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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송 Aug 24. 2019

의사들은 뭐가 그렇게 다른데요

드라마 <라이프>

“의사들이 일반 회사원하고 같습니까!” “그럼 뭐가 그렇게 다른데요.”

병을 고치는 사람들이니까. 우리들은 막연하게 의사들을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선한 존재일거라고 생각한다. 환자를 살리는데에 매진하는 숭고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이다. 가령 이국종 교수와 같은 이미지. 차가운 메스를 든 뜨거운 의사. 그러나 대학병원에 온 기업인 구승효 사장(조승우)은 ‘뭐가 다르냐는’ 뼈 있는 대사를 시청자들에게 던진다. 의사에 대한 우리의 편견에 물보라를 일으킬 돌을 던진 것이다. 사람을 살리는 의사라면 반대로 죽일 수도 있다는 것, 생명을 다루는 의사도 결국 각자의 욕망을 가진 보통의 사람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이 드라마는 제시한다.     


또한 〈라이프〉는 선한 슈바이처,나이팅게일들과 악한 전문경영인의 대결 이야기가 아니다. 선악 구도로 인물을 나누는 대신 각자의 욕망과 나름의 신념을 가진 인물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반응하는 구도를 그렸다.〈라이프〉가 인간을 바라보는 그 시선이 좋다. 무 자르듯 사람을 쉽게 선악으로 나누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시선은 JTBC의〈품위있는 그녀〉,〈미스티〉 등의 드라마와 궤를 같이한다. 구승효 사장의 첫 강당 등장장면, 강당에 인간군상이 모여 각자의 욕망과 신념을 토해내며 격렬하게 부딪히는 장면 연출 또한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이야기

그러나 인상적인 이 드라마를 하나의 키워드로 정리해달라고 한다면 꽤 난감해진다. 기업에서 내려온 전문경영인, 영리병원, 대리수술과 의료사고, 인력부족, 병원 내 권력다툼과 간호사들의 태움, 그리고 형제애와 로맨스까지! 하나하나 모두 의미 있는 이야기들의 향연이라서 오히려 작가가 과연 어떤 이야기를 가장 하고 싶었던 건지 갸우뚱해진다.〈라이프〉와 미국드라마〈프리즌 브레이크〉는 비슷한 구석이 있다. 한국에서 석호필로 큰 인기를 끌었던 미드 <프리즌 브레이크>에도 수많은 인간군상이 등장하고 선악 구분이 모호한 입체적인 캐릭터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그러나 둘의 결정적인 차이점은〈프리즌 브레이크〉는 극 중 모든 이야기는 ‘탈옥’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통한다는 것이다. 모든 인물이 궁극적으로 ‘탈옥’이란 키워드를 위해 극 속에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병원에 침범한 항원, 전문경영인이 전면에 나선 이야기는 이전의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었던〈라이프〉만의 색다른 지점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차라리 후속 시즌을 염두에 둔 채 우선 ‘병원의 기업경영’이란 키워드 하나를 잡고 관련 이야기들부터 풀어나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보여줘라, 말하지 말고

할 이야기가 너무 많으니 메시지를 스토리로 풀어낼 시간 확보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스토리로 메시지를 풀어 보여주는 대신 대사로 장황하게 주입하는 부분이 많아지고 말았다. 병원 내 부조리를 뉴스도 다큐멘터리도 아닌 드라마로 보는 이유는 사건의 나열이나 진위여부에 집중하기 위해서가 아닐 것이다. 시청자들은 8주에 걸쳐 부조리를 다각도로 바라보고 내 이야기처럼 깊이 공감하기 위해서 드라마를 본다. 로버트 맥키는 “말하지 말고 보여줘라”라고 당부했다. 스토리가 아닌 대사로만 메시지를 접하는 시청자들은 드라마에 감정적으로 완전히 빠져들기는 어려워진다. 스토리텔링이라는 드라마가 가진 매력을 10분 발휘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과한 음악의 난입

추격스릴러에 어울릴 법한 강한 비트의 배경음이 연출되거나 선과 악의 경계가 무너지는 미묘한 순간에 갑작스럽게 휴머니즘적인 음악이 튀어나오는 것도 아쉬운 지점이다. 선의를 베풀고 있지만 속으론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고 있거나, 상대의 부조리함을 고도로 비꼬는 대사가 많은〈라이프〉는 다소 복잡한 심리드라마다. 극을 집어삼키는 강한 배경음 대신 갑작스런 따뜻한 음악대신, 담백한 음악을 연출해 대사와 속내에 더 집중하게 만들어 드라마에 집중하도록 도와야 했다.     


“당신들은 안 그럴 거라고 장담하지마.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라이프〉를 보며 〈송곳〉의 대사가 떠올랐다. 일반회사 사장에서 생명을 다루는 대학병원 사장으로 장소가 바뀌었을 때, 일반교수에서 원장의 자리에 올랐을 때 등 등장인물들이 서는 자리가 바뀌면서 달라지는 모습을 〈라이프〉는 세심하게 묘사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동시에 <비밀의 숲>처럼 굵직한 하나의 주제의식이 극 전체를 관통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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