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진영 Sep 08. 2017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조롱으로 발산되는 대단한 에너지.

(스포성 글이 있습니다.)


















                                                                                                                                                                            







                                                                                                                                           

실로 대단하고 굉장한 에너지다. 여기에는 일절의 망설임 같은 것이 없다. 모든 면에서 전방위적으로 뻗어나가는 행동과 그 에너지들은 지칠때까지 발산되는 듯 보인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감정의 밑바닥에는 알 수 없는 처연함과 쓸쓸함이 날뛰고 있는 저들이 아닌 스크린 바깥의 관객들에게 들이닥친다. 올 한해 가장 독특하고도 튀는 이 독립영화는 아마 당분간 만나기 힘든 한국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2인조 밴드인 '밤섬해적단'은 권용만, 장성건 씨로 이루어진 하드 펑크록 그룹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괴상망측한 록밴드는 메세지든 스타일이든 발성이든 종잡을 수 없는 형식을 가지고 태어난 것처럼 보인다. 마치 의식의 흐름으로 공연하고 연주하고 음악을 만드는 것 같은 이들은 실제 생활이나 대화를 보아도 그러하다.


이 2인조 밴드와 더불어 다큐멘터리에 출연하는 단편선, 박정근 그리고 영화를 연출한 정윤석 감독까지 세상을 향한 조롱과 장난이 마치 삶의 유희이자 활력으로 비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조롱의 대상은 세상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는 면에서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무릇, 자신을 희화화 시키고 조롱할 줄 아는 자는 반성과 성찰의 이면이 들어가 있다는 것일테고, 그 조롱은 다시 잘못된 시스템 혹은 모순된 사회에 대한 조롱으로 내뱉을 수 있는 권리로 이어진다는 점에서도 신념과 행동의 방향성이 일치된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억지로 포장하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말하고 보여준다. 인터뷰나 대화를 할 때도 어떤 논리 정연한 말로 상황을 설명하거나 왜 그런 말과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 제대로 된 이유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안으로는 정리가 되어 있지만 그걸 굳이 말할 필요가 없거나, 아니면 어떤 것들을 규정하는 것 자체에 대한 일종의 저항정신 같은 것이 있어보인다.(영화를 다 보고 나면 원래 말을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후반부 박정근 씨의 중요한 사건이 터졌을때도 권용만씨와 박정근씨는 이분법적으로 구분 짓고 규정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 같은 것이 드러나는데 법정 안에서 증언으로 말할 때나 최후 변론을 할 때도 그러하고 실제 대화 또한 그러하다.



이 부분은 정윤석 감독의 연출 또한 그러하다. 얼핏 설렁설렁 장난처럼 만든 것 같은 영화의 형식과 내용은 '밤섬해적단'이라는 뮤지션과 그대로 맞닿아있고 닮아있다. 한국 사회와 시스템에 대한 무지막지한 비판처럼 보이는 음악과 행동들은 한 곳에만 겨누고 있지 않다. 그 화살들은 북한과 남한 더 나아가면 모순 가득한 이 세상에 대한 비명과 울부짖음처럼 보이는 것은 과장된 해석이 아닐 터이다.


이점에서 정윤석 감독은 본인 스스로 해답을 보여주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는다. 관객과 서로 보이지 않는 거리감을 유지하며 스크린에 비친 피사체들이 마치, 어디까지 가고 어떻게 할 것이며 그 끝에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손에 쥐어주지 않는다. 다만, 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결과를 보여주는지만 초점을 맞춘다.


사실 다큐멘터리가 굉장히 객관적인 장르이고 그러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지만, 창작자가 카메라에 무엇을 어떻게 담는가에 따라서 반대로 주관적으로 보일 때도 비일비재하다. 그 말은 다큐멘터리가 창작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마음이 투영되어 냉정하지 못하게 되는데 이는 소재에 따라서 영화가 무척 곤란하고 우스꽝스럽게 나올 수도 있다는 점에서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는 균형이 잘 잡혀 있는 다큐멘터리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다큐멘터리가 종북 좌파 영화로 보일 수도 있고, 국가보안법을 어긴 한심한 청년들의 영화로 볼 수도 있다. 설령, 그 논점이 아니더라도 어떤 사람들은 형식적인 부분과 방법론에 대해 비판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충분히 그럴 수 있고 어찌보면 납득 가능한 비판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이 영화의 스타일과 형식은 '밤섬해적단' 그 자체이다. 자칫 실험적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철저히 계산된 연출로 보여진다. 실험적이기보단 대담하고 용감해 보인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로 볼 수 있지만, 정윤석 감독의 전작이었던 '논픽션 다이어리'를 보면 무척이나 진지하고 엄격한 내용과 형식으로 영화를 만들었기에(다른 단편들을 보아도)원래 실험적인 영화를 선호하는 창작자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이 영화를 철저히 '밤섬해적단'에 맞춘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키치적이고 싸구려로 보이는 화면과 스타일은 2인조 밴드의 에너지와 엉겨 붙으며 그대로 발산이 되는데 힘이 상당하다. 보는 이들에 따라서 지칠 수는 있겠지만 지루한 면은 전혀 없다.



1집 '서울불바다'는 자그마치 42트랙이지만 총 러닝타임은 52분밖에 되지 않는 앨범이다. 그중 32번 트랙 '똥과 오줌'은 이 영화를 짧게 요약하는 단어 일지도 모른다. 권용만 씨가 북한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 북한이 '똥'이라면 남한은 '오줌'이라 비유했다. 권용만씨의 말을 빌리면 이 영화는 똥과 오줌으로 통합된 이상한 영화일 것이다.

그 이상한 똥과 오줌은 남한 북한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그 말은 다시 한번 본인들에게 영화로 돌아와 또다시 이상한 화합을 이룬다. 그 이상한 화합은 정윤석 감독이 '밤섬해적단' 그리고 단편선, 박정근 씨 모두를 생각하는 이상한 마음일 것이다. 그리고, 그 이상한 음파가 출렁이던 이상한 음악과 크레딧이 끝나면 관객들도 이 이상한 젊은 청년들을 향해 골똘히 생각에 잠기게 될 것이다.


어떻게 보면 '록키 호러 픽쳐 쇼'의 이상한 밴드버전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영화는 근 몇 년간 보기 힘든 종류의 다큐멘터리가 될 것이다. '철의 꿈', '만신', '위로공단', '논픽션 다이어리'가 시대를 되묻고 돌아보는 영화였다면,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는 시대에 오물을 투척하며 자기식대로 가지고 노는 장난감일 것이다.




★★★★




정보 : 네이버 영화

사진 : 네이버 영화

매거진의 이전글 덩케르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