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된 이후로 처음 아파트에 살아보았다.
전세 사기 이후, 우리는 급하게 집을 매매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생각해 봐도 여러모로 아쉬운 매매 타이밍이지만, 이미 그렇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다. 갑작스럽게 아파트에 살게 된 우리 세 가족. 쿤과 후지는 비교적 적응을 잘하는 것 같았으나, 가장 힘들게 힘들게 적응한 것은 나였다. 빌라와 아파트의 주거 환경이 이렇게나 다를 줄 몰랐다.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은 모두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니, 그런가 보다-하고 봐주시길!
쓰레기 배출 요일이 정해져 있다.
물론 빌라도 최종 배출 날짜는 정해져 있다. 하지만 빌라 내 설치된 공용수거함에 배출하는 것은 정해진 날짜가 없었다. 앗, 그러면 집 안에 쌓아두었다가 정해진 요일에 내야 하는구나. 상당히 의아했다. 900세대가 넘는 집들이 이틀 남짓한 시간에 모두 맞추어 배출이 가능할까? 싶었는데, 가능하다. 나만 몰랐다. 다들 이미 잘하고 있었구나. 그렇게 나도 성공적인 분리수거장 데뷔(?)를 마쳤다. 매주 목요일이 되면 각종 대형 포대자루가 펼쳐져있고, 한켠에는 택배 종이 박스로 만든 마법진 같은 공간이 생긴다. 경비 아저씨가 수시로 왔다갔다하시며 정리하는 것도 보았다. 그리고 어떻게 배출해야 할지 헷갈리는 품목도 여쭤보면 친절히 알려주신다. 데뷔하는 날, 무심히 쓰레기를 내는 척하였지만 사실 속으로는 다소 긴장하며 나갔었다. 잘하고 와야지 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에(!)
음식물 쓰레기 배출 방식도 여기 와서 처음 써보는 기계로 배출하고 있다. 교통카드에 금액을 충전해서 태그 할 때마다 배출량에 비례하여 요금을 차감하는 방식인데 이 점은 마음에 든다. 빌라에 살 땐 누구든 뚜껑을 열 수 있게 큰 음식물 쓰레기 배출통이어서, 타 빌라 사람들이 넣어도 알 길이 없었는데. 누군가가 상주하여 관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만족스럽다.
주차 빌런이 있다. 꽤 많이.
주차 관련 갈등은 주거 형태를 막론하고 어디든 마찬가지이겠으나, 적어도 빌라에 살 땐 세대수가 적고, 살다 보면 싫든 좋든 누가 어디에 사는지 알게 되기 때문에 주차를 엉망으로 한 경우, 단박에 누가 했는지 알아볼 수가 있었다. 그에 비해 아파트 지하 주차장엔 언제나 차가 가득하고, 엉망으로 주차한 차가 있어도 당장에 누군지 알아내기가 어렵다. 익명성에 기대는 걸까. 늘 엉망으로 주차하는 차 번호를 외울 지경이 되었지만,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모양이다. 아니면 뭐라 하든 말든 늘 그렇게 자기 멋대로 해놓고 가는 건가? 나 역시 그 차를 지나갈 적에만 혀를 끌끌 차고 지나가버린다.
실외기 비둘기 문제
이건 내가 속한 아파트가 구축이라 해당하는 문제인 것 같다. 빌라 탑층에 살 때는 실외기를 바깥 앵글에 설치해 두어도 별 문제가 없었는데, 오히려 10층 가까이 올라온 지금은 비둘기 때문에 다소 난감하다. 여기까지 와서 똥을 누는 것도 짜증 나는데, 아침 일찍 꾸역꾸역 찾아와서 꾸룩꾸룩 귀신 소리 비슷하게 울곤 한다. 찾아보니 함부로 비둘기를 쫓아내면 안 되는 것 같다. 심한 경우엔 둥지를 틀고 알까지 낳는다고 한다. 어우, 세상에. 우리는 곧 그물망을 씌워둘 예정이다. 귀소 본능까지 강해서 한 번 간택한 집은 두고두고 찾아온다는 비둘기. 아무 감정 없었는데 이사 오고 나서는 집 밖에서 비둘기를 만나도 그다지 좋은 감정이 들지 않는다. 공존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은 마땅하나, 당장 겪는 불편함이 커서 미운 마음이 먼저 들어버린다.
