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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문보 Mar 04. 2018

사랑을 상실한 사회를 고하다  <러브리스>

사랑을 떠들어대지만 사랑을 상실해 가는 현대 사회에 대하여



<리바이어던> (2014)으로 제67회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감독은 <러브리스> (2017)라는 작품으로 제70회 칸 영화재애 참석하고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감독은 <리바이어던>에서는 현실 세계 속 권력의 잔인함을 그려냈다면, 이번 <러브리스>에서는 한 가정을 중심으로 사랑을 떠들어대지만 역설적으로 사랑을 상실해 가는 현대 사회를 묘사했다.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감독은 간편하게 쾌락을 추구하고 SNS로 행복한 척 혹은 사랑받은 척하고, 타인의 행복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오로지 자신만의 행복에만 관심을 갖는 이기적인 현대사회를 굉장히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부모의 사랑을 전혀 받지 못하는 아이를 지속적으로 화면의 중앙에 고정시킴으로써 영화는 이 세상에서 사랑은 상실되었음을 혹은 사랑의 시대가 종말 되었음을 고한다.



사랑으로 이뤄지지 않은 가정, 오로지 서로에 대한 끝없는 증오로 가득 차다


12살 소년 알료사(마트베이 노비코프)의 집은 오직 증오로만 채워져 있다. 왜냐하면 제냐(마리아나 스피바크)는 원치 않는 임신으로 보리스(알렉세이 로진)의 아이를 낳았고 그와 가정을 꾸렸기 때문이다.  제냐는 자신의 엄마처럼 자식을 사랑하지 않고 심지어 역겹다고 하는 악마 같은 부모이며, 보리스는 회사 상사의 마음에 들기 위해 그저 눈치를 보고 실제로 알료사에게는 무관심한 부모이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이혼 후 각자 지금 연애 중인 연인과 새로운 가정을 차리는 것이다. 그래서 제냐와 보리스는 이혼을 앞두고 있는 상태이며 양육 문제를 서로에게 떠넘기려고 한다. 공교롭게 자신을 돌보지 않으려는 부모의 말을 들은 알료샤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충격에 빠졌고 어두운 방구석에서 소리 내지 않고 오열을 한다. 사랑이 없는 알료사의 집 안은 건조한 공기를 넘어 메마른 공기로만 꽉꽊 메워져 있으며, 그 메마른 공기는 알료사뿐만 아니라 관객들이 노골적으로 증오감을 느끼고 몸을 떨게 만든다. 깊은 슬픔의 바다에 빠진 알료사는 절대로 헤에나오지 못하고 제냐와 보리스가 집을 비운 사이 갑자기 사라졌고,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두 사람은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한다.



실종된 아이를 찾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지만...


아이가 사라졌을 때 제냐와 보리스는 단순히 가출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자 경찰에게 신고한다. 하지만, 이들이 진심으로 알료사를 찾고 싶은지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제냐는 절대로 손에서 스마트 폰을 놓지 않고 직장 동료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며 자신의 행복을 알리느라 바쁜 동시에 남자 친구와 사랑을 나누는 데에 정신이 팔려있으며, 보리스는 정작 자신이 꾸린 가정에는 무관심하면서 자신의 아기를 임신한 애인과 새 가정을 꾸리는 일에만 신경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경찰에 신고하고, 자원봉사단체에 도움을 요청하고, 심지어 그동안 뵙지 않았던 친정어머니에게 연락을 한 것도 아들을 사랑해서가 아닌 그냥 부모라는 자격 때문에 혹은 세상의 낯 뜨거운 시선이 신경 쓰여서 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아들이 아닌 다른 아이의 시체를 부검실에서 확인하고 난 뒤 오열하고 화를 내는 두 사람의 모습은 사랑을 기반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으로 인해 그저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데, 실종된 아이를 수색하는 과정에서 영화는 사랑을 상실한 가정에서 사랑이 메마르고 있는 사회의 흔적을 조명하기 시작한다. 우선, TV 뉴스나 라디오 너머로 러시아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이 들린다.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 반군을 계속 지원하는 러시아가 전쟁에 개입하여 우크라이나를 폭격했다는 소식이 전달되었고, 정치인이 불법 자금을 수수했다는 소식이 들리기도 한다. 타국의 평화와 안녕을 묵살해버리는 국가의 태도와 국민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에만 눈이 먼 사람들의 태도는 사회에서 자취를 감춘 사랑의 현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게다가, 국가 사회의 공공질서와 안녕을 보장하고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경찰들은 자신들의 임무를 성실히 해내기는커녕 무심하게 실종 신고의 절차를 읊을 뿐만 아니라 자원봉사단체에게 일을 떠미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인다. 직업정신을 망각하고 국민을 생각하는 마음이 없는 경찰들마저도 사랑이 메마른 사회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실종된 아이를 찾지 못하고 긴 시간이 흘렀다


알료사의 친구 증언으로 자원봉사단체, 경찰, 그리고 보리스는 알료사를 찾을 가능성이 있는 폐허가 된 건물과 숲으로 향한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알료사를 찾지 못한다. 긴 시간이 지난 뒤, 제냐와 보리스는 각자 새로운 가정을 꾸린다. 그러나, 이들의 얼굴에서는 예전과 별반 다를 게 없는 표정이 감지된다. 제냐는 사귈 때와 달리 새 남편과 육체적인 관계를 맺기는커녕 정적이 흐른 채 같이 생활을 한다. 보리스는 새 아내의 집에서 그녀가 출산한 아이와 함께 가족을 형성한다. 그러나, 그는 어린 자식의 장난을 받아주지 않고 오히려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아이를 아기 침대에 두고 방치한다. 사랑이 없는 가정을 꾸렸던 두 사람은 사랑을 찾아 헤어졌지만, 그들은 이미 사랑 없는 공기에 오염되었고 그저 새 가정에 그 공기를 전염시킨다. 이뿐만 아니라 그들은 그렇게 실종된 아들 알료사를 잊은 채 살아간다. 더 나아가, 위협이 도사리는 현실을 간접적으로 목격한다. 우크라이나 폭격을 자행한 러시아가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폭격을 진행 중이었고 이번에는 수많은 사상자를 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결론적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사회는 사랑을 회복하기보다 잃어가고 우울함, 죽음, 전쟁, 국권 침해 등 위협으로 뒤덮어졌다. 어쩌면, 조만간 지구가 사랑이 종말 했음을 선언할까 봐 걱정과 불안 속에 우리는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건 나뭇잎이 다 떨어진 황량한 숲 혹은 폐허가 된 건물이지 아닐까 싶다.



현대 사회에서 매체와 SNS가 발달하면서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들의 행복한 사진을 보기도 하지만 우리가 행복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려고 한다. 하지만, <러브리스>는 가상 세계에 푹 빠진 우리의 시선을 현실 세계로 돌리고 과연 현대 사회는 사랑으로 가득 찬 사회인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진짜로 우리는 사랑을 외치고 진짜로 나뿐만 아니라 타인을 사랑하고 있는지, 아니면 사랑을 주구 창창 떠들어대지만 사랑을 상실하고 종말을 외칠 것 같은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 심각하게 되돌아본다. 이기적인 사회가 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상실의 시대가 앞당겨지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가 갖춰야 할 태도를 절실하게 성찰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 영화로 깨닫기를 바란다.



* 해당글은 아트렉처에 발행한 글과 동일합니다: https://artlecture.com/article/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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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8.03.02 (CGV 아카데미 기획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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