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나니 드는 가족에 대한 생각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가족. 두 음절로 이루어진 단어이건만, 이것이 가지는 의미는 어마어마하다. 결혼하기 전에도 비슷하게 무거운 단어였지만, 결혼 후에는 메가 진화한 포켓몬을 보는 듯이 더 무겁고 입체적인 단어로 다가온다. 최근에 겪은 큰 사건 이후에 더 그렇게 느끼는 것 같기도-.
가장 크게 느끼고 있는 점은, 형제·자매의 선천적 위치에 따른 역할. 여기서 말하는 선천적 위치라 함은 첫째 둘째 막내와 같이 내 의사와 관계없이 주어진 위치를 말한다. 나는 딸 셋인 집의 막내고, 후지는 아들 둘인 집의 장남이다. k-장남(!). 장남·장녀와 같은 표현을 그다지 선호하진 않지만, 적어도 우리 집과 후지네 집에서는 그에 따른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다. 나는 몰랐을 큰 언니의 역할을 바로 옆에서 직관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최근에 있었던 시아버지의 수술과 관련하여 움직이는 후지를 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챙기는 모습에서 갑자기 훅 느껴지는 나이 차이라든지, 생각의 차이 같은 것들. 대체로 나는 엄마와 관련된 일에 대해서 얼추 일이 마무리된 후에 자초지종을 전해 듣거나, 혹은 부득이 큰 언니와 둘째 언니가 시간을 내기 어려운 경우에 행동에 나서곤 했다. 말로 적자니 장황한데,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엄마가 병원을 가야 하는데 큰 언니도 둘째 언니도 동행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내가 엄마와 병원에 함께 다녀오는 것. 즉, 나한테까지 역할이 내려오기 전에 윗선에서(?) 해결이 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세상엔 다양한 성격의 사람이 살고 있으므로,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는 막내들도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할 거라고 생각한다. 나 같은 막내의 모습을 일반화를 하고 싶은 게 아님을 미리 밝혀둔다.
단지 문득, 가족이라는 것은 무엇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하고 독립을 하면, 후천적 가족과 함께 살게 되므로 선천적 가족과의 관계 변화가 일어나리라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더 드라마틱하게 변화하는 중인 것처럼 느껴진다. 물리적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선천적 가족은 내가 '알고 있다 생각했던' 이미지와 달랐다. 만약 내 남편이 나와 비슷한 성향의 막내아들이었다면 얘기가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반대로 첫째들끼리 결혼하면 또 어떤 식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이 됐건, 결혼이라는 것은 참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도 새삼 깨닫고.
그러면서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결혼식에 아버지를 모시지 않았다. 그것이 가지는 의미를 깊게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본식을 앞두고 나름 다각도로 생각하고 내린 그 결정에 대해 놓친 부분들이 있었음을 깨닫는 중이다. 후회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또 같은 결정을 하겠지. 다만. 다만. 아, 잘 모르겠다. 말로 풀어쓰기 어려운 무언가가 마음속에서 무겁게 가라앉아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아버지에 대해 생각하자면 늘 그렇다.
어렵게 어렵게 아버지와 다시 연락을 하고, 관계를 이어가려고 했었으나 아주 사소한 것으로 인해 그 관계마저도 깨지고 말았다. 내 쪽에서 일방적인 통보로 관계를 깨버린 것이나, 그렇다고 내 마음이 후련한 것도 아니었다. 기대했었다. 지난 과거는 과거로 흘려보내고, 늘 바랐던 그런 모습으로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다른 가족들을 배경으로 세워두고 만나는 모습이 아닌, 그냥 아빠랑 나. 그게 전부인 관계로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렵게 결밍아웃(결혼했음을 알림)까지 했지만-.
이 관계가 어긋나 버린 결정적인 이유는 아빠와 내가 느끼는 심리적 거리감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아빠는 생각보다 더 성큼성큼 관계 안으로 들어오셨지만, 나는 그것이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공백의 기간을 메우기 위해 아빠 입장에서 최선을 다해 관계 안으로 들어온 것이리라는 짐작이 가지만, 인지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거은 다른 문제라 나는 천천히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이것에 대해 진작 말을 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그렇게 참고 참다가 폭발하듯이 관계를 박살 내버린 것인데, 아빠가 받았을 상처가 어땠을지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만일 다시 관계를 회복하려고 한다면, 그 열쇠는 내가 쥐고 있는 것일까. 여전히 아빠는 엄마와 우리들을 위해 무언가를 챙겨주고 있었다. 카드지갑을 내려다보는 마음이 복잡했다. 분명한 것은 나는 이것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그래서 엄마집에 두고 왔다.
얼마 전 지나간 생일날에도 사실 아빠 생각이 문득문득 났었다. 하지만, 따로 연락드리지는 못하고 지나갔다.
시간이 내내 기다려주지 않으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런데도 선뜻 행동에 나서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