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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ie Street Jun 15. 2019

[블랙 미러 시즌 2] ep2. 화이트베어

지옥에서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에 중립을 지킨 자를 위해 존재한다

스킬래인은 모든 기억을 잃은 채 한 집에서 깨어난다. 이상한 기호가 곳곳에 난무한 가운데 그녀는 이끌리듯 한 여자 아이의 사진을 챙겨 거리로 나온다. 그러자 가면을 쓴 괴한들이 난데없이 그녀를 죽이기 위해 쫓아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도망 다니는 그녀의 모습을 휴대폰으로 촬영만 하는 사람들. 그녀는 한 일행의 도움으로 위험에서 벗어난다. 일행은 모든 게 송신기에서 전송되는 기호때문이라며 화이트베어에 있는 송신기를 파괴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스킬래인은 그녀와 동행한다. 그리고 화이트베어에서 밝혀지는 충격적인 진실들.




단테 『신곡』"지옥에서 가장 뜨거운 자리는 도덕적 위기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비돼있다"


 제대로 한 방 먹었다. 이번 에피소드는 기이한 기호가 송신기에서 수신돼 다수가 방관자로 변하고 익명의 소수가 방관자 아닌 이들을 억압한다는 낯익은 이야기를 절반이 넘도록 늘어놓다가 한순간에 상상도 못한 반전을 선사한다. <식스 센스>에 준하는 반전이라 반전 이전의 서사에서 목도되던 개연성 부족을 상당 부분 상쇄하기에 무리가 없다. 아울러 이번 에피소드의 반전은 단테의『신곡』속, 한 구절을 투박하지만 정직하게 구현해낸 것처럼 보인다. "지옥에서 가장 뜨거운 자리는 도덕적 위기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비돼있다".

 그에 더해 함무라비 법전에 명시하는 원초적인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표상되는 동해복수법 역시 정확하게 반영한다. 이따금 강력 범죄에 대한 뉴스를 접할 때마다 세상에서 가장 정확한 복수의 방법은 감금, 사형과 같은 사법 제도 안에서의 처벌이 아니라 저지른 이로 하여금 당한 이가 느꼈던 고통을 당한 이의 심정에서 처절하게 느끼도록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에피소드는 이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바라곤 했던, 그러나 현시대의 사법 정의에서는 결코 용납되지 않는 바람을 시청각적으로 재현한다.

 그러니까 이번 에피소드에서 발생하는 일련의 사건들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세련된 형식으로 이뤄지는 함무라비 법전 식의 사법 정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에피소드는 기억을 잃은 스킬래인이 살인자들의 추격 속에서 극도의 공포를 느끼며 화이트베어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이 약혼자의 영아 유괴 살인에 동조하고 방관했음을 알게 되고 사실은 이 모든 여정이 그녀의 범죄 사실에 분노한 대중에 의해 <트루먼 쇼>처럼 조직적으로 조작된 일종의 쇼였음을 깨닫는 '반전의 순간'. 이렇게 두 파트로 구성이 된다.

  (대중이 기억을 잃게 했으므로)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한 채 깨어난 스킬래인 입장에서는 이유도 없이 흉기를 든 괴한들에게 죽을 위기에 처한 가운데 주변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은 채 방관하고 즐기는 모습에 공포와 환멸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녀 자신이 피해자에게 했던 일련의 행위의 총체다. 특히, 그녀가 자신을 촬영하는 사람들에게 괴한들에게 발각될 위험에도 불구하고 이성을 잃고 돌을 던지며 고래고래 화를 내는 모습은 피해자가 그녀에게 하고 싶었던 언행이었을 것이다.

 화이트베어 비밀통로가 세트장으로 전환되며(반전의 순간) 스킬래인이 약혼자의 강요에 피해자의 살해 당시 상황을 촬영했음을 인정하는 뉴스를 볼 때가 이번 에피소드의 클라이맥스다. 그녀의 눈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러나 이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녀의 눈물이 피해자 가족의 눈물을 상쇄시킬 수는 없는 까닭이다. 마냥 측은하게 느껴졌던 스킬래인이 돌연 역겹게 느껴진다. 방관은 무관이 아닌, 상관의 동의어다. 단테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건 용납될 수 없는 '절대적 악을 수긍하는 도덕적 회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녀가 매 순간 눈을 떠야 하는 곳은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 즉, 피해자가 겪어야 했던 극도의 공포와 환멸 상태의 시발점인 것이다. 하루 내 이뤄졌던 그녀의 이와 같은 일상은 성난 대중의 대표가 매일 밤 그녀의 기억을 리셋함으로써 매일 반복된다. 이번 에피소드는 그 어떤 에피소드들보다도 육중한 회의감을 안겨준다. <블랙 미러>에서 다뤄졌다는 것은 결국 공상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타인의 인권을 철저하게 유린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범죄가 끊이지 않는 지금. 현실에는 지옥에서의 가장 뜨거운 자리를 마련할 수 없는 걸까.

 



한 줄 평: 투박하지만 정직한 화법으로 말하는 사법 정의의 한계. 볼 때 보다 본 이후에 더 착잡해진다.

참신함 & 흥미도: ★★★

완결성 & 소구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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