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먹는 도시락
나는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평일 저녁 파트타이머로 일하고 있다. 매일 저녁 10시에 일을 마치는 나와 퇴근시간을 맞출 수 있어서 후지와 함께 나타샤로 퇴근을 함께 하고 있다. 나타샤는 우리의 차를 일컫는 애칭이다. 본디 시아버님의 차였으나, 현재는 다른 차를 구입하셨기 때문에 나타샤가 우리에게 올 수 있었다. 이 차도 2012년부터 봤으니까 벌써 10년 넘게 함께하고 있다. 2000일 여행도 나타샤가 함께 했고, 우리가 결혼을 하는 날도 나타샤가 함께했다. 할 수 있다면 하객 사진으로 나타샤도 함께 찍고 싶었는데 :) 그 정도로 오래 정이 들고 고마운 우리의 나타샤.
내내 서서 일하기 때문에 퇴근 후 나타샤에 앉으면 촤하-하고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 드는데, 그 느낌을 정말 좋아한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내었다는 뿌듯함과 함께 밀려드는 안락한 느낌. 차가 주는 특유이 아늑한 느낌은 방이 주는 것만큼이나 좋다. 속상한 일이 있었더라도, 여기에 앉아서 후지와 이야기를 하며 털어내면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느껴지고, 나는 그렇게 회복한다.
최근에는 나타샤에서 도시락을 꺼내먹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중이다. 집에 도착해서 먹으면 너무 늦은 야식이 되어버리고, 1인 근무매장이라 따로 휴식시간이 없기 때문에 나름 타협한 것이 퇴근길의 도시락! 근무하는 동안 어쩐지 든든한 마음이 든다. "이따가 차에서 먹으면 정말 맛있겠다 흐헤헿"하는 마음으로 힘을 내서 일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
오늘의 도시락은 흰쌀밥과 삼겹살과 볶은 김치, 도시락김이다. 게다가 금요일! 가을비 내리는 퇴근길의 밤에 도시락 먹을 생각을 하니 벌써 배가 고프다. (아, 이런 날은 부대찌개나 우동 같은 국물 요리에 하이볼이나 집에 있는 와인을 꺼내 마셔도 좋을 것 같은데) 오늘도 힘내서 근무합시다!
그리고 근무를 마친 밤 10시. 복잡한 골목을 빠져나와서 나타샤는 집으로 시원하게 나아간다. 집에서 쿤이가 기다리고 있겠지.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며 천천히 꼭꼭 씹어먹는다. 시장도 반찬이고 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도 반찬이라 차린 게 없어도 괜찮다. 아, 도시락김은 넉넉하게 2봉 챙겨가길 잘했다.
주말에 뭐 할지를 이야기하며 함께 돌아가는 퇴근길. 사는 거 별 거 없구나-하는 생각도 든다. 일하고, 같이 퇴근하고, 맛있는 것을 먹고. 내가 생각했던 어른의 모습과 지금의 나는 분명 꽤 많은 차이가 있지만, 지금의 나로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