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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문보 Jul 23. 2018

미쟝센은 좋았지만, 클리셰 범벅인 <인랑>

'인간의 탈을 쓴 늑대'의 탈을 쓴 인간



김지운 감독은 <장화, 홍련> (2003),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2008), <악마를 보았다> (2010), <밀정> (2016) 등을 통해 하나의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본인만의 스타일을 드러냈다.  그래서, SF, 액션, 누아르, 그리고 스파이 장르가 복합적으로 섞인 <인랑>을 기대했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인랑>은 원작 애니메이션의 강화복 디자인과 영화의 주요 공간인 지하 수로를 섬세하게 제작함으로써 보편적인 일본 실사판 영화를 엄청나게 압도하는 미쟝센을 구축했다. 이러한 미쟝센은 <블레이드 러너> 시리즈에 드러나는 극도로 건조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인랑>은 복합장르의 재미를 선사하기는커녕, 혼돈기로 그려진 미래에서도 놓치지 않으려는 희망을 전달할 때 남녀 간의 멜로 코드를 결국 삽입함으로써 극의 몰입을 방해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인랑>의 배경과 주제의식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남북한 정부가 통일준비 5개년 계획을 선포하자 이를 위협으로 인식한 강대국들이 한반도에 경제 제재를 가하면서 맞이하게 된 혼돈기, 2029년이다. 민생이 어려워지면서 통일에 반대하는 반정부 무장테러단체 '섹트'가 등장하고, 이 집단을 진압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의 새로운 경찰 조직 '특기대'가 조직되고 남한의 주도권을 잡는다. 반면, '공안부'는 권력을 다시 장악하기 위해 '특기대'를 없앨 책략을 꾸민다. 이와 같이 2029년 한반도는 국외 정세로 인해 이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두 세력 사이의 권력 싸움으로 인해 점점 피비린내로 가득해진다. 그런데, '특기대'와 '공안부'의 눈에 보이지 않은 권력 다툼이 진행되는 과정 중에 '특기대' 내에 '인랑'이라는 비밀조직이 존재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인랑'은 늑대의 탈을 쓴 인간이 아닌 인간의 탈을 쓴 늑대라고 불릴 만큼 냉혈 할뿐더러 인간성이 소거된 존재로 그려진다. 그리고, 내레이션으로 삽입된 '빨간 망토' 이야기는 등장인물의 관계를 암시한다. 이렇게 누구도 신뢰할 수 없는 <인랑>의 시대 및 공간적 배경은 <블레이드 러너>를 연상케 하는 건조한 분위기로 가득 찬다. 죽음의 그림자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2029년 한국 사회를 통해 김지운 감독은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생각함으로써 미래를 맞아야 함을 주장한다. 즉, 인간에게 미래는 과거와 현재와 온전히 독립할 수 없으므로, 이를 잊지 않되 본인이 가고자 하는 길을 걸으면서 일련의 희망을 잃지 말자는 생각이 이 영화를 지배하고 있다.



과연 <인랑>은 주제의식을 전달하는 데 성공했는가?


하지만,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주제의식을 잘 전했는지 의심스럽다. 인간성을 성찰하기 위한 여건을 마련했지만, 다양한 장르 영화의 요소와 재미들을 한 영화 안에 담으려는 욕심으로 인해 미쟝센은 뛰어나지만 안타깝게도 클리셰 범벅에 그친다. 임중경(강동원)과 이윤희(한효주)의 만남의 시작은 순수함과 거리가 멀다. 두 사람의 만남은 절대 권력기관 간의 싸움 과정에서 진행되는 책략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남산 케이블 카 장면 이후 진행되는 2인 구도 장면은 설마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의 기류가 점차 흐르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불안감을 야기한다. 작전을 위해 접촉했지만 점차 적을 사랑하게 된 에피소드는 이안 감독의 <색계> (2007)나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얼라이드> (2017) 등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낯익다.



이뿐만 아니라,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임중경에게 같이 새로운 곳으로 떠나자고, 그리고 자신의 진심을 고백하는 이윤희의 대사는 이 영화의 장르가 로맨스라고 잠깐 착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클리셰의 정점을 찍은 장면은 후반부에서의 임중경과 장진태(정우성)의 2인 구도 장면이다. 이윤희를 처리하는 방법에 대해 대립하게 된 두 사람은 일대일 대결을 하게 되는데, 임중경은 앞으로 늑대의 삶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 등을 돌린다. 이때 장진태는 임중경에게 총을 겨눴고, 울리는 총성과 함께 장면은 페이드 아웃으로 마무리된다. 비록 두 사람의 2인 구도 장면이 페이드 아웃이 되어 일대일 대결의 결말을 직접적으로 알 수 없지만, 꽤나 영화를 즐겨 본 사람이라면 그다음 장면에서 임중경의 생사를 아주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페이드 아웃 처리된 장면은 관객에게 상상의 여지를 주기는커녕, 그저 뻔한 클리셰가 되어 미쟝센과 사운드가 준 재미를 마지막까지 반감시킨다.



그나마 <인랑>의 엔딩이 스콧 쿠퍼 감독이 연출한 <몬태나> (2017)를 따라가지 않아 정말 다행이었다. <몬태나>는 조셉 J. 블로커 대위(크리스찬 베일)는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는 로잘리 퀘이드(로자먼드 파이크)와 인디언 소년이 탑승한 기차를 떠나보내는 척하다가 결국 그 기차에 오르면서 끝난다. 만약, 임중경이 이윤희와 그녀의 동생이 탑승한 신의주행 기차를 바라보다가 조셉과 같은 모습을 보였더라면, <인랑>이 다루고자 했던 일련의 희망 혹은 남아있는 인간성은 진부함에 의해 완전히 가려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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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8.07.20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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