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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별 게 아니더라, 살다보니 다 지나가더라

일흔을 넘긴 어느 할아버지의 이야기

by 순행자

살아보니, 정말 별 게 아니더군요.

살다보니, 참 다 지나가더라고요.


이 말은 요즘 제가 가장 자주 하는 말입니다.


어느 날은 동네 목욕탕에서, 어느 날은 시장 어귀의 국밥집에서, 또 어느 날은 아내와 마주 앉은 저녁 밥상머리에서.

젊은 시절엔 절대 이해 못 했을 말이었을지도 모르죠.


그저 대충 사는 사람들의 체념처럼 들렸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 말이 제 인생의 요약 같네요.




젊었을 땐, 모든 게 다 중요해 보였습니다.

남들보다 앞서야 했고, 부족하면 안 되었고, 실패하면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안간힘을 썼습니다.


직장에서 잘 보여야 했고, 작은 실수 하나에도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내가 부족해 보일까봐, 누군가에게 뒤처질까봐, 늘 가슴이 쫓기듯 살았지요.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요.

그 수많은 걱정들 중에 지금까지 남아있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회사에서 혼났던 일도, 누군가에게 들었던 서운한 말도, 심지어 내가 그렇게 붙잡고 싶었던 인정도…

다 흐려졌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그때는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왜 그렇게 아등바등했는지,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살아서 여기까지 왔다는 게 고맙습니다.


살다보면 진짜 무너지는 날도 있습니다.

사업이 망하고, 통장에 돈 한 푼 없던 날이 있었습니다.


그날 아내와 마주 앉아 된장국 한 그릇으로 끼니를 때우며,

"이게 끝인가 보다" 싶었습니다.


그땐 웃을 여유도, 내일에 대한 믿음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날도 지나가더군요.


다음 날은 어떻게든 열렸고, 또 그 다음 날도 왔습니다.

마음을 단단히 먹으려 하지 않아도, 시간은 알아서 나를 끌고 갔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다 보니, 한 달이 지나고, 몇 해가 흘렀습니다.

지금은 그날을 이야기하면서 아내와 웃습니다.

"그땐 진짜 힘들었지. 근데 당신이 있어 줘서 살았어."




자식 키우는 것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이들가 번갈아 가면서 아플 땐 제 가슴이 타들어갔고,

사춘기엔 벽을 두드리며 울기도 했습니다.


속 썩이던 날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다 잘 커서 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이 내 마음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그런 게 인생이고, 부모고, 자식이더군요.


이제는 무언가를 너무 오래 붙잡지 않습니다.

누가 나를 오해해도, 너무 억울해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멀어져도, 너무 슬퍼하지 않습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것들에 감사할 뿐입니다.

아침에 눈 뜨면 아내가 주는 따뜻한 밥,

낮에는 잠깐 들르는 카페에서 마시는 연한 아메리카노 한 잔,

해질 무렵엔 옆집 강아지와 마주치며 나누는 인사 한 마디.

이런 것들이 참 소중하고, 좋습니다.




젊은 직원분들이 제게 종종 묻습니다.

"할아버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예전 같으면 가족, 건강, 사랑 같은 걸 말했겠지만

지금은 그냥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 인생에 크게 중요한 건 없는 것 같아"

"살아서 하루하루 걸어가면, 나머진 다 지나가."


사실 모든 사람이 지나온 인생은 다 다르겠지요.


누군가는 지금도 벼랑 끝일 수도 있고,

누군가는 아직도 무언가를 증명하고 싶은 시기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 있습니다.

살다보면 다 지나간다는 것.

시간은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것.

좋았던 순간도, 나빴던 기억도,

결국엔 "그땐 그랬지" 하며 추억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담백하게 하루를 삽니다.

지나간 건 붙잡지 않고,

오지 않은 건 너무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저 지금 이 하루를 잘 살다 보면,

그 어떤 순간도 언젠가는

‘별 게 아니더라’

‘다 지나가더라’

그렇게 말하게 될 테니까요.


-2025년 깊은 산골 카페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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