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통치를 함께 만들어간 인물

위대한 시대에는, 늘 함께한 사람들이 있다

by 모두의국사쌤

우리는 세종대왕을 위대한 왕으로 기억한다.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실현했으며, 조선의 황금기를 열었던 인물.

하지만 어떤 위대한 성취도 혼자서 이뤄질 수는 없다.


세종은 ‘함께할 줄 아는 리더’였다.

자신의 뜻을 강요하기보다, 다른 이들의 지혜를 듣고, 아이디어를 모아 현실로 바꿨다.

그 중심에는 ‘집현전’이 있었고, 그 속에는 당대 최고의 인재들이 함께했다.


오늘은 세종의 업적 이면에서 함께 고민하고 실천했던 조용한 동역자들의 이야기를 전해보려 한다.


정인지 – 세종의 뜻을 끝까지 지킨 문신

정인지는 집현전의 핵심 학자였고, 훈민정음 해설서인 『훈민정음 해례본』을 집필한 인물이다.

세종이 창제한 글자를 논리적이고 철학적으로 정리한 문헌을 남겼다는 점에서, 훈민정음이 단지 ‘새 글자’가 아닌 사상과 원리가 있는 문자로 자리 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한 그는 훈민정음 반포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관련 연구를 이어갔고,

세종의 사후에는 세조 대에 이르기까지 훈민정음의 명맥이 이어지도록 지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장영실 – 실용과 창조의 아이콘

세종이 직접 천민 출신의 과학 기술자를 발탁한 사례로 유명한 인물.


장영실은 자격루(물시계), 앙부일구(해시계), 측우기, 혼천의 등

조선의 과학기술을 눈부시게 발전시킨 중심 인물이다.


세종은 그의 출신을 문제 삼지 않았고, 오히려 기술자로서의 역량을 믿고 국가 연구 프로젝트의 핵심에 세웠다.


이는 계급보다 능력, 배경보다 실력을 중시한 세종의 통치 철학을 잘 보여주는 예다.


장영실 없이는 조선의 과학도 없었다.

그리고 그를 알아본 세종이 없었다면, 장영실 또한 세상에 드러나지 못했을 것이다.


성삼문과 박팽년 – 젊은 이상주의자들의 집현전

성삼문과 박팽년은 흔히 ‘사육신’으로만 기억되지만, 그 이전에 이들은 집현전의 젊은 학자였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 세종의 뜻을 이해하고 실험과 기록, 정리 작업에 깊이 관여했던 인물들이다.


그들은 단지 공부만 잘하는 학자들이 아니었다.

새로운 사상과 제도를 진심으로 지지하고, 현실에 적용하는 데 헌신했던 개혁가들이었다.


특히 성삼문은 후대에 이르기까지 훈민정음의 정신을 계승하려 노력했고,

세조의 왕위 찬탈 이후에도 세종이 남긴 이상을 지키려다 생을 마친 인물로 기억된다.


최항 – 훈민정음의 철학적 뿌리를 설계하다

최항은 음운학과 유교 철학에 모두 밝았던 인물로,

훈민정음을 창제할 당시 소리의 원리, 문자 구조에 대한 이론적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다.


그는 언어를 단순히 ‘소리’가 아니라 의미를 담는 구조물로 인식했고,

세종의 발상에 학문적 힘을 더해 문자 창제를 더욱 체계화하는 데 기여했다.


훈민정음이 단지 읽고 쓰기 쉬운 문자에 그치지 않고,

정교한 음운 체계를 갖춘 ‘과학 문자’로 자리 잡게 된 배경에는 이런 이론가들의 역할이 컸다.


함께 이룬 세종의 시대

세종은 탁월한 통치자였다.

하지만 그는 혼자서 모든 것을 이뤄내려 하지 않았다.


그는 묻고, 듣고, 설득하고, 기다렸다.

자신보다 똑똑한 사람들을 모았고, 그들에게 ‘정치의 말’이 아닌 ‘지식의 힘’을 실현할 기회를 주었다.


덕분에 조선은 한 왕의 업적이 아닌,

여러 사람의 이름으로 완성된 시대를 갖게 되었다.


훈민정음도, 과학도, 농서도, 악보도…

그 모든 기적의 배경에는 ‘함께 만든 통치’가 있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세종의 집현전이 오늘날 교육과 행정에 남긴 유산’을 주제로,

한 왕과 한 연구기관이 어떻게 시대를 바꾸었는지 이어서 살펴보겠습니다.

위대한 사람은, 위대한 공동체와 함께 움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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