 중에서 쳇 베이커는 음악성과 스타성을 바탕으로 승승장구하고 있었으나, 마일스 데이비스(케달 브라운)라는 큰 벽에 부딪혔다. 쳇 베이커에게 마일스 데이비스는 단순한 라이벌 관계가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직접 증명해야 하는 재즈의 거장이다. 그로 인한 부담감이 스트레스로 변질되었고, 결국 쳇 베이커는 마약에 빠져들며 어둠 속으로 자신을 숨겼던 것이다. 반면, 제인은 그가 폭행 사건으로 치아를 잃고 재기를 위해 부단히 노력할 때 곁을 묵묵히 지키는, 즉 등대와 같은 존재의 인물이다. 그렇지만, 쳇 베이커의 선택은 어둠이었다. 역경을 이겨냈지만, 마일스 데이비스 앞에 다시 서자 부담감은 일종의 질병처럼 재발했고, 다시 쳇 베이커를 옳지 않은 길로 내몰았다. 쳇 베이커의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 연주를 듣자마자 제인은 직감적으로 그의 최종 선택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공연장에서 조용히 증발한다. 엔딩 크레딧에서 알 수 있듯이, 어둠을 택한 쳇 베이커는 이후 유럽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암스테르담에서 추락사로 생을 마감한다.



Ⅲ.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멜랑콜리아> (2011)에서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서곡이 삽입된다. 이 서곡에는 계속 반음계적인 선율을 배치해 긴장감을 조성하지만, 이후 현상(現狀)을 유지하는 ‘트리스탄 화음’이 있다. ‘트리스탄 화음’은 라스 폰 트리에가 말하고자 하는 우울증을 표현하는 장치이다. 이처럼 <본 투 비 블루>에서 쳇 베이커는 의도적으로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 「My Funny Valentine」, 그리고 「Born to be Blue」를 삽입하여 의도대로 쳇 베이커의 갈등과 그가 내린 결정을 그려낸다. 쳇 베이커는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의 가사처럼 누군가에게 애틋함과 사랑의 감정을 느꼈지만, 빛을 상징하는 「My Funny Valentine」과 어둠을 가리키는 「Born to be Blue」에서 내적 갈등을 겪는다. 분명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와 「My Funny Valentine」에서 쳇 베이커가 자신을 도와달라는 신호를 보낸 흔적을 확인할 수 있지만, 영화 제목이 두 곡의 제목이 아닌 「Born to be Blue」라는 점에서 그가 우울함의 영향 아래에서 끝끝내 벗어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마지막 곡을 연주할 때 대립하는 쳇 베이커의 부드러운 손짓과 우수에 찬 눈빛은 그의 안타까운 영혼을 직조한다.



* 해당 글의 전문은 아트렉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artlecture.com/article/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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