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生 -에밀 아자르
> 선정 이유
조경란, 은희경, 최은영 작가의 추천 소설. 한 번 들으면 잊기 힘든 제목이라 언젠가 읽어봐야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에밀 아자르는 사실 로맹 가리다. 유태계의 러시아인으로 1914년 헌신적인 어머니와 리투아니아-폴란드-프랑스로 점점 서진한다. 결국 어머니가 그토록 원하던 프랑스 영사가 되었고 40년대 중반 소설 데뷔를 하고 레지스탕스 참전 경험을 갖고 있다. 첫 번째 콩쿠르 상을 받고 본격적 작가 생활을 한다. 24살 차이 나는 진 세버그와의 두 번째 결혼과 이혼, 그리고 자살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 70년대 로맹 가리는 이미 문학적 정점을 지났다는 평을 받았고 에밀 아자르를 포함 다섯 개의 필명을 써가며 30권 정도 책을 냈고,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한번 콩쿠르 상을 받고, ‘자기 앞의 생’이 그의 최고의 작품으로 꼽힌다. 아버지의 부재, 유태계로 태어나 유럽을 떠돌고 전쟁에도 참여한 경험들이 삶의 궤적처럼 꼬여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나는 로맹 가리의 유서의 마지막 문장이 인상 깊었다. ‘결전의 날’이라 제목이 붙은 그의 유서는 ‘나는 마침내 완전히 나를 표현했다’라고 끝맺음을 한다. 세상에 어떤 범인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고 떠납니다.’ 하고 떠날 수 있을까? 그의 약간의 허세 섞인 담대함과 예술적 자신감이 단번에 나를 사로잡았다.
> 감상과 토론
약간 성장소설 같아서 조금 어렸을 때 보았으면 더 감명 깊었을 듯하다. 삶의 대한 냉소적이고 관조적인 태도, 애어른 같은 모모가 새의 선물의 진희를 떠오르게 했고 14살의 처절한 성장통을 앓는 모습은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데미안도 생각이 났다. 로자 아줌마와 모모의 관계가 특별해 보였다. 로자 아줌마는 여려서부터 모모를 안쓰럽게 생각하고 자신의 마지막까지 지켜줄 것을 부탁한다. 끝까지 모모를 각별하게 챙기고 때론 그 어린 꼬마에게 기대기도 한다. 키워준 정, 그리고 이 세상 하나뿐인 가족이라는 생각에 서로를 그렇게 아끼고 사랑했을 것이다. 유태인과 아랍인. 언어도 종교도 인종도 다르지만 그들은 서로의 존재 자체에 위안을 느끼고 절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서로를 껴안은 채 담담하게 살아간다. 로자 아줌마의 지하실에서의 마지막은 자신이 생각한 대로 죽을 수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행복한 죽음이 아니었나 싶다. 현대 거의 모든 사람의 죽음은 병원에서의 죽음이다. 어쩌면 죽음을 너무나 두려워하고 부정하게 생각하는 것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 존엄사가 조금 더 자연스러워지면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편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집에서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을까.
모모는 냉소적으로 보이지만 가슴속에 사랑이 충만한 아이다. 냉소적이지 않으면 세상이 주는 상처가 너무 많아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아이다. 사랑하는 강아지를 더 좋은 환경으로 보내버리고 온 힘을 다해 슬퍼한다. 늙은 하밀 할아버지를 찾아가고 그의 이름을 애정을 듬뿍 담아 불러드린다. 모모의 여생에 충분한 사랑과 안정이 가득하길 바란다.
‘자기 앞의 생’의 원제는 ‘여생’이라고 한다. 같은 뜻이지만 뭔가 느낌이 다르다. 여생은 앞으로 남은 인생. 자기 앞의 생은 내가 이제 걸어 나가야 할 길. 시간은 끊임없이 나를 짓밟고 지나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앞에 펼쳐진 생을 뚜벅뚜벅 살아 내야 한다.
> 회원들의 한 줄 평
JE : 사랑하기 힘든 사람들. 그러나 너무나 사랑스러운 사람들. 사랑한다. 살아가자.
SY : 간결하고 담백한 문장들. 그 사이로 사랑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