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진영 Sep 08. 2017

덩케르크

영화적으로 시간을 재조립하는 위대한 실패작전.

(스포성 글이 있습니다.)

























                          

전쟁은 모든 것을 파멸시킨다. 인간의 본성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날 때가 혼돈으로 휘말린 전쟁이라는 공간일 것이다. 전쟁을 일으키고 심은 자들은 전장(戰場)그 어디에도 없다. 그러한 전장에서 적군에 포위되고 고립되어 있는 영국과 프랑스군들은 어디에도 갈 곳이 없다. 한없이 배가 오길 기다려야 할 뿐 40만 명의 군인들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전 세계적으로 가장 핫하고 센세이션 한 크리스토퍼 놀란이 첫 실화 소재를 가지고 시나리오를 집필해 그날의 '덩케르크'를 재조립하였다.



1940년 2차 세계대전 영국군과 프랑스 연합군은 독일군을 상대로 덩케르크 해안까지 밀려 꼼짝없이 갇히게 된다.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독일군에게 항복을 하거나, 독일군 상대로 싸우거나, 아니면 덩케르크를 빠져나가는 작전을 세워야 한다. 항복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싸우는 것도 포위되어 있는 거나 다름없기에 무의미하다. 방법은 해안을 통해 철수하는 작전뿐, 당시 영국군의 상황상 배를 한꺼번에 보낼 수도 없을뿐더러 언제 독일군에게 포격받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덩케르크'(7월 20일 개봉작)는 전쟁을 소재로 삼고 있지만 전쟁영화가 아니다. 놀란이 인터뷰에서도 밝혔듯 이것은 생존 드라마이고 휴먼 드라마이다. 그간 놀란의 족쇄처럼 따라다녔던 비평이 연출적인 면이나 기술적인 면은 훌륭하지만 감정적인 부분은 취약하다는 말을 줄곧 들어왔다. 휴먼 드라마에서 감동적인 부분이 빠지면 휴먼 드라마라고 할 수 없을 터. 그러나, 놀란은 대개 대중영화들이 손쉽게 써버 리거나 선호하는 방법 중 하나인 감정을 강요하거나 직접적으로 격양시켜 사람들의 마음을 동요시키지 않는다. 놀란 자신의 전작들 뿐 아니라 기존 여느 전쟁영화가 보여줬던 방식의 연출을 선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전우애를 강조하는 설정 숏을 넣거나, 상대 악을 지칭하는 (스쳐 지나가는 전투기는 나오지만) '독일군'들을 보여준다거나 무척이나 잔인한 묘사를 통해 격분을 하는 것들은 일절 쓰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는 오직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처절한 작전이 있고 그 작전의 행방 끝에는 묘한 감동을 선사하는 것이 이 영화가 주는 특별함이다.



'덩케르크'전까지 동생 조나단 놀란과 대부분 같이 시나리오 작업을 했던 크리스토퍼 놀란은 오랜만에 혼자 집필한 영화이기도 하다. 데뷔작 '미행'때도 만드는 이의 자신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흔히 놀란에게 얘기하는 유명한 별명은 '플롯의 마술사'이다. '메멘토' '다크 나이트' '인셉션' '인터스텔라'등 수많은 그의 영화들이 다중 플롯을 사용해 영화를 지적으로 구조해나가는 설계사 같기도 하였다. 그중에서도 '메멘토'와 '인셉션'이 가장 유사해 보이는데 '덩케르크'의 플롯은 총 3개이다. '해안'의 일주일, '바다'의 하루, '하늘'의 1시간 이 각각의 시간을 영화적인 시간으로 불러들이는 순간 놀란은 마법을 선보여준다.


'메멘토'와 '인셉션'에서도 다중 플롯은 영화의 중요한 구조이자 형식이었고 내용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각기 다른 시간을 통해 그 접점을 '덩케르크'는 기묘하고도 정교하게 교차시킨다. 얼핏 설렁설렁 교차 편집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3개의 시간은 덩케르크 구조작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마크 라이언스가 중간에 대사를 하듯 '어른들이 일으킨 전쟁에 왜 젊은이들만 총알받이 되는가?'라고 반문하는데서 느끼듯 이 전쟁에 대한 고통과 책임이 이들만의 것이 아님을 중요하게 짚어주며 그 시대의 어른으로서 반성까지 들어간다는 점에서도 '바다'에서의 하루는 단순한 하루가 아닐 것이다. 마찬가지로, 톰 하디의 1시간 비행 역시 자신의 임무를 끝까지 완수 함으로써 이 작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내게 된다는 점은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렇듯 각각의 플롯을 통해 크리스토퍼 놀란은 영화적으로 시간을 접점 시켜 시공간을 마치 동일시시켜 놓고 있다는 점에서도 무척 흥미로운 부분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영화를 일종의 영웅담이나 영웅 서사로 받아들여지게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한 사람의 공(혹은 그 부대)으로 귀결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은 이러한 부분이 자칫 밋밋하고 굉장히 지루해 보일 수 있지만 다중 플롯과 교차편집은 영화적으로 볼 때 정교하게 짜여 있으며 대단히 중요해 보인다. 과장되게 말하면 예전 전성기 때 프란시스 코폴라의 어마 무시한 교차편집과도 비견될만한 부분이다.


