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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ie Street Mar 26. 2018

<곤지암>리뷰

공포 영화계의 '허니버터 칩'

제목: 곤지암

감독: 정범식

출연: 위하준(하준 役), 박지현(지현 役 ), 오아연(아연 役), 문예원(샬롯 役), 박성훈(성훈 役), 유제윤(제윤 役)

#1시간 34분 #제발 함부로 건드리지 좀 마 #무섭기는 하더라


 역대급 공포영화라고 평가받는 <곤지암> 시사회에 참석했다. 귀를 막거나 얼굴을 가리는 관객들은 있었지만 소문처럼 우는 관객은 없었다. 분명 평균 이상으로 무서운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과장된 표현임을 감안하더라도 '무서워서 욕이 나온다', '뒷사람이 놀라서 팝콘을 던졌다'식의 소문이 어울리는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본격적으로 관객의 공포를 자극하는 지점이 너무 늦게 찾아왔다. 

 해당 지점 이전의 스토리는 멤버들이 촬영 준비를 하는 과정과 곤지암 촬영을 하는 과정으로 이뤄진다. 멤버들이 곤지암에 들어가 촬영을 하는 것 역시 해당 지점 이전까지는 오싹하기는 했지만 소름 끼칠 정도로 무섭지는 않았다. 비율로 따지면 진짜 무서운 씬들은 20%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장담한다. 그 20%는 진짜 무서웠다. 긴장감, 공포감이 흘러넘친다. 


한 번 무서워지기 시작하면 답도 없다.

  

 관객을 가지고 놀 줄 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포 영화들에는 캐릭터들에게 요구되는 일종의 규칙 같은 게 있다. 가령, 가장 적극적인 캐릭터가 먼저 죽는다는 식이다. 그간의 경험을 통해 이런 규칙들을 학습해온 관객들은 이에 입각해서 스토리가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예상하면서 보게 된다. <곤지암>은 이러한 공포 영화의 규칙을 따르는 듯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

 관객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이다. 한껏 긴장을 곤두세운 채 '이쯤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야 하는데'하면서 보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감독은 그런 우리의 긴장감이 무뎌지는 순간을 노린다. '아무 일도 없네'하고 방심하고 있을 때, 공포의 정점을 보여준다.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방법을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한 두 번 당하고 나면 관객은 긴장을 풀 사각지대는 없다는 것을 깨닫고 계속 긴장하게 된다.

 (공포 영화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공포 영화 마니아의 입장에서 말해보자면) 다만 아쉬운 건, '진짜 무서운 이야기'를 다루는 비율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나머지 80%는 긴장감이 거의 없다고 해도 무관하다. 진짜 무서운 이야기를 위한 밑밥이라고 설명하기에도 애매할 정도다. 물론,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다. 하지만 <곤지암>은 필요 이상의 공을 많이 들인 느낌이 강하다.     


<곤지암>의 20대 80의 법칙. 긴장감의 경계가 너무 명확하다.

 

 개인적으로 공포 영화를 잘 보지 못하는 편인데 중후반까지는 '내가 이렇게 공포 영화를 잘 봤나?', '별로 안 무서운데'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진짜 무서운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20% 구간이 시작되고 나서야 진짜 공포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일반적인 공포 영화에 비해 다소 무서운 것은 사실이지만 수작(秀作)이라고 불리기는 애매한 <곤지암>이 어째서 '잘 만든 한국식 웰메이드 공포 영화'라는 평가까지 받으며 인기를 끌고 있는 걸까?

 영화의 아이템이 좋았다는 것이 가장 유력한 설명이 되지 않을까 싶다. 곤지암 정신병원은 CNN이 선정한 '세계 7대 소름 끼치는 장소' 중 한 곳이다. 곤지암을 둘러싼 기괴한 소문은 무성하고 관련 포스팅과 영상만 1,000여 건이 훌쩍 넘는다. 당연히 사람들의 이목이 끌릴 수밖에 없는 아이템이지 않나. 감독이 영리한 게 곤지암에 대한 이와 같은 공포와 호기심을 현재 유행하고 있는 '인터넷 방송'의 형식을 빌려 풀어나갔다는 거다.  


배우들은 '고프로'라 불리는 셀프캠을 장착해 촬영을 진행했다.

 

 인터넷 방송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감독은 실제로 배우들에게 셀프캠을 설치해 영상 곳곳에 활용했다. 일부 씬들은 아예 스크린 프레임을 인터넷 방송 프레임에 맞춰 보여주는 센스를 보여줬다. 이러한 설정들로 인해 관객들은 소문만 무성했던 곤지암이라는 아이템을 인터넷 방송처럼 볼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곤지암> 인기의 '한 끝'은 바로 SNS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페이스북의 각종 페이지에서 '곤지암이 그렇게 무섭다더라'는 식의 포스팅이 자주 게시됨에 따라 <곤지암>은 크게 입소문을 탔다. 공포 영화계의 '허니버터 칩'이 아닐 수 없다. <곤지암>과 허니버터 칩의 공통점은 맛 자체는 무난한데 워낙 소문이 자자해서 찾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곤지암>은 상황이 너무 잘 따라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곤지암>은 손익분기점은 거뜬히 통과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소문에 비해 약간 부실한 부분이 있었다는 거지 컨텐츠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 최종적인 결론이다. 분명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소문이 퍼졌는데 안보고 배길 수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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