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팝업에서 가져온 12번째 글감
변화: 사물의 성질, 모양, 상태 따위가 바뀌어 달라짐. -네이버 어학사전 출처-
내 삶을 내내 관통하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통제'다. 그걸 깨달은 건 최근이고, 깨닫고 나니 선명도가 확 올라간 이미지를 보듯이 스스로를 더 촘촘히 이해하게 되었다. 왜 그렇게 이유 없이 불안함을 느꼈는지, 돌아보면 별 것 아닌 상황인 듯한데 어째서 당시엔 그렇게까지 불편함을 느꼈는지에 대해서. (과거의 어느 한 시점을 돌아본다는 것은 이미 '결과'까지 아는 상태에서 돌아보는 것이므로 불안 요소가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모르는 상태나 존재, 즉 X에 대해서 인간은 기본적으로 불안함을 느낀다고는 하지만, 나의 경우는 불안함을 넘어서 불편함까지 느끼곤 한다. 내가 스스로 정한 규칙들- 이를테면 출근길 전철은 6-3에서 탑승하는 것 외에도 각종 루틴들-이 언제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겠다. 근데 그게 타의에 의해서 깨질 때, 나는 상당한 스트레스를 느낀다. 사실 인구 밀집도가 이렇게나 상당한 지역에 살면서 그게 어디 지켜질 수가 있는 규칙인가. 게다가 다른 이와 합의되지 않은, 스스로가 일종의 강박처럼 그렇게 하고 싶어 하는 경향인데. 통제할 수 없는 게 많은 환경에 살면서 매 순간의 선택이나 일의 흐름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나는, 당연히 날이 선 채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통제가 안 되는 일= 불안의 요소가 되어, 불안과 자주 짝을 이루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데려온다. 나에게 어떤 문제라도 있나 싶어서 자폐증 검사도 해볼 정도로, 최근 이 성향에 대해 생각이 많아졌다. 일단 내가 하고 있는 노력은, 그것을 '알아차리고', 내려놓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을 위해서. 심호흡을 하는 것이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된다. 꼭 이런 상황이 아니더라도.
왜 통제하고 싶어 하는 성향이 생겼을까. 성장환경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이 글에서 성장환경을 밝히고 싶지는 않으니, 가볍게 언급하고 넘어가자면 나는 내 공간을 가지지 못한 채로 사춘기를 맞이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내 물건, 내 공간에 대한 상당히 강한, 애착을 넘은 집착에 가까운 '지켜야 함'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았다. 결혼을 하고 확실한 내 공간이 생긴 지금,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고 자주 생각한다. 내려놓아도 괜찮다고.
더 나아가 생각해 보면, 통제하고 싶어 하는 성향 때문에 인간관계가 더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나 싶다. 관계를 통제하려는 성향을 나도 모르게 내비쳤을지도 모르는데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럼에도 곁에 있어주는 가족들과 남편, 그리고 쿤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이래저래 미안하고 고마운 일뿐이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지레 짐작하고(이게 정말 상황을 나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다), 그게 곧 일어날 상황인 듯이 걱정하는 것. 이게 가장 나쁜 버릇이다. 그럼에도 잠재적 불안 요소에 대해 예측해 보고(통제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겠지), 미리 대비책을 세우고 싶어 하는 마음도 이해가 간다. 이것도 저것도 다 이해가 가는 요상한 마음이네. 적다 보니 횡설수설하는 독백 같은 글이 화면에 떠 있다. 쓰다만 것 같은 글인데, 여기서 더 문장이 이어 지지를 않는다. 좀 내려놓고, 흘러가는 물길에 유연하게 대처하듯 살아가고 싶다. 그런 방향으로 변화하고 싶다. 그런 척하다 보면, 어느새 그런 사람이 되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