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나라, 그 뿌리는 어디서 왔을까
조선 시대 세종대왕의 통치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이름이 있다.
바로 ‘집현전’이다.
집현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지식 공동체였다.
문자, 과학, 의학, 역사, 외교 등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며
세종의 통치를 학문으로 뒷받침한 ‘정책 연구소’이자 ‘인재 양성소’였던 이 기관은
단순히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고, 오늘날 한국의 교육과 행정문화에 깊은 유산을 남겼다.
이번 글에서는 ‘집현전’이 단순한 조선의 한 조직이 아니라,
어떻게 우리 사회의 정책 철학과 학문 중심주의의 기초가 되었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집현전은 왕을 위한 학문기관이었다.
하지만 그 역할은 단순한 책 읽기나 고전 해석에 머물지 않았다.
그들은 현실 문제를 고민하고, 새로운 제도를 실험하며,
‘생각’을 ‘제도’로 바꾸는 작업을 해냈다.
이들은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했고,
농사직설을 펴냈으며,
의학서 정리, 외교문서 작성, 기후 관련 기술 개발에까지 관여했다.
즉, 조선의 집현전은 오늘날로 말하면
국가의 싱크탱크이자 교육 연구소, 그리고 정책 실행 컨설턴트였던 셈이다.
그 시작이 바로 세종의 시대였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정치가 학문과 손잡을 때, 나라의 방향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다.
집현전이 남긴 가장 큰 유산 중 하나는,
정책의 중심에 ‘문(文)’—즉, 이성적 논의와 기록이 자리 잡게 했다는 점이다.
세종은 집현전 학자들에게 자유롭게 토론할 기회를 주었고,
반대 의견도 받아들일 줄 아는 태도로 논의를 끌어갔다.
정책 결정은 논리와 설득, 그리고 기록을 통한 절차를 통해 이루어졌고,
이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글로 움직이는 나라’가 되는 기틀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보고서 중심, 기록 중심 행정을 중시하는 것,
정책에 앞서 공청회, 자문회의, 연구조사를 거치는 문화 역시
바로 이런 전통 위에서 이어진 흐름이다.
집현전은 단순히 똑똑한 사람을 모은 것이 아니다.
‘어떻게 지식을 기르고, 그것을 세상에 쓸 수 있게 할 것인가’에 대한
정치적 실험장이었다.
세종은 집현전 학자들에게 시험을 통한 선발보다,
문제 해결 능력과 사안에 대한 이해도를 중요하게 여겼고,
실제 현안에 투입되면서 실력을 증명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오늘날에도 유효한 메시지를 준다.
지식이 책상 위에만 머무르지 않고,
현장을 움직이고 제도를 바꾸기 위해선
‘배움과 쓰임’을 연결하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
오늘날 공공기관, 교육기관, 국책연구소 등에서
정책 개발과 실무가 결합된 시스템이 존재하는 것도
집현전이 남긴 실천적 학문정신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집현전의 가장 큰 특징은
'현실에 쓰이기 위한 학문'을 지향했다는 점이다.
훈민정음이 그랬고, 농사직설도 그랬다.
단지 권력을 위한 지식이 아니라,
백성의 삶에 닿기 위한 실용 지식이었다.
오늘날의 교육도 다시 이 질문을 품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 우리가 배우는 것들은 과연 누구에게 쓰이고 있는가?’
‘이 지식이 어떤 삶을 더 낫게 만들 수 있는가?’
세종과 집현전은 학문을 위해 백성을 버리지 않았고,
백성을 위해 학문을 길러냈다.
그 정신은 시대를 넘어서 여전히 유효하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교육 시스템과 행정문화는
그 깊은 뿌리에서 집현전의 철학을 닮아 있다.
단지 잘 가르치는 것, 잘 관리하는 것을 넘어
사람을 중심에 둔 문제 해결,
글과 생각을 통해 세상을 움직이는 방식,
지식을 삶에 연결하는 자세는
세종이 집현전을 통해 우리에게 남긴
가장 조용하고 깊은 유산이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세종 이후 집현전의 변화와 해체 과정’을 통해,
왜 그 위대한 공동체가 사라졌고, 우리가 무엇을 놓쳤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빛나던 기관의 퇴장은, 늘 무언가를 묻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