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러노프스키가 창조한 신화!
(스포성 글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평범한 가정 부부의 이야기인 줄 알았던 '마더!'는 난폭하고 거칠며 후반으로 갈수록 폭주하다 결국엔 폭발하는 영화이다. 애러노프스키의 끝없는 야심이 질주하는 듯 보이는 이번 작품은 관객들과의 타협이라곤 하나도 없다. 그저 자신이 만든 길을 불만가지지 말고 빨리 따라오라는 듯 보인다. 호불호가 무척 갈릴 것으로 보이는 '마더!'는 그마저도 자신이 안고 가겠다는(혹은 그런 평가가 상관없다는) 듯 아무런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돌진한다. 과연, 애러노프스키가 보여준 이 영화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줄거리 요약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전반부 후반부로 나뉘어야 할 '마더!'는 평범한 부부가 갑자기 낯선 이들의 방문을 맞아들이게 되고 이들을 맞이하는 남편 또한 그녀는 이상하게 생각한다. 그러다 서서히 손님들의 무례한 행동에 불만과 불안을 느끼게 되며 알 수 없는 공포감으로 이야기가 진행 된다.
여기에 주목해야 할 점은 영화 시작과 동시에 잿더미가 된 여성과 함께 집이 불에 타며 시작된다는 점이다. 하비에르 바르뎀은 타버린 집에 크리스탈을 줍게되고 이미 준비한 장식구에 꼽자 집은 원래대로 복구가 된다. 이 이상한 프롤로그는 영화 엔딩에 이르면 똑같은 구조로 반복되는 수미상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평범해 보였던 전반부 조차 영화를 다보게 되면 평범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윽고 관객들은 알게 된다.
애러노프스키는 온갖 기이한 상징들로 영화를 집어넣었다. 대부분의 상징들은 성경에서 가져온 모티브들 이라는 것을 기독교 문명을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후반부에 가면 어느 정도 눈치를 챌 것이다. 어떤 영화들은 상징이 해석되는 영화가 있는 반면 그 상징이 해석되지 않는 영화가 있다. 예를 들면, 홍상수의 영화 '강원도의 힘'에서 대얏물에 담긴 물고기가 클로즈업 된 장면은 어떤 뜻으로 상징되는 것인가 혹은 '오! 수정'에서 숟가락과 젓가락은 도대체 어떤 의미로 상징 되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받을 수도 있다. 대개 그렇지만 홍상수 영화에서 어떤 상징이 어떤 의미를 뜻한다고 정의되는 영화가 아니다. 즉, 그 상징은 아마 창작자도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뜻하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보여줘 영화에 어떤 흐름으로 연결되고 있느냐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애러노프스키의 상징들은 해석이 되는 상징들이다. 아니, 오히려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제니퍼 로렌스가 눈을 감으면 집안에 있는 심장 박동이 뛰게 되는데 사실상 집은 제니퍼 로렌스 그 자체이다(계속 신경질적 인 것을 생각하면 당연히 이유가 납득이 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하비에르 바르뎀은 '창조주'이자 '신'일 것이다(아마도 제니퍼 로렌스도 '신'일 것이다). 집이라는 공간 자체에서도 느끼듯 주변 풍경에는 숲밖에 없다. 이 무대는 당연하게도 에덴동산일 것이며 급작스럽게 들어오는 '에드 해리스'와 '미셸 파이퍼'는 '아담'과 '이브'일 것이고, 부부가 나오고 난 후 두 형제가 등장한 돔널 그리슨과 브라이언 그리슨은 '카인'과 '아벨'일 것이다(실제 친형제라는 것도 알고나면 이 설정은 우연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상징들을 끼워 맞추고 나면 내용이 어느 정도 보인다는 말인가. 보이는 것도 있고 보이지 않는 것도 있다. 영화가 단지 상징 끼워 맞추기 즉, 상징 해석놀이로만 진행된다면 그 영화는 훌륭하다고 할 수 없다. 그것은 심심풀이 퀴즈에 불과하지 않을 것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러노프스키의 '마더!'는 훌륭하다(혹여 훌륭하지 않다 하더라도 그 생각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상징놀이로만 영화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이야기는 후반부에 집중하고 있다.
애러노프스키는 기독교 문명만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동서양 문화에서 일컫는 신화 모티브들을 여럿 가져오며 후반부에 집중하고 있다. 이 모든 일들을 '창조주'의 시선이 아닌 '마더'의 시선으로 영화를 진행하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애러노프스키의 카메라들은 집요스러울 정도로 제니퍼 로렌스를 향해 근접촬영 하고 있다. 이 부분은 형식과 내용상 서로 맞닿아 있는데 관객은 제니퍼 로렌스의 시선으로만 영화를 보아야한다. 도대체가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객들은 전혀 모르고 있다는 면에서 제니퍼 로렌스의 상황과 똑같다고 볼 수 있다.
말미에 그 모든 사건들을 다 겪고 나면 이것은 '창조주'의 계획과도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그간 계속 제니퍼 로렌스의 시점으로 영화를 읽어오던 관객들이 '마더!'를 이해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영화의 좋고 싫으냐가 분명 갈라질 것이다. 눈치빠른 관객들은 이미 이것은 신의 계략이라는 것을 알아챘을 지도 모른다.
