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첫 번째 신혼집

비록 전세사기 엔딩일지라도.

by 차현

우리의 첫 번째 신혼집은 기존에 내가 살던 동네였다. 고맙게도 남편이 우리 동네로 와주었다. (덕분에 나는 지금도 본가와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 그때가 약 3년 전이니까, '전세사기'라는 말이 나오던 시기였다. 함께 살 집을 보러 다니면서, 보증보험 가입이 가능한 집으로만 골라서 보고 다녔다. 그러면서도 '에이, 우리가 전세 사기를 당할까 설마?" 했는데, 정말로 우리의 첫 번째 신혼집 엔딩은 전세사기 엔딩이었다. 다행히 지금은 모두 해결되어 회상하며 글을 쓰지만, 전세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는 도무지 실감 나지 않을 정도로 멍했다. 한편으로는 보증보험에 가입이 되어있으니, 어떻게든 방법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나는 우리의 신혼집이 밉지 않았다. 비록 이 엔딩이 전세사기 엔딩이라는, 좋지 못한 엔딩으로 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난 2년 간의 우리 추억이 담긴 곳이기도 하다. 남향이라 볕이 잘 들고, 보일러가 있는 뒷베란다가 있어서 나름 수납공간이 있었고, 방이 2개이면서 붙박이장도 딸린 곳이었다. 식물이 잘 자라고 탑층이고 한 층에 한 집씩만 살아서 층간소음이 거의 없던 빌라이기도했다. 해 질 녘 하늘이 물드는 것을 함께 바라보기도 했던 집. 단순히 '전세사기 당했던 집'으로 낙인찍고 싶지 않았다. 처음으로 본가를 나와서 살며 처음 겪어보는 일, 처음 느껴보는 감정을 오롯이 품어주던 우리 집. 보증금 반환 날짜를 확정받고 다시 이사 준비로 바빠질수록, 이 집과 같은 집은 다시없겠구나-하는 것을 직감했다. 뭐든 처음은 그 자체로 강렬하니까. 보증 보험을 가입해서 정말 다행이었던 점은 일단 보증금을 반환받은 것이 가장 크고, 그다음으로는 이 집에 대한 추억을 지켜준 것이었다. 나는 이번 글을 통해, 우리의 첫 번째 신혼집의 추억을 돌아보고자 한다. 현재는 가압류 상태가 되어 누구도 살고 있지 않은, 우리의 집이었던 집. 신혼집의 기억-이라고 하면 딱 세 가지가 먼저 떠오른다.





강아지가 건네주는 위로

우리 집에는 개 1, 인간 2가 살고 있다. 인간보다 개를 먼저 적은 이유는 우리 집의 대장은 사실 쿤이라는, 포메라니안 강아지이기 때문이다. 사람 나이로 환산하면 부모님 또래일 것이며 자손을 낳은 경험도 있는, 그야말로 '으른'이라고 생각해서 우리끼리 그렇게 정했다. 어린 할아버지인 쿤은, 열 살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귀엽고 또 귀여운 생명체다. 서로 다른 집에 살면서 가끔 만나는 것과 함께 부대끼며 사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그건 강아지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처음 함께 지내면서 쿤에게 부담을 느낄 때도 있었다. 모든 순간을 누군가가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을 가도, 밥을 먹어도, 퇴근하고 지쳐서 혼자 으어어-하고 뻗어있을 때도 포도 3알이(?) 보고 있었다. 혼자 있고 싶다 생각이 들어도, 이 작은 생명체는 꿋꿋이 곁을 지켰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키더라도 이렇게까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한결같이.

돌이켜 생각해 보면 새 가족에게 적응하는 동안 많이 울었다. 이유 없이 울었던 것은 아니고, 인생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것에 대한 울음이었다(?). 보통 쿤과 나 둘만 집에 있을 때 그런 상태가 되곤 했다. 앞으로는 예전처럼 본가에 들어가서 살 일은 없겠구나, 설령 다시 본가에 들어가서 살더라도 예전 같은 느낌은 아니겠지-하면서 아무 맥락 없이 갑자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렇게 부엌에 쭈그리고 앉아서 엉엉 우는데 발목 언저리가 보드랍고 따뜻해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쿤이 다가와서 자기 좀 보라는 듯이 나를 핥으며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얼굴이 유독 다정해 보여서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손을 내밀었더니 그 손도 다정하게 핥아주면서 웃던 쿤이 얼굴. 신혼집을 떠올리면 이 에피소드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2kg 남짓한 생명체가 건네는 위로가 이렇게나 따뜻하고 강력하다. 고맙고 고마워서 작은 털복숭이 쿤을 꼭 안아주었다. 그때 처음으로 선명하게 느꼈다. 강아지는 이런 존재구나. 나는 쿤에게 받은 사랑만큼 다정하게 대해주고 있을까. 강아지의 절대적인 사랑을 알아버려서 어쩌지! 나도 쿤이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 쿤이에게 받은 사랑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라지만, 오늘도 내 나름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직접 반찬을 만들어보기