놀란의 연출도 대단하지만 그 연출을 효과적으로 도움을 준 음악, 편집, 촬영, 미술, 심지어 음향효과와 음향편집까지도 무척이나 놀랍다. 하나의 거대한 세계를 직접 구축시킨 놀란과 스태프의 공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아날로그를 지향하기로 유명한 놀란의 뚝심과 고집은 엑스트라를 1000여 명 넘게 부르고, 실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했던 전투기와 군함까지 직접 작동시켰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많은 유능한 감독들이 이상한 강박과 집착을 보여주지만 이는 대부분 그랬듯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점에서 놀란 역시 그러하다.(영화의 양감이나 질감으로 보아도 무척 탁월하다.)



'덩케르크'는 어떻게 보면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도 유사한 지점이 있는 듯 보인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한 작전이었다면 덩케르크는 여러 명의 사람이 여러 사람을 구하기 위한 작전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이후에 나온 전쟁영화들은 대부분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복제이거나 그림자처럼 보였다(그것이 설혹 실화라 할지라도). 그러나 '덩케르크'는 그 성질이 비슷하지만 성격 자체는 완전히 다른 휴먼 드라마라는 점에서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밀레니엄 시대 알 수 없는 세기말에 보여준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잊지 못할 감동을 자그마치 20년 만에 '덩케르크'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하여 보여주고 있다.

전투 장면이나 구조 장면, 하늘에서의 공군 조종 장면 등을 보게 되면 마치 무성영화의 구조로 보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듯 보인다. 이 영화 자체를 아예 무성영화로써 상영되어도 관객들 대부분 납득시킬만한 연출력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주, 조연이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다. '킬리언 머피', '톰 하디', '케네스 브레너', '마크 라이언스'가 출연하고 있음에도 뚜렷한 공이 있거나 중요한 역할로 나오지 않는다. 반대로 '핀 화이트헤드', '톰 글린 카니' 같은 신인급 배우가 영화의 많은 분량 나오고 있지만 그렇다고 핵심적인 인물 또한 아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이 영화의 형식과 내용과 인물 하나하나까지 모두가 그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에서 놀란은 무척 큰 신뢰감을 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이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같은 역할이라 해도 무방하고 그러한 내용과 형식 역시 같은 역할로써 일치하고 있다.

유일하게 '킬리언 머피'가 의도치 않게 살인을 저지르게 되지만 '다친 애는 괜찮아?'라고 묻는 씬에서 톰 글린 카니가 역할을 맡은 '피터'는 자신의 친구가 죽었음에도 '괜찮다.'라고 말할 때의 이상한 뭉클함과 감동 같은 것이 화면 바깥을 향해 느껴지게 된다.



그렇다면, 덩케르크 철수 작전은 성공한 작전인가. 역사적으로 결론이 난 상태에서 분명히 따지면 성공한 작전은 아니다. 처칠은 덩케르크에서 애초 구조 인원을 3만 명으로 잡았지만 무려 33만 명이 기적처럼 구조되었다. 많은 희생이 있었으나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덩케르크 구출 작전은 위대한 실패작전이 되었다. 기존, 놀란의 비평이 계속 따라왔던 감정적인 부분의 취약점은 조나단 놀란의 도움 없이 본인 스스로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다시 증명함으로써 영화적으로 시간을 재조립하여 위대한 휴먼 드라마를 만들어 내었다.


'덩케르크'는 놀란의 전작이었던 '다크 나이트'가 연상되기도 한다. '조커'는 선량한 시민이 탄 배와 죄수들이 탄 배를 놓고 인간들을 혼돈의 상태로 휘저어 다시 한번 인간의 본성을 끄집어내기 위해 사회 윤리학적인 실험실에 가둬놓았다. 12시 이전까지 폭탄 스위치를 누르면 한쪽은 살려준다는 '조커'의 말에 사람들 모두가 혼란에 빠지게 되지만 결국 12시까지 아무도 폭탄 스위치를 누르지 않자 두 쪽 모두 아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 작은 공간은 '덩케르크'에서 전장이고 '조커'라는 혼돈은 전쟁 그 자체일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양심을 위해 혹은 책임을 위해 혹은 도의를 위해 그 어떤 것이든 인간을 움직이는 작은 힘이 있다면 그 힘들은 큰 힘이 되어 다시 한번 작은 기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설령 그곳이 혼돈의 중심이라 할지라도 그 기적은 한 번도 당황하지 않은 '조커'를 유일하게 당황하게 만들 것이다.




★★★★☆




정보 : 네이버 영화

사진 : 네이버 영화

매거진의 이전글 엘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