제니퍼 로렌스의 시점은 원래 관객(인간)의 시점이었다. 허나, 그것이 신의 시점으로 바뀌는 순간 이 모든 상황은 혼란으로 뒤범벅 될 수 밖에 없다. 혼란스러운 인간사(혹은 세계)에서 도대체 그 일이 왜 일어나는지 무엇 때문에 일어나는지 이 세계에 대한 탄식과 무력감 그리고 알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공포감이 애러노프스키가 말하려는 진짜 감정일 것이다. 신의 눈에선 이건 전부 자신이 계획한 수순이고, (아마도 여러명 있을)마더 또한 그 계획안에 들어가 있는 존재이다. 인간의 눈으론 이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고 혼란스러울 뿐이다.
결국 수미상관 구조로 진행된 이 영화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마치 자연의 순환고리와도 같은 것이다. 소멸이 곧 탄생이고 탄생이 곧 소멸이라는 반복적인 구조 속에서 신의 시점이 아닌 인간의 시점으로 생각했을 때는 이것은 무지막지한 공포와 동시에 환멸의 시선일 것이다. 애러노프스키의 전작 '노아'와도 연결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신은 인간이 무차별적인 폭력과 살생으로 큰 실망감을 느끼고 난 뒤 엄청난 홍수를 일으켜 인간과 동물을 포함해 모두 물에 잠겨 소멸시켜 버리기로 한다. 이 상황은 '마더!'의 상황과도 굉장히 유사하다. 가장 꼭대기에서 내려다 보고 있는 것은 창작자인 '애러노프스키'일 것이다. '노아'에서도 그랬지만 '마더!'역시 애러노프스키는 무척이나 비관적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마치, 이 세계가 소멸과 탄생이 순환 반복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
애러노프스키의 레퍼런스들은 기독교와 신화문명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폴란스키의 '로즈메리의 아기(악마의 씨)' 라스 폰 트리에의 '안티 크라이스트' 등 여러 영화들의 내용과 설정이 겹쳐진다. 특히나 이 영화는(다른사람은 몰라도 필자의 경우)라스 폰 트리에의 '안티 크라이스트'랑 상당부분 비슷하게 느껴진다. 에덴 동산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거나 아기가 죽게되고 반기독교적인 면모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유사한 부분이 많다. 하지만 '마더!'는 기독교적인 영화라고 일컫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안티 크라이스트'와는 이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다른 면에서 '마더!'는 지극히 페미니즘 영화라고도 할 수 있는데 반대 입장에서 이것은 반페미니즘 영화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남자가 아니라 굳이 여자를 희생시켜야 하냐는 부분에서 많은 이들이 반페미니즘 영화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영화의 제목이 '마더!'라고 지칭한 것과 서양문명에서 상징되는 여성이라는 숭고함,(아닌 종교도 있지만)신(혹은 창조주)을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라고 일컫는 모습 등 많은 부분 납득가능한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자라고 생각하나 반대 입장에서는 납득 할 수 없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한 주장도 전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렇듯 애러노프스키의 '마더!'는 여러관점에서 여러가지 의미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무척이나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이런 부분은 나홍진의 '곡성'과도 비슷한 점이 있고 여성을 다루는 강렬함에 있어서는 버호벤의 '엘르'와도 비슷한 부분이 있다. 아니면 이 모든게 허우적대는 관객들을 재미있게 구경하는 애러노프스키의 시선이거나 그의 손바닥안에 놀아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분명, 새로운 이야기라고 할 순 없지만 독창적인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수많은 레퍼런스들을 가지고 자신의 폭주하는 생각을 스스럼없이 그려낼줄 아는 감독이 할리우드 포함 전세계적으로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하비에르 바르뎀의 카리스마와 부드러움이 서로 공존하는 듯한 '그'라는 역할에서 그의 얼굴은 영화에 딱 적역으로 보인다. 에드 해리스와 미셸 파이퍼의 연기도 시종 눈이 반짝거린다. 특히나 미셸 파이퍼의 연기는 극의 상황과 설정 속에서 너무나도 잘 녹여 내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제니퍼 로렌스'의 영화일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는 세계 속에서 액션이 아닌 리액션의 연기를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을 견인하는 역할을 훌륭하게 잡아낸다. 서스펜스의 종류에서 애러노프스키의 연출력 공도 있지만 제니퍼 로렌스의 연기와 움직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는 점에서 '마더'의 역할을 뛰어나게 소화해낸다.
분명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할 영화는 아니다. 영화의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이 영화를 읽어내는 혹은 반응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분법적인 태도로 일관할 것이다. 그 태도 자체가 이미 영화의 설정과 상황속에도 녹아 들어가 있다는 점이 흥미롭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그마저도 애러노프스키의 손안에 있는 것 처럼 느껴진다. 이것이 신의 계략이든 인간의 자업자득이든 아니면 세계에 대한 탄식과 무력감이든 혹은 필요악처럼 느껴지는 폭발의 희망이든 애러노프스키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우화 섞인 신화일 것이다. 바로 영화라는 매체에서만 가능한 신화인 것이다.
★★★★☆
정보 : 네이버 영화
사진 : 네이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