그즈음의 나는 엄마에게 이런저런 반찬 레시피를 배워왔다. 대강, 적당히,라는 표현이 많은 레시피지만 직접 해본다며 얼추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있었다. 그렇게 배워온 레시피는 지금 보니 나물 반찬과 떡국, 김밥 등등인데, 특이한 것은 고기반찬 레시피가 하나도 없다는 것. 레시피북만 보면 고기 안 먹는 사람 같은데 사실 전혀 그렇지 않다. 양념을 한 고기보다 구워 먹는 고기를 좋아해서 따로 배워오지 않았던 건가. 레시피 편식을 한 건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그렇게만 적혀있다. 그럴 수도 있지, 뭐. 하지만 언젠가 엄마에게 배워오고 싶다. 검색만 해봐도 레시피가 와장창 쏟아지는 시대지만, 엄마의 레시피는 역시 내 입맛에 가장 잘 맞는다. 그런 당연한 이유 말고도 엄마의 레시피에는 특별한 점이 하나 더 있는데, 그건 바로 '간편함'이다. 맛있는데 만드는 방법이 복잡하지 않다. 따라 해 볼 엄두가 나는 레시피라고 해야 할까. '오, 이 정도면 시도해 봄직하다!'라는 용기를 주는 레시피. 그래서 한 동안 우리 집에는 시금치 무침과 콩나물 무침, 두부조림이 식탁에 올라왔었다. 콩나물 무침과 두부조림의 조합은 없던 입맛도 돌아오게 하는 조합이라 가장 좋아한다. 앗, 그런데 오빠도 좋아하려나!? 그건 모르겠다. 사실 오빠가 나보다 훨씬 요리를 좋아하고 많이 해봤고 심지어 잘한다... 그래도 나는 꿋꿋하게 반찬을 만들고 함께 먹자고 권한다. 잘 먹어주어 고마워.





자전거 경기를 보며 야식 먹기

다소 뻔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함께 살면서 강렬하고 짜릿하게 좋았던 점은 함께 퇴근하고서 그날그날 먹고 싶은 메뉴를 골라 야식을 먹으며 자전거 경기를 본 것. 4월의 지로디탈리아, 7월의 뚜르 드 프랑스, 8월의 부엘타 아 에스파냐까지. 경기가 펼쳐지는 유럽 쪽은 우리와 시차가 나서 마침 환한 낮이다. 테레비로 좋아하는 선수와 팀을 응원하면서 야식을 먹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지금이야 매년 챙겨보는 자전거 경기도 신혼집에 같이 살면서 보기 시작했다. (로드 바이크를 좋아하는 오빠는, 직접 타는 것도 좋아하고 경기를 보는 것도 좋아한다. 한때 나도 함께 타러 나간 적이 있었으나, 지금은 경기를 보는 쪽으로 돌아섰다) 생각했던 결혼 로망은 이게 가장 컸다. 같은 집에 돌아와서 맛있는 것을 먹으며 쉬는 것. 그냥 그거면 됐다고 생각했다. 화려하고 커다란 집이 아니어도, 우리 세 식구가 안전하고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 집.

야식 메뉴는 주로 밀키트로 나온 닭갈비와 부대찌개였다. 크-. 지금 생각해도 참 빈틈없이 행복한 기억이다. 금요일밤이면 종종 맥주도 곁들였다. 지금은 건강을 생각해서 자제하고 있지만, 신혼 초반에는 선수들이 밟는 자전거 페달만큼이나 열심히 야식을 달렸던 것 같다. 아, 오빠가 살이 오른 이유는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사 온 다음 한동안은 일부러 신혼집 근처에 가지 않았다. 여전히 우리 집 같고, 정이 많이 들었기 때문인지 이사 가고 땡! 하듯이 돌아서기가 어려웠다. 8개월이 지난 지금은 예전 집 앞으로 잘 지나다닌다. 좋은 사람들이 나타나서 이 집이 가진 장점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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