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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ie Street Oct 23. 2018

맞지 않는 옷을 입었나. 데이미언 셔젤의 <퍼스트맨>

<위플래쉬>, <라라랜드>에 대한 애정만으로 버티게 된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제목: 퍼스트맨

감독: 데이미언 셔젤

출연: 라이언 고슬링(닐 암스트롱 役), 클레어 포이(자넷 암스트롱 役), 제이슨 클락(에드워드 役)

#2시간 21분 #제레미 프로젝트 #닐 암스트롱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위플래쉬>와 <라라랜드>를 보고 확신했다. '제2의 존 카니'(원스·비긴어게인·싱스트리트 감독)가 나타났다고. 그런 그가 우주영화를 찍는다고 발표했을 때는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데이미언 셔젤의 음악영화를 볼 수 없다니'하는 아쉬움과 '데이미언 셔젤의 우주영화는 어떨까'하는 궁금함. 그리고 <퍼스트맨>의 엔딩 크레딧을 보며 생각했다. 이 작품은 명과 암이 분명하다고.




'닐'이라는 한 위인이 아니라 '닐'이라는 한 개인이 있을 뿐이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퍼스트맨>은 닐 암스트롱(이하 닐)이 살아온 1961년부터 1969년 사이의 삶을 시공간적 배경으로 차용하고 있는 영화다.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두고두고 회자될 역사적 인물을 한 개인의 영역으로 한참이나 끌어내려 관객에게 보여준다. <퍼스트맨>에서만큼은 닐은 위대한 우주인으로 기록되지 않는다. 닐은 무책임한 남편이었고 무정한 가정이었다. 그리고 그전에는 사랑하는 어린 딸 캐런을 잃은 아버지인 닐이 있었다.  

 캐런의 죽음 이후, 닐은 미국의 유인 우주 비행 계획인 '제레미 프로젝트'에 지원해 단어 그대로 토 나오는 훈련을 견뎌가며 프로젝트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 <퍼스트맨>도, 닐의 절대 고독도 이 지점부터 시작된다. 프로젝트에 대한 닐의 집념은 맹목적이다. 뚜렷하지만 근거가 드러나지 않는다. '인류의 발전 vs 가족과의 관계'라는 그 흔한 내적 갈등조차 부재하다. 영화는 끝까지 닐에게 그의 맹목적 집념에 대한 동기를 묻지 않는다. 

 따라서 관객은 2시간이 훌쩍 넘는 긴 러닝타임 동안 우주가 아닌, 닐의 내면을 유영하게 된다. 그리고 그 칠흑같이 어두운 미지의 공간에서 영화도, 관객도 길을 잃는다. 영화는 닐의 내면만큼이나 공허하다. 닐이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는 순간은 오로지 캐런의 죽음을 상기할 때뿐이다. 닐이라는 한 인간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은 그뿐이다. 그 외의 순간(사실상 영화의 모든 순간)에서 닐의 정체성은 철저하게 소거당한다.


닐의 감정 동요는 굉장히 제한적으로 비춰진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닐에 대한 구체적 행동 근거가 끝끝내 제공되지 않기에 <퍼스트맨>에게는 '결국 해석은 관객의 몫'이라는 변명조차 통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퍼스트맨>은 실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관객은 닐이 우주에 첫 발을 디딜 것이라는 사실도 닐이 무사히 귀환할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역사에 스포일러를 당한 관객들에게 데이미언 셔젤 감독이 제시할 수 있는 관람 포인트는 두 가지였다.  

 위인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닐이 갖는 정체성과 지금의 미학적 관점에 기초한 당시 우주탐사 과정에 대한 고증이 그것이다. 전자는 미흡했고 후자는 준수했다. 특히, 우주선의 이상으로 닐이 위험에 처한 오프닝 씬이 주는 긴장감과 몰입도는 압권이었다.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모든 상황을 거칠게 흔들리는 카메라 앵글로 담아내되 계기판과 우주 배경 그리고 닐의 모습을 빠른 호흡으로 교차시킴으로써 영화와 관객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모든 우주 탐사 씬이 이와 같이 이뤄진다는 것은 시각적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서사 구조가 지난하게 (훈련 받음) → (우주선에 탑승) → (위험을 겪고 귀환) 과정을 반복한다. 거의 모든 탐사 씬의 연출이 오프닝 씬의 규격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퍼스트맨>은 '우주에서의 여정'이 아닌, '우주로의 여정'을 담은 영화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해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 한편으로는 이 또한 고증이라면 고증일 것이다. 


닐의 맹목적 행위에 대한 동기는 결국, 우주처럼 미지의 영역으로 남는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그리고 그 모든 순간에는 데이미언 셔젤만이 들려줄 수 있는 사운드가 있다. 사운드에 있어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인터스텔라>에서 한스 짐머(음악 감독)가 들려준 사운드와는 다른 결의 사운드다. <퍼스트맨>에서의 사운드는 우주에 녹아드는 것이 아니라 인물에게 녹아든다. 통상적으로 우주 영화에서 기대하지 않는 영역에서 기대 이상을 경험할 수 있어 뜻밖의 만족을 얻기는 했지만 그뿐이다. 

 <퍼스트맨>의 장르는 SF가 아닌, 휴먼 드라마다. 따라서 닐의 정체성은 곧, <퍼스트맨>의 정체성이 된다. 영화에서 인물의 정체성은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에 의해 확립되는데 <퍼스트맨>에서 닐을 바라보는 시선은 심하게 건조하다. 그 시선으로는 닐의 감정도, 생각도 읽어낼 수 없다. 영화의 시선이 인물의 정체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운드와 연출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가 이를 상쇄시켜주리라 바라는 것은 욕심일 것이다. 

 <퍼스트맨>이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전작 <위플래쉬>, <라라랜드>와 갖는 공통점은 결 다른 사운드와 우중충한 분위, 연출뿐이다. 그렇기에 장르의 구분을 논외로 하더라도 영화 자체가 주는 감동이 전작에 비해 얕은 것도 사실이다. <퍼스트맨>의 모티브가 된 역사적 사실 자체가 영화의 소재에 적합하지 않았던 것일까. 데이미언 셔젤 감독이 영화로서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았던 것일까.

 

이에 대한 답변은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차기작에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그가 표현할 수 있는 세상의 범위가 궁금하다.   

 

정식 연재: http://www.lunarglobalstar.com/news/articleView.html?idxno=23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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