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밴드에 새긴 문구는 “표현•공감”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

by 차현




우리는 14년 동안 연애하면서 커플링을 맞춘 적이 딱 한 번 있다. 홍대 놀이터의 어느 핸드메이드 작가에게 맞췄던 은반지. 디자인이 우리 두 사람 모두 마음에 들어서 그것으로 정하고 호수 측정까지 했던 반지. 하지만 아쉽게도 후지(이전 글에서는 남편, 오빠라고 적었으나, 영 어색해서 이제부터는 연애초기 애칭이었던 '후지'라고 적기로 했다) 반지가 먼저 부서지고 말았다. 반지를 받은 지 5년도 더 지난 시점이라, 혹시 작가님이 아직도 은 반지를 만드시는지 조심스럽게 연락을 취했었다. 작가님의 연락처가 그대로였던 것이 신기했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은 공예를 그만두셨다고. 결혼 준비를 하면서 우리의 첫 커플반지로 반지 교환식을 할 생각이었는데 아쉽게 되었다. 그래서 새로 반지 브랜드를 알아보고(후지가 다 알아봄), 각인 문구를 정하는 단계까지 갔다. 앗, 뭐라고 할까. 평생 가져가는 반지니까 각인을 뭐라고 할지 신중해졌다. 물리학과였으니까 물리학 기호로 할까, 도형이나 그림으로 할까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을 거친 끝에, 결국 우리가 고른 문구는 "표현"과 "공감"이었다. 내 반지에 표현, 후지 반지에 공감이 새겨졌다. 예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새긴 것이다.







하핳, 예쁘구만.


나는 표현이 영 서툴다. 아마 눈송이 같은 흰머리가 뽀얗게 나더라도 그러지 않을까. 표현이란 무엇인가. 검색해 보니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언어나 몸짓 따위의 형상으로 드러내어 나타냄."이라는 정의가 나온다. 언어나 몸짓 따위. 그중에서 나는 대체로 '언어'보다 '몸짓 따위'로 표현한 적이 많았다. 소위 '얼굴로 말하는' 것. 후지와 함께 살던 초기에 이것 때문에 많이 갈등하였다. 독립을 한다는 것과 30년 넘게 나와 다른 환경에서 자란 이와 함께 산다는 것은 그 자체로 스스로에 대해 깊이 돌아보고 생각하게 만든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는 그동안 굳이 언어로 표현하지 않아도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환경에 있었던 것 같다. 막내여서 그랬을까. 이유가 무엇이 됐든, 선천적 가족과는 얼굴로 말하는 게 통했을지 몰라도 후천적 가족은 그 점을 힘겨워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바꿔야 한다. 어떻게 언어로 '잘' 표현할지에 대해서부터 생각했다. 이 고민은 안 좋은 얘기를 꺼내야 할 때 도드라졌다. 예를 들어, 바닥 청소를 먼저 해주었으면 할 때라든지, 포장 비닐을 바로 정리해 주었으면 좋겠다든지와 같은. '이렇게 해주었으면 좋겠어!'라고 말을 해야 할 때. 후지는 늘 말했다.


그냥 말하면 되지, 왜 화를 내요?


앗, 나는 나름 좋게 말한다고 한 거였는데, 상대방이 듣기엔 내가 화를 내고 있었나 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생각 끝에 나온 결론은 내 두려움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미움받을지도 몰라.


미움받을지도 모른다는 것. 다른 이유에 가려서 한참을 생각의 바닥까지 내려가야만 했던 이유. 바닥을 먼저 청소해 달라고 말한다 해서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미워하진 않을 텐데. 이러면 어쩌지 저러면 어쩌지 하다가 말할 타이밍을 놓쳤다가 엉뚱한 타이밍에 말을 꺼내기도 한다. 그러면 후지는 더욱 어리둥절해지고 만다.. 까슬거리는 옷감이 목에 닿는 듯이 불편한 그 상황이 두려웠던 걸까. 그러다 보니 더 뚝딱거리면서 딱딱하게 언어적 표현이 나가고 만다. 원인을 알았으니, 이제 고치면 된다. 문제는 사람이 무언가를 고치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는 것. 예전보다야 많이 나아졌지만 나는 여전히 표현이 서툴다. 함께 지낼수록 까슬했던 부분이 둥글게 맞춰지기 때문에 후지도 내가 잔소리를 하기 전에 먼저 움직이는 경우가 생겼고, 나도 표현을 어떻게든 뚝딱거리지 않으면서 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함께 살기 전에는, 결혼하기 전에는 이런 고민을 할 줄 정말로 몰랐다! 역시 뭐든 직접 경험해봐야 하는구나(?)






공감: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 또는 그렇게 느끼는 기분. (네이버 어학사전 출처)

그렇다는 건, 자기도 그렇게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잖아. 방금 단어의 뜻을 찾아보고 찬찬히 읽어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후지는 INFP다. 물론 MBTI를 맹신하지는 않지만, 누군가를 이해할 때 참고 자료 정도로 활용한다. 하지만 어쩐지 후지의 MBTI는 무언가 착오가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F부분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T가 아닌가-싶은 상황을 많이 봤다. 그런데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면, 그것 또한 그야말로 공감이 된다. 소중한 사람이 무언가로 인해 고민하거나 괴로워한다면, 그 원인을 없애주고 싶겠지. 그러면 대체로 "정말 힘들었겠다!"보다는 "어, 그러면 이렇게 해보면 되지 않을까?"라는 식으로 말하게 된다. 나는 해결책을 바란 것이 아니었고 처음부터 이미 듣고 싶은 말이 있었던 거니까. 후지가 나에게 공감해 주는 방식은 '고민 또는 괴로움 따위에 대해 해결책을 건네는 것'이다. 함께 지내다 보니 후지의 공감 방식도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본질은 이 사람이 나의 말을 들어주고, 대화를 한다는 것이니까.

*정말로 원하는 위로를 받고 싶을 때에는 이야기에 앞서 미리 공지한다. "내가 지금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할 건데, 다 듣고 그냥 우쭈쭈만 해줬으면 좋겠어."라고. 이와 같이 정확한 인풋이 들어가면, 훌륭한 아웃풋이 나온다.


후지의 반지 호수는 21호. 그래서 글자가 더 잘 보인다.


어떤 부분이 좀 모자라고 부족하면 어때. 함께 인생을 견디고 살아간다-는 본질만 잃지 않으면 되지.

근데 그러다가도 "이런 걸로도 다툴 수가 있구나." 하면서 싸우고, 돌아서서 생각하고 화해하고. 으아, 표현은 정말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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