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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ie Street Aug 26. 2018

크리스토퍼 놀란 다시보기 #1: 인셉션(Part 3)

놀란 감독이 무의식의 세계에서 보여주는 상처와 치유의 미학

Non, je ne regrette rien(아뇨, 전 후회하지 않아요)


 결국, 삶이라는 것은 과거를 밟고 나아가는 과정의 반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는 밟는 순간 즉, 인식하는 순간 이미 과거가 된다. 현재와 과거는 항상 찰나다. 현재를 과거에게 양보하지 못할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지 우리는 코브와 피셔의 삶을 통해 충분히 목격했다. 행복했든, 불행했든 과거는 과거로서 존재해야 한다. 과거는 우리가 끊임없이 현재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잘 다져져야 한다. 무책임하게 성찰의 과정조차 없이 흘려보내라는 의미는 아니다. 청산되지 않은 과거는 언젠가는 청산을 요구하며 유령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과거를 떠나보낼 때는 최소한의 예의와 책임이 필요한 법이다.

 그것은 결국, 직전에 설명했던 '애도'의 절차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에 존재했던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과거가 자신에게 갖는 상징으로서의 의미를 반추함으로써 과거의 자신을 죽이는 과정을 요한다. 아파야 할 만큼 아팠다면, 그리워해야 할 만큼 그리워했다면 이제는 떠나보내도 괜찮다. 과거는 과거일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코브 일행은 피셔의 꿈에 침투했을 때, Edith Piaf가 부른 'Non, Je Ne Regrette Rien'라는 샹송을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는 암호로 사용하는데 이 노래의 가사는 <인셉션>의 주제의식을 정확하게 관통한다. <인셉션>의 주제의식과 너무 맞아떨어져 놀란 감독이 이 노래에 맞춰 영화를 제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Non, rien de rien / 아니예요. 그 무엇도 아무것도
Non je ne regrette rien/ 아니예요.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C'est paye  Balaye oublie/ 그건 대가를 치뤘고, 쓸어버렸고, 잊혀졌어요. 
Je me fous du passe /난 과거에 신경쓰지 않아요.  

Edith Piaf 의 <Non, Je Ne Regrette Rien> 中

   

 사랑해서 아팠고, 미안해서 아팠던 코브와 피셔의 과거는 완벽하게 다져진다. 잘 다져진 과거는 우리에게 또다시 살아가야 할 근거가 돼준다. 놀란 감독은 이처럼 꿈과 현실의 경계를 오가며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핵심적인 명제(과거를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놓아줘야 한다)를 제시한다. 놀란 감독이 거장의 대열에서 여전히 그 위상을 공고히 할 수 있는 이유는 이와 같이 진중한 주제의식을 영화의 소재로 삼으면서도 관객들이 전혀 위화감 없이 그의 메시지를 캐치할 수 있도록 세밀한 배려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절대 영화의 주제의식을 관객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말할 수 있는 도는 더 이상 도가 아니라는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의 뜻처럼 놀란 감독의 작품 세계에서 주제의식은 발화되지 않음으로써 발화된다. 그의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스펙타클함과 긴장감에 현혹되기만 한 것 같지만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는 무언가를 고민하고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 무언가가 놀란 감독의 도(道)인 셈이다.


PS.  논란의 엔딩 씬. 이게 팩트입니다


2018년 8월 10일  진행된 필름 4 섬머 스크린에서의 마이클 케인[사진 출처: Film4]


 <인셉션>의 엔딩 씬에 대한 논란이 많다. 그 논란이 8년이 지난 최근까지 이어진 것을 감안하면 놀란 감독의 저력을 다시 한 번 새삼스레 느끼게 된다. 논란의 씬은 사이토의 도움으로 드디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코브가 책상에 그의 토템(꿈과 현실을 구분하게 하는 도구. 코브의 토템은 팽이로 꿈이라면 현실에서와 달리 팽이가 영원히 돈다)을 돌리고 자식들에게 다가가는 장면이다. 놀란 감독은 코브의 뒷모습을 비췄다가 시선을 옮겨 돌아가는 토템을 비춘다. 토템은 쓸어질 듯, 말 듯 돌아가는데 영화는 딱 이 장면에서 끝난다. 이 씬을 두고 관객들 사이에서는 '코브가 여전히 꿈이다', '거의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현실이다'라고 의견이 분분한 상태.  

 풀리지 않던 논란은 2018년 8월 10일 드디어 종지부를 찍었다. 이날 영국의 서머싯 하우스에서 진행된 '필름 4 섬머 스크린'에는 코브의 장인 역으로 등장했던 마이클 케인이 참석한 가운데 <인셉션>이 상영됐다. 상영이 끝난 후, 마이클 케인은 관객들과의 대화에서 8년간 미스터리였던 엔딩 씬에 대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각본을 처음 받았을 때 혼란스러워서 (놀란 감독에게) '어디가 꿈이고 어디가 현실이냐'라고 물었다" 
(놀란 감독의 답변) "당신이 들어간 장면이 현실이고 당신이 들어가지 않은 장면이 꿈입니다"

*인터뷰 발췌: 인사이트

    

 마이클 케인의 답변으로 문제의 엔딩 씬은 현실인 것으로 밝혀졌다. 코브는 공항에 마중 나온 마이클 케인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기 때문. 8년 이라니 너무 길었다... 그러나 엔딩 씬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토템이 아닌, 토템이 멈추는지, 계속 돌아가는지는 상관없다는 듯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자식들에게 향하는 코브의 뒷모습이 아니었나 싶다. 그의 뒷모습에는 맬(과거)로부터 벗어나 현재를 살아가겠다는 확신과 의지가 느껴진다. 인셉션의 진짜 의미는 '시작'이다. 꿈과 현실의 경계는 이제 그에게 의미가 없다.  


정식 연재: http://www.lunarglobalstar.com/news/articleView.html?idxno=2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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