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에 구애받지 않는다면 당신은 어디로 가고 싶습니까?
나의 대답은 한결같이 강원도 속초와 고성. 아무런 연고가 없는 곳이지만, 내적 친밀감이 상당한 동네다. 어렸을 때 가족 여행으로 다니기 시작한 곳이 신혼여행지가 되기까지, 나는 꾸준히 그 동네를 애정하고 있다. 물론 짝사랑이다. 여행지가 삶의 터전이 되었을 때의 '변화'를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았으므로, 앞으로 꽤 오랜 시간 동안에도 짝사랑을 하는 것이 낫겠다. 정말 좋아하는 취미는 업으로 삼지 않는 것처럼.
사실 고성은 세로로 길고 큰 도시다. 그중에서 내가 가 본 곳은 일부분일 뿐이라, '고성을 좋아해요!'라고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좋은 걸 어떡하겠어!
태어나서 처음 속초와 고성 땅을 밟았던 것이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가족 여행으로 갔던 곳이라는 것만큼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고성 해변가에 인접한 한 리조트를 여름휴가 때마다 갔었다. 숙소에서 바다가 바로 보여서 일출도 볼 수 있었던 곳. 1층엔 피자가게가 있어서 치즈가 구워지는 고소한 냄새가 솔솔 났었던. 지금은 다른 회사 소유의 리조트가 되었기 때문에 외관이나 내부 구조가 꾸준히 변하는 중이지만, 예전부터 다녔던 사람만 알아볼 수 있는 포인트들이 아직은 몇몇 남아있다. 그런 포인트를 앗, 하고 발견하면 마치 어렸을 때 찍은 사진이나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기쁘고 반갑고 아련한 마음이 든다. 그렇다고 영영 변하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있으라는 것은 아니다. 발전을 위한 변화는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니까, 사라지는 모습들이 당장은 아쉬워도 길게 봤을 땐 이게 맞다고 생각한다.
초등학생 때까지 갔던가-. 그랬다가 내가 스물다섯이 되었던 봄에 다시 찾았던 그곳. 가는 길도 설레고 주변 관광지를 돌아보는 것도 좋고 다 좋았다. 스마트폰으로 내 위치를 틀었을 때 '강원도 토성면'이라고 뜨는 것 자체가 좋아서 괜히 오늘과 내일, 다음 주의 날짜까지 훑어보곤 했다. 어차피 다음 주면 나는 다시 성난 도시로 돌아가 있을 텐데. 어쨌거나 지금 나는 여기에 있으니까, 충분히 만끽하자! 하면서 아쉬움을 벌써부터 달래던 날들. 이쯤 되니 이곳에 정착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결혼하고 맞이한 첫 번째 결혼기념일. 우리는 쿤과 함께 다시 그곳을 찾았다. 강아지 동반이 가능한 타입의 숙소로 예약해서 하루 묵고 돌아왔던 여행. 쿤과 함께한 장거리 여행이었다. 강아지 전용 침대도 있고, 쿤을 위한 어메니티도 주고 마음껏 리조트 내부를 산책할 수도 있었던 여행. 막상 쿤이는 집에 돌아오고 나서야 얼굴이 활짝 폈지만(!), 짧고 굵은 행복한 여행으로 남아있다. 장거리 이동에 쿤에게 꽤나 큰 부담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던 여행이지만, 한 번이라도 함께 다녀온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아아, 또 가고 싶네! 언젠가는 DMZ박물관도 찬찬히 둘러보고 싶다.
좋아하는 사진들.
이 글을 쓰면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나는 강원도, 그중에서도 속초 고성 쪽이 왜 좋은 걸까.
1. 바다가 있다. 시릴 만큼 파랗고 드넓은 바다. 바다의 기본값이 동해가 된 것도 아마 속초와 고성 때문일 것이다. 어린 나이에도 바다가 주는 시원함은 화하게 다가오니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묘하게 변해가는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다녀올 가치가 있다. 눈이 내리는 바다를 숙소에서 따뜻한 커피를 손에 들고 내내 바라보고 싶다.
2. 어린 날의 즐거운 기억. 이야, 그래서 기업들이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손님에게 신경을 쓰는 건가보다. 이렇게 자라서까지 충성 고객으로(!) 다시 찾아오니까. 그러네. 나를 돌아보면서 새삼 깨닫는다.
3. 바다와 더불어 산이 있다. 강원도 산세 특유의 시원하고 선이 굵은 능선을 가진 설악산이 병풍처럼 둘러진 곳. 강원도를 좋아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같은 이유이지 않을까.
그런 이유로 다시 찾고, 또 찾다 보니 순환고리처럼 계속 오게 되는 것 같다.
가슴 한편에 마음의 고향처럼 떠올릴 수 있는 곳이 있어서 정말 감사한 일이다. 엄마와 아빠가 가족여행으로 내게 준 선물은 이것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