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경 초단편집
서울에 올라온 건 다섯 달 전, 늦은 나이였다.
지방에선 배울 수 없었던 출판 일을 배우기 위해 마음을 먹고 짐을 쌌다.
경부고속도로를 달려 맞이한 서울은 낯선 공기와 높은 빌딩들로 설렘을 주는 동시에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그땐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회색 도시의 화려함, 사람들의 말투와 옷차림, 낯선 문화.
익숙하지 않은 리듬 속에서 나는 자꾸 걸음을 놓쳤다.
운 좋게 아는 동생의 소개로 인쇄소 단기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었다.
겹겹이 쌓여있는 종이가 내 손을 거쳐 책이 되는 걸 봤을 때는 왠지 모를 뿌듯함이 들었다.
언젠가는 내 책을 내 손으로 만들고 싶다는 꿈을 꾸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럽게 복통이 찾아왔다.
식사를 거를 만큼 아파서 짧은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병원을 찾았다.
몇 번의 검사 끝에 들은 결과를 알 수 있었다.
“담낭에 돌이 가득 찼네요. 큰 병원에 가보셔야겠습니다. 수술은….”
의사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쓸개 떼는 일이 이 의사에겐 큰일이 아닐지 몰라도 내겐 큰 일이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소화불량을 달고 살았고 과식이라도 하는 날엔 헛구역질을 했었다.
그저 사소하게 넘어갔던 일들이 담낭이 주는 사인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돌이켜 보니 그랬다.
그렇게 난 나이 든 의사가 써준 추천서와 초음파 사진을 들고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그동안 경제적인 활동은 하지 않고 쉬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는데 우선 배우려던 교육기관을 준비했고, 탈락했다.
당연히 붙을 거라 생각했는데 떨어지고 나니 뭘 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 고민하지 않고 대학병원으로 향한 것이다.
대학병원의 절차는 복잡했다.
초음파 사진을 입력해야 했고 각종 검사를 했다.
거기다 줄지어선 사람들 덕분에 매번 진료는 늦어졌다.
병원 가는 길부터 유독 내 눈에 들어온 사람들이 보인다.
이른 아침부터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
서울말을 뚫고 파고드는 사투리, 유난스러워 보이는 옷차림, 이른 아침부터 진료를 받기 위해서 새벽부터 버스나 기차를 타고 온 사람들이 보이는 불안과 피로.
내 안의 감정과 겹쳤다.
나는 ‘회색 도시의 이방인’이었다.
스스로 붙인 이름이지만 이만큼 찰떡이 있을까 생각한다.
아무튼 기나긴 진료를 받고 수술 날짜까지 한 달가량 남았다.
그동안 난 휴식에 취하기로 했다.
간헐적으로 복통이 있었고 그 불안이 날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공모전이 있다는 말에 원고를 쓰며 시간을 보냈다.
어쩌면 나 자신에게 변명거리를 만들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난 무얼 하고 있을 때 불안감을 못 느끼는 사람이 된 걸까….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생산적인 일을 하는가?
모르겠다. 공모전에서 나름 괜찮은 성적을 냈다고 하지만, 작가가 됐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 같다.
그럼 소비적인 인간인가?
언젠가부터 ‘나는 시간만 허비하는 멍청이는 아닐까?’하는 생각에 지배를 받기도 했다.
내 또래에 사람들은 살지 않는 이상한 삶.
아니,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렇게 살까?’하는 생각도 한다.
내가 특별하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모자라다는 생각으로 빠진다.
가끔 친구들에게 연락이 왔다.
“요즘 뭐 하냐?”는 진부한 질문에 “서울에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올라왔어.”라는 똑같은 답으로 이야기의 물고를 튼다.
나이 먹고 돈을 벌기보다 하고 싶은 걸 하다니….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적잖이 당황했는지도 모른다.
나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그들이.
집을 사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삶?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와 내가 살아가는 세계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그렇게 수술 날이 다가왔고 난 쓸개를 떼어냈다.
어찌나 홀가분하던지….
회복하고 나서 느낄 수 있었다.
근 몇 년간 날 괴롭혔던 복통도, 불쾌하기 그지없던 포만감도 씻은 듯 사라졌다.
마치 해방된 기분이었다.
이 도시의 이방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나를 낫게 한 것은 이 도시였다.
역설 같았다.
그날 난 깨달았다.
어디에 사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지금 고향에 내려간다 하더라도 난 다시 이방인이 될 것이다.
그렇다.
난 철저히 이방인이다.
이 세상에서의 이방인이다.
물론 나와 같은 삶을, 아니 더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들 역시 나와 같은 이방인일 뿐.
우리의 공통분모는 철저한 이방인인 것뿐이다.
혹시나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부디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않기를 바란다.
눈치채는 순간, 세계와 나는 분리되고 끝없는 고립 속에서 몸부림칠지 모르니까.
하지만 그럴 테면 어떤가.
그것은 우릴 죽이지 못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