각종 층간소음
이사 올 때 분명히 물어봤었다. 층간소음이 있는지. 그랬더니 "아... 곧 이사 가신대요."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했다. 이때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이 사람도 살다가 시끄러워서 윗집에 항의하러 간 적이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실제로 윗집은 이사 갈 예정이었으나, 부동산이 돌아가는 판국을 보다가 자기들이 매매를 해버린 케이스다. 공동주택은 어쩔 수 없이 남의 집 소음이 들리는 경우가 있고, 빌라 살 때도 분명 층간 소음이 있었다. 그런데 유독 나의 윗집 사람들이 층간 소음을 꽤나 유발하는 사람들이라 상당히 유감이다. 발망치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기타 연주+노랫소리. 나는 왜 층간 소음으로 살인이 나는지 아주 잘 이해하게 되었다. 이사 오고 나서 귀마개를 새로 구입하고 지금도 늘 끼우고 잔다. 그럼에도 쿵! 하는 큰 소리가 나면 도리없이 깨는 수밖에 없지만. 이 집에 정 붙이기 어려웠던 이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층간소음 문제. 여전히 진행형이며, 윗집 사람은 여전히 배려가 없다. 편지를 써서 붙이기도 하고 찾아가기도 하였으나, 음. 효과가 별로 없다. 자기가 똑같이 겪어보지 않는 한 나아질 것 같지 않다. 왜 매매한 거야 이사나 가버릴 것이지.
그래도 그중 다행인 것은, 나도 차차 적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소리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소음이 들려오면 귀를 쫑긋 세우고 나도 모르게 그 소리에 집중하곤 했지만 이제는 얼추 뭐가 뭔지 알 것 같아서 분석하기보다는, 마음 쓰지 않으려 노력하는 중이다.
경비실과 관리사무소
아파트의 큰 장점 중 하나로 관리사무소와 경비실을 꼽던데, 9개월째 살고 있는 나한테는 크게 와닿지는 않는 이야기다. 물론 언제나 관리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이지만, 다시 빌라에 산다 해도 크게 불편할 것 같지 않다. 다만, 공동 현관 출입문이 고장 나거나 누군가 무심코 열어둔 채로 뒀을 때 다시 닫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내가 인지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일을 하는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쓰레기 배출 정리, 순찰, 낙엽 정리 등등. 아마 이런 사소한 경험들이 모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긴 기간에 걸쳐서 경험이 쌓인다면, 경비실과 관리사무소의 존재가 없는 주거 환경이 불편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택배 받을 때/ 가구 들일 때 덜 미안하다
엘리베이터가 있어서!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에만 살았었기 때문에, 택배나 카드를 수령할 때 마음 한편이 죄송했었는데 지금은 괜찮다. 엘리베이터 없는 빌라 탑층은 가구를 들일 때 추가금을 내야 했었다. 추가금을 내고도 마음이 불편했었는데 지금은 엘리베이터님 덕분에 쾌적하다.
단지 내 헬스장
3개월에 단돈 3만 원. 안 끊을 이유가 없어서 후지와 함께 관리사무소에서 등록하였다. 저렴한 대신 시설이 꽤 낡았지만, 러닝머신만으로도 상당히 만족하며 다니고 있다. 단지 내에 있기 때문에 "운동하러 가야지!"하고 마음먹을 적의 심리적 부담감이 덜하다.
집안 공사 시, 주변에 동의를 구한다
어떤 공사를 언제부터 언제까지 진행하는지, 업체는 어디인지까지 명시해 둔다. 그리고 소음과 분진이 꽤 발생하는 항목이 포함된 경우라면, 인접한 집들을 돌며 동의서를 받는다. 우리도 한 번 동의서에 서명한 적이 있다. 우리는 인테리어 자체를 하나도 하지 않고, 심지어 그 흔한 도배도 하지 않고 들어와 살고 있기 때문에 동의서를 받을 일이 없었다. 그래서 다른 집이 이사하는 것을 보고 "아, 보통의 아파트 이사는 저런 식으로 진행하는구나." 했다. 집을 보고, 계약을 하고, 날짜 협의를 한 다음 기존 거주자가 나간다. 그러면 보통 2주에서 4주 정도의 인테리어 기간을 두는 것 같다. 그래서 3개월 정도 여유를 두고 이사 준비를 하나보다.
혹은 간단한 하루짜리 공사의 경우라면 직접 벨을 누르고 소정의 선물을 주며(?) 양해를 구하기도 한다. 나의 옆집은 꽤 오래 거주한 걸로 보이는 분들이 살고 계신데, 얼마 전 싱크대 공사를 한다며 옥수수를 주셨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어디가 더 좋다 나쁘다를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어디든 마음 편히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는 곳이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다음번에 이사를 갈 땐 어디가 되었든 탑층으로 이사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