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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ie Street Jan 10. 2017

<에곤 쉴레> 리뷰

아쉬움으로 남는 예술가의 광기

 거칠게 표현하자면 ‘역겹다’라는 단어 외에는 감정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 원초적인 혐오감은 우선적으로 에곤 쉴레를 향했다. 16살의 여동생을 성적 대상화해 모델로 삼으면서도 결혼을 반대하거나, 예술가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연인에게 다른 여자와의 결혼을 이해하라고 요구하는 장면들은 ‘예술가의 광기’를 치졸하게 보여준다. 28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한 에곤 쉴레의 광기에 찌든 삶을 미화하지 않고 드러내 관객들에게 정신적 충격을 준 것은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4명의 뮤즈를 구심점으로 돌아간다. 각각의 뮤즈들이 에곤 쉴레에게 제공하는 예술적 영감과 에곤 쉴레가 뮤즈들을 대하는 비윤리적 태도가 한 폭의 스크린에서 어지럽게 그려진다. 특히, 거부감이 들 정도로 부각되는 뮤즈들에 대한 에곤 쉴레의 부적절한 태도는 예술계에서 ‘뮤즈’라는 존재가 함의하는 문제점들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뮤즈들은 이름 없이 화폭에 남겨질 뿐이지만 예술가는 역사 속에 위대한 이름으로 남겨진다. 예술가의 영감을 위해 대가 없이 착취당하는 뮤즈의 존재는 예술의 역사에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다.

첫번째 뮤즈 게르티. 에곤쉴레 作 [체크무늬 옷을 입은 여인]

 상처받은 뮤즈들에게 아무런 책임 없이 세상을 떠나고 거장의 반열에 오른 에곤 쉴레. 예술가들은 이처럼 ‘예술’이라는 미명 하에 비윤리적 행위들을 정당화시키곤 한다. 특히, 미성년의 소녀들에게 유독 집착하는 에곤 쉴레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도덕적 한계를 겪게 한다. 영화 ‘에곤 쉴레’에서는 극단적 탐미주의를 표현한 김동인의 소설 <광염 소나타>를 읽을 수 있다. 방화, 살인을 저질러야만 천재적인 작곡을 할 수 있는 주인공 백성수의 삶은 여성들을 착취하고 수단 화면서 그림을 그리는 에곤 쉴레의 삶과 본질적으로 같다.

두번째 뮤즈 모아. 에곤 쉴레  作 [모아]

 영화 ‘에곤 쉴레’에서 직면할 수 있는 다른 난제는 여성들의 나체를 그로테스크하게 표현한 그의 그림들을 예술로 봐야 할지 외설로 봐야 할지 그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화폭을 빈틈없이 채우는 강렬한 스케치는 그의 내면세계를 붓으로 표현한 예술의 절정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유독 여성의 나체를 강조하고 대상의 주요 신체부위를 그로테스크하게 강조하는 것에 집착하는 스케치는 그의 성적 집착증에 기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세번째 뮤즈 발리. 에곤 쉴레 作 [죽음과 소녀]

 이처럼 예술과 외설, 진실과 거짓, 사랑과 증오.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단어들이 불안하게 공존하는 지점에 에곤 쉴레가 있다. 그것은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이다. 예술에 대한 집착과 윤리의 타락 중 무엇이 에곤 쉴레의 붓을 움직이게 했는지는 알 수 없다. 28세의 나이에 300점의 유화와 2천 점의 데생과 수채화를 남긴 그의 삶을 평가하는 것은 영화를 본 관객의 몫이다. 하지만 영화는 관객들이 에곤 쉴레의 삶을 평가할 수 있도록 충분한 배려를 하지 않았다.

네번째 뮤즈 에디트. 에곤 쉴레 作 [줄무늬 옷을 입은 에디트 쉴레]

 문제는 110분의 러닝타임 동안 혐오감을 유발하는 광기만이 스크린을 메웠다는 점이다. 영화에는 에곤 쉴레가 고민했던 예술에 대한 철학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관객들은 어째서 에곤 쉴레가 광기에 휩싸여 거칠게 에로티시즘을 표현하게 됐는지 알 수 없다. 관객들은 그저 그가 예술을 위해 여성들을 유혹하고 착취하는 장면만을 지켜봐야 했다. 내가 느꼈던 역겨움은 에곤 쉴레의 자전적 영화를 제작하면서 그의 예술에 대한 처절한 고민을 담지 않고 단순히 관능적인 영화로 전락시켰다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영화 ‘에곤 쉴레’는 성공한 자전 영화라고 부르기에 아쉬운 점이 많다. 단순히 그의 삶을 역겹게 표현하는 것이 감독의 목표는 아닐 것이다. 역사적 사실의 재구성과 논란을 스크린으로 가져온 것 까지는 좋았지만 그를 뒷받침할 한 예술가의 고뇌와 철학을 균형 있게 다루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지점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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