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

by 차현


나의 여러 취향 중 가장 오래된 것에 대해 써보세요.



성수동에서 열렸던 팝업에서 챙겨 온 글감 중 하나는 '취향'이었다. 대강 손바닥만 한 크기의 종이에 적힌 문장. 얼핏 단순해 보이는 문장이지만, 이렇게 글로 적기까지 꽤 오랜 시간 고민했다. 일단 취향이라는 단어의 뜻을 정확히 알고자 검색을 해보았다. 사전적 정의는 글의 소제목에 적힌 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이다.


가장 먼저 생각난 건 다이어리를 고르는 취향이었다. 시작은 스터디 플래너였다. (지금이야 내지 구성이 상당한 멋진 스터디 플래너가 쏟아지지만, 내가 고1 때는 그런 게 있었...나? 내가 접하지 못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날그날 공부할 분량을 구체적으로 적고, 실행하고 나면 주욱 줄을 그어 지우는 방식으로 썼고, 자투리 공간에 한 문장이라도 짧은 일기를 썼다. 그것은 그런대로 정신적인 환기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기 때문에, 빼먹지 않고 기록했다. 그게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번듯한 다이어리를 구입하는 것으로 발전했고, 지금도 여전히 연말마다 다이어리 원정이라 부르는 외출을 한다. 인터넷으로 구입해도 좋지만, 다음 한 해를 함께할 전우 같은 다이어리는 현장에서 바로 구매해야 제 맛이다(!)

다이어리를 고르는 기준은 세세한 부분에서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대체로 큰 기준은 몇 년째 쓰다 보니 자연스레 정해졌다.


먼슬리가 구성 앞쪽에 있으며, 주말 칸 모양이 평일에 비해 작지 않은 것(평일에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 어떻게 쉬었는지 적으려고 펼쳤는데 칸이 작으면 빈정머리 상함)

만년필을 잘 받아주는 내지일 것.

위클리 없이 프리노트 구성이거나, 큼직한 데일리 구성일 것.


위클리 구성으로도 적어봤는데, 매일 일기를 길게 쓰는 편인 나에겐 적합하지 않았다. 다행히 나와 비슷한 취향인 사람도 적지 않은 모양인지, 위의 세 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다이어리 후보군이 매년 3개 이상은 정해진다. 매년 참으로 행복한 고민을 한다. 어떤 다이어리를 고를까-. 그러면서 내년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다이어리를 적고 있을지 상상해보기도 한다. 불렛저널은 따로 있으므로, 주로 일과를 마친 밤 열한 시 무렵에 책상에 앉아서 일기를 쓰는 모습. 스티커를 붙이기도 하고 형광펜을 아주 드물게 사용하고, 유성펜과 수성펜을 그날그날 취향에 따라 골라서 집어든다. 그 시간은 아무리 피곤해도 생략할 수 없다! 오롯이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며, 하루종일 다양한 감정과 사건이 뒤죽박죽 섞여있는 상태를 고르게 다듬는 작업이다. 손질하지 않은 정원 같던 마음이 정갈하고 차분해진다. 그러면 잠도 더 잘 잔다. 일종의 명상 같은 걸까.




내가 취향을 반영하여 선택한 최초의 기억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것은 과자를 고르는 취향이었다. 감자칩을 상당히 좋아했던 나는, 포카칩의 어떤 색 봉지를 고를지 매대 앞에서 고민하곤 했다. 사실 대체로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 초록색 봉지에 담긴 양파맛을 먹을 것이지만, 어쩐지 오늘은 괜히 파란 봉지에 담긴 오리지널맛을 골라볼까 싶기도 하고. 피아노 학원을 마치고 들른 슈퍼에서 과자 코너에 서 있는 시간도 참 좋았다. 어떤 날은 빵을 사 먹기도 하고(이름이 아직도 기억난다. 마르세이유빵), 어린이에게 상당한 사치였던 4천 원짜리 과자를 덥석 집기도 했다. 의기양양하게 빵이나 과자를 들고 집에 가서 우유랑 같이 행복하게 먹었던 기억. 간식을 먹을 때의 주변 풍경(이를테면 집이 어떻게 생겼었는지)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으나, 행복했다는 느낌은 서른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다.




지금은, 어떤 분야든지 간에 어렴풋하게나마 '기준점(소비측면)'이 되어주는 「취향」이 있다. 때로는 추구미와 현실의 차이가 심해만큼이나 깊어서 그러려니 하고 놔버릴 때도 있지만!(이를테면 인테리어나 정리정...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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