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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ie Street Jun 15. 2019

[블랙 미러 시즌 2] ep1. 돌아올게

"잊어야 한다면 잊혀지면 좋겠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대를"

불의의 사고로 연인 애쉬를 잃은 마사. 슬픔과 함께 찾아온 임신 사실. 무너지기 직전의 마사에게 누군가 죽은 사람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형성된 인공지능과 대화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권한다. 한사코 거부하던 마사는
결국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점차 인공지능 애쉬에게 의존하게 된다. 급기야는 애쉬의 모습을 복제해 인공지능 애쉬에 의해 움직이는 모형을 구매하고 마는 마사. 그러나 행복도 잠시, 그녀는 무언가 잘못됐음을 깨닫는다.




김광석 <그날들>  "잊어야 한다면 잊혀지면 좋겠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대를"


 이번 에피소드는 지금까지의 어떤 에피소드들보다도 미장센이 난무한다. 장면 하나하나가 굉장히 함축적이다. 그에 더해 미래에 일어날 일까지 강하게 암시한다. 히치콕의 영화들을 보는 느낌이랄까. 분석하고 해석하기에는 최적의 콘텐츠인 셈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오프닝에서 (죽기 전의)애쉬는 마사에게 사고로 어린 시절 세상을 떠난 형제 잭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의 어머니는 거실 벽에 붙어있던 잭의 사진을 모조리 다락방으로 옮겼고 애쉬의 표현에 따르면 가짜로 웃고 있는 어린 시절 애쉬의 사진 하나만 덩그러니 남겨 놓았다고.

 오프닝에서의 이와 같은 미장센, 어찌 보면 '떡밥'은 엔딩에서 마사가 애쉬를 다락방에 보관하고 딸에게 주말에만 만남을 허용하는 상황을 통해 완벽하게 회수된다. 애쉬의 어머니와 마사는 떠난 이의 흔적을 일상의 공간에서 완벽하게 배제했다는 점에서 말끔하게 떠나보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흔적을 다락방 즉, 자신의 가장 내밀한 영역에 봉했다는 점에서 그와 같은 은폐 행위는 떠나보내고 싶지 않음에 대한 반증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들은 자신이 바라는 가짜 모습으로 애쉬를 박제한 셈이다. 그것이 진짜 애쉬일 것이라는 환상을 품은 채.

 마사가 인공지능 애쉬 모형을 구매하기 전, 전화로만 소통하는 모습은 흡사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HER>을 떠오르게 한다. 온종일 이어폰을 낀 채 일상을 나누고 심지어는 사진을 전송해 소감을 묻기까지 한다. 한순간이든 오랜 순간이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건 우리가 평생을 살면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이다. 그래서 애쉬를 차마 일상 속에서 떠나보내지 못하고 애쉬의 잔상을 붙잡고 있는 마사의 모습은 사실 너무도 당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 기술이, 그런 세상이 온다면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우리가 누군가를 잃었을 때 그 잔상을 조금씩 쓸어내리고 일상 속으로 복귀할 수 있는 까닭은 '그래야 해서'라는 의지 때문이 아니라 '마땅한 도리가 없어서'라는 체념 때문이라고 결론짓게 한다. 그러나 <블랙 미러> 시리즈가 으레 그렇듯 이번 에피소드 역시 이유가 어찌 됐든 그와 같은 기술은 우리를 일으켜 세워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우리를 고꾸라지게 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잔상을 끌어모아 애쉬를 형성한다고 한들 애쉬는 결국, 오프닝 속 애쉬의 어렸을 적 사진처럼 가짜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애쉬는 죽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사실은 어떠한 과학적 기술로도 상쇄되지 않는다. 마사도 모형 애쉬의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보며 점차 괴리감을 느껴간다. 나는 마사의 그런 괴리감의 정점이 엔딩 직전의 절벽 씬에서 오싹하리만큼 굉장히 잘 다뤄졌다고 생각한다. 가짜 애쉬는 진짜 애쉬를 대체할 수 없음을 깨달은 마사는 해안가의 절벽으로 모형 애쉬를 데려가 뛰어내리라고 명령한다. 별생각 없이 뛰어내리려는 모형 애쉬에게 마사는 복잡한 분노를 느끼며 진짜 애쉬였다면 무섭다며 애원했을 것이라고 소리친다.

 그러자 모형 애쉬가 몇 초 간의 버퍼링 끝에 마사에게 애원하며 울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모습은 각각 기이하면서도 착잡하다. 그렇게 이번 에피소는 결국 앞서 언급했던 엔딩 씬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이번 에피소드는 미장센만큼이나 주제의식도 지나치게 확고하다. '떠난 이의 잔상을 복원하는 게 꼭 나쁜 것이기만 할까'하는 생각이 들 때면 어김없이 마사가 괴리감을 느끼는 씬을 배치함으로써 '이건 잘못된 거야'라고 딱딱하게 훈계하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물론, <블랙 미러> 시리즈가 언제는 안 그랬겠냐만은.

 "잊어야 한다면 잊혀지면 좋겠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대를"이라는 김광석 노래의 가사가 문득 떠오르는데 찬찬히 듣다 보면 이 노래는 '그러니까 잊어야 한다'가 아니라 '그럼에도 잊을 수 없다'를 의미함을 알게 된.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는 말의 연장선상에서 '그러니까 잊어야 한다'는 '그럼에도 잊을 수 없다'에 대한 강한 긍정인 것이다.




한 줄 평: 동종 장르의 영화들을 평면적으로 압축해 맹목적으로 과학 기술을 힐난하는 교훈 드라마를 만든다   

참신함 & 흥미도: ★★★

완결성 & 소구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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