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잔영이 맴도는 자리에 헤아릴 수 없는 고별의 아픔이 남아있다.
(스포성 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로이스 스미스, 존 햄, 지나 데이비스, 팀 로빈스가 출연하고
마이클 알메레이다 감독이 연출한 '당신과 함께한 순간들'을 보고 왔습니다.
영화는 오랫동안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다룰것인가에
대한 탐구와 물음을 지속적으로 반복해 왔습니다.
기억은 곧 시간의 흐름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와도 연관이 있겠지요.
올 상반기 나왔던 '맨체스터 바이 더 씨'와 더불어
하반기 '당신과 함께한 순간들'은
헤아릴 수 없는 고별(상처)의 아픔과
기억의 잔영에 관한 인상적인 영화로 남을 듯 싶습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도 하죠.
망각에 저항하고 기록하기 위한 매체로
영화만큼 좋은 매체도 없을 것입니다.
다른 생각을 하다 보면 극의 흐름을 놓칠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이 영화가 지향하고자 하는 형식적인 시도와도 관련이 있기에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영화는 2번 이상 볼 때 더 새롭기도 한데
거기에 가장 적합한 영화 중 하나입니다.)
마조리 뿐만 아니라 테스와 존 또한
기억에 불완전하고 흐릿합니다.
마치 복사본을 다시 복사해서 이윽고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진다는 대사처럼
기억의 퇴적물은 안전하지도 않고 올곧지도 않지요.
파편화된 기억에 망각하거나
수정하거나 미화하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어찌보면 당연한 행동일 수도 있습니다.
형식에서 시간이 흐르는 지점들은
일일이 부연하지 않고
'보이후드'가 시간을 다뤘던 방식처럼
어떠한 방점을 찍지 않습니다.
이것은 영화가 인간이 생각하고 다루는 기억과도
똑같기 때문에 그러하지요.
기억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인간의 상처와 고별을 다룬 영화이기도 할 것입니다.
마조리가 자신의 남편 홀로그램을 젊은시절로 선정한 것,
테스와 존이 남긴 홀로그램이 전부 죽기직전 모습을 담은 것은
헤아릴 수 없는 인간 내면의 고통 속에서
죽은자와 말할 수 없는 것을 홀로그램을 통해
대화하는 것과 외면하고 싶지만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서로 부딪히기도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거울과 대화하는 것 같다고 말한 '존'의 대사처럼
필연적으로 아픈 부분을 말할 수 밖에 없는 심정도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저에게 이 영화는 타르코프스키가 무의식의
기억을 건져 물체화 시켰던 '솔라리스'와
어떤 기억의 한 부분(모습)을 선택적으로 건져야 하는
'원더풀 라이프'의 설정에
말할 수 없는 상처를 건드렸던
(혹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맨체스터 바이 더 씨'를 보는 듯 합니다.
어차피 인간은 생물학적(필연적)이든 물리적(우연적)이든
기억에 자유롭지 못합니다.
(다시 말하면, 시간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일테고
이것은 곧 죽음에 이른다는 것일테지요.)
'맨체스터 바이 더 씨'가 젊은 사람들의
상처가 죽을때 까지 이어진다는 점이고,
'당신과 함께한 순간들'은 노년에 이른 사람들이
상처가 아문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 상처를 망각(하는 척)하며 지낸다는 점에서 측은하고 서늘합니다.
전자는 그럼에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일테고,
후자는 그럼에도 살아갔지만, 또 묻고 남아있는 것들 일테지요.
'당신과 함께한 순간들'에서 주인공들은
살아생전 분명 즐겁고 행복한 기억도 있었을 것입니다.
허나, 중요한 순간 그 홀로그램 앞에
자신의 가장 아프고 비극적이었을때의
과거를 선택한 것은 그 아픔이 죽음에 이르러서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지요.
마지막, 모두가 떠나가고
기억의 잔영들만 남아있는 장면들은
실로 섬뜩하면서도 슬픈 씬입니다.
어쩌면 인간은 '원더풀 라이프'의 설정처럼
가장 행복했던 순간의 기억만 남기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당신과 함께한 순간들'은 그 반대의 설정도
들이밀면서 또 다시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합니다.
(조용히 흘러가는 바다의 심연은
너무나 깊어서 본인조차 가늠할 수 없습니다.)
이 훌륭하고도 지적인 영화는
상반기 '맨체스터 바이 더 씨'와 대조되며
거론할 뛰어난 하반기 영화 중 하나가 될 듯 보입니다.
만약, 당신이라면 행복했던 기억을 선택할 것인지요,
아니면 비극적 기억을 선택할 것인지요.
(중요한 것은 둘 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물어보며 지낸다는 것일테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