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있는 나날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

by 종이마음

영국의 집사라는 문화가 생소한 나로서는 처음 책의 '감'을 잡기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문체 자체가 '생각의 흐름 기법'같은 현재와 과거를 그저 화자의 마음대로 서술이 되는 방식에 조금 당황하기도 했다. 생각나는 대로 풀어낸 화자의 기억은 미흡하기 까지 해서 나중에 어떤 에피소드(장면)는 다시 번복되거나 수정된다.
책 전반에 나타나는 집사의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희생, 충성심, 봉사하는 태도가 우스꽝스러울 정도였다. 다른 나라에게도 집사의 일을 수행하는 사람은 있지만 그들은 모두 하인이고 오직 영국에만 진정한 집사가 있다고 힘주어 말하는 초반부는 나에게 유머로 다가왔다.
그러나 중반부를 넘어서 정말 진지하게 집사의 일을 수행하고, 아버지의 임종 조차 지키지 못한 것과, 그 어떤 모욕을 당하더라고 그것이 그 직업의 숭고한 정신인 듯 오히려 어떤 승리감에 도취되는 주인공 스티븐스를 보며 존경스러운 마음으로 바뀌기도 하였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책임감 있게 생각하고 집사 중의 집사로 거듭나기 위해 사사로운 감정과 불필요한 사담을 모두 뒤로 한채 하루하루 정말 완벽하게 대저택을 운영해가는 모습은 정말 대단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과연 오늘날 이런 직업정신과 주인정신으로 무장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생각했다.
그러나 세계의 평화를 위해 힘쓰는 신사인 줄 알았던 주인이 나치 세력에 편에 서고 이용당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된다. 자신이 준비하고 완벽하게 수행한 연회 만찬 자리와 응대한 손님들이 모두 나치의 영국 물밑작전에 유리한 물길을 터준 장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후반에 들어서도 주인공은 자신은 자기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지극히 온당하게 움직였을 뿐 그 잘잘못까지 내가 나눠가질 순 없다고 한다. 책 전반에 나타나는 결과야 어찌 되었든 그래도 긍지를 가지고 품위를 지키며 나의 일을 잘 해냈다는 자기변명은 독자로 하여금 오히려 반감을 불러일으킨다. 그 품위란 도대체 무엇인가? 스스로에게도 자문을 하자면 깊은 생각에 빠지게 한다.
품위란 어떤 우아한 태도? 가치가 높은 어떤 물건들로 치장하여 만들면 그 사람이 품위 있는 사람이 되는가? 권위 있는 귀족 출신인 달링턴 경의 대저택에 살며 양복을 입고 귀족들을 상대하며 살면 그건 품위 있는 집사인가?
아니다. 품위 있다는 것은 옷(겉치레, 직업, 소속)을 모두 벗고 나 혼자 있을 때에도 자신이 생각하여 만든 어떤 기준점을 지키는 사람이 품위 있는 사람인 것 같다. 예를 들자면, 아무도 없는 밤 건널목에서 횡단보도의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의 품위인 것 같다. 그건 사람마다 다른 품위의 기준점, 가치관이 있을 것이다. 집사도 스스로 주인 나리가 정말 신사인지 생각하고, 내가 응대하고 있는 손님이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지금 이 만찬 자리의 신사들의 영향과 방향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적어도 호기심을 갖고, 생각하고,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 인지 정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진짜 품위 있는 집사일 수 있는 것이다. 그저 주어진 일, 눈앞에 지시된 일들만 완벽하게 처리하느라 사색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스티븐스가 인생에서 놓친 '진짜 나'의 모습니다. 스티븐스는 '자신'이 없다. 그저 대저택의 딸린 집사일 뿐.
자기의 인생을 기획하고 주도하던 집사는 비록 집사의 역사에서 사라졌지만, 그들은 그들은 인생을 산 것이다.
켄턴 양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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