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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 김범석

by 종이마음

어렵지 않아 잘 읽히는 책이지만

페이지를 빨리 넘기기 버거운 책이기도 하다.

언젠가 한번쯤 생각해보았던 주제들도 많이 보였지만

역시 경험담 앞에선 그 생생한 현실감때문에 마음이 참 무겁고

선뜻 내 마음을 정리하기에도 쉽지 않다.

의사는 병을 고치는 사람.

아픈사람을 살리는 사람.

죽음을 막아주는 사람.

나는 막연히 의사는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잘 죽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의사 입장에서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잘 써준 책이다.

1부 예정된 죽음 앞에서

- 죽는 날을 받아 놨다면 하고 싶은 (소소한) 일 들

1. 진짜 맛있는 커피 정말 예쁜 잔에 하루에 한 잔씩 딱 마시기

2. 내가 만들어 놓은 쓰레기들 미리 정리..(휴대폰, 옷, 책, 여러가지 짐 들)

- 죽는 날을 받아놨다면 하고싶은 (거창한) 일 들

ⅰ. 가족과 여행 엄청나게 다니기

ⅱ. 일년에 한 통씩 열어볼 수 있도록 가족에게 편지 남겨놓기

2부 그럼에도 산다는 것은

인생 리셋 (92 P ~ 95 P)

인생 2회차 택시운전기사분의 이야기가 참 좋았다.

소소한 곳에서 행복을 느끼고 내 것이라고 꽉 쥐고 있지 않고, 어느 것에도 집착과 부정적인 마음을 두지 않으며, 과거에도 미래에도 종속되지 않는 현재를 감사하게 여기는 그 마음.

살아있는 부처나 현자같은 느낌..

문장 하나하나 읽어내려가는 내 마음이 가벼워지고 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살아있는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가장 정도가 아닐까.

- 나에게 인생 리셋의 순간이 있었을까?

짦은 회상 속 몇몇 아쉬웠던 순간들이 떠오르지만, 그토록 극적인 변환점이었는가 싶다.

돌아보면 언제나 나는 나답게 주저하고 망설이고 흔들리고 후회하며 나같은(?) 선택을 해온 것 같다. 그래서 무난하고 안정적이고 그저 그렇게 살아온것인가. 힘든 파도를 만난것 같은 어떤 날들도 지금 돌이켜보니 나니까 그런 일들을 겪었고 나답게 침잠했다가 나였으니까 어찌어찌 이렇게 빠져나왔던 것 같기도 하다.

아직 나에게는 인생 리셋의 버튼이 오지 않은 것인가?

3부 의사라는 업

- 나를 돌보기 위해 하는 일이 있나? 나만의 힐링 포인트

결혼 전에 나 스스로에게 돈을 가장 많이 썼던 것 같다. 아마 당연하지 않을까? 돈을 벌고 딱히 어디 쓸 데가 없었으니까..ㅋ... 항상 백화점에서 화장품을 사고 계절 맞춰 새 옷을 세트로 장만하고 발이 아파도 예쁜 구두를 항상 욕심냈다. 결혼 후 나를 위해 쓰는 돈은 현저히 줄어들었고 아이를 낳고 난 후 나에게 투자하는 것은 아예 우선순위 저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는 것 같다. 처음엔 그 격차에 따른 우울감이 확실히 있었던 것 같다. 억울하기도 했고 서럽기도 했다. 이제는 비싼 화장품이나 악세사리보다는 책 읽고 내가 사고 싶은 문구류 사서 글씨도 쓰고 이것저것 그리고 꾸미고 취미를 해나가는 것에 가장 많이 투자(?)를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운동이나 영양제 같이 건강을 챙기는 것에 지대한 관심이 생겼다. 사실 나보다 딸을 꾸미는 재미가 쏠쏠하다. 새 내복만 입혀놔도 이쁜 걸. 뭐니뭐니해도 가족들 모여 앉아 맛나는 것 딱 먹을 때 행복감이 진짜 높고 요즘엔 자연이 제일 예쁜 것 같다. 연두색, 노란색, 초록색, 분홍색 을 바라보며 멍때리는 것이 좋아졌다.

4부 생사의 경계에서

말기 암환자의 삶을 정리하는 시간이 미국은 평균 6개월, 우리나라는 한 달 정도라는데,

한 달은 정말 너무 짧은 것 같다. 일 년 정도라면 내년에는 못 느낄 사계절을 다 만끽하고 떠나는 거니까 좋을 것 같은데, 어찌보면 일 년이 좀 긴 것 같기도 하고... 또 6개월이라고 하면 너무 아쉬울 것 같기도 하고 이것 저것 정리하다보면 후딱 갈 것같기도 하다.

나는 치료목적이 아니라면 연명치료는 거부 할 것이다. 내가 나의 몸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고 선택할 수 있을 때, 나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을 때, 최대한 마음을 정리하고 주위도 좀 정리하고 남겨질 사람들을 위해 시간을 보내고 싶다. 외래진료를 기다리고 의미없는 약을 먹으며 돈과 시간을 낭비하고 싶진 않다. 지금은 이렇게 생각하지만 또 내가 그런 상황에 막상 닥쳤을 때, 그리고 나의 주위 사람들이 그런 상황일 때 다른 판단을 할 지도 모르겠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후회가 들까? 마지막 순간에 미련이 남지 않을까?

내가 떠나고 난 뒤 타인의 기억에 남을 내 마지막이 너무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가끔 아주 가끔 생각나서 희미하게 웃을 정도면 딱 좋을 것 같다. 불쌍하다느니, 안타깝다느니 그런건 아무래도 싫다. 그래도 참 좋은 아이였다. 라고 생각하고 산사람은 바로 현실을 살아가길 바란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이 슬프고 힘든 날 내가 생각났다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만한 편지를 남기고 싶다. 눈물이 날때, 아플 때, 상처 받았을때, 아무래도 움직이기 싫을 때.. 초콜릿 하나 꺼내먹듯이 그때마다 꺼내어 볼 편지를 하나씩 써주고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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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의학과 의사 남궁인 선생은 <제법 안온한 날들>이라는 자신의 책에서 "사람은 일방적으로 불행하지 않다"라고 했다. 의사가 보기에 아무리 불행해 보이는 환자와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은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삶을 이어나갈 것이며 불행은 그들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것이라고. 그 말이 옳다.

...

아버지가 떠난 뒤에도 남은 가족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슬픔을 이겨낼 것이고 살아낼 것이다. 그 슬픔의 빈 공간은 나의 안타까움과 걱정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직접 채워나가야 하는 각자의 몫이다.

193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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