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백경 초단편집

by 백경

번화가 카페에 앉아서 창밖을 바라봤다.

아이 손을 양쪽으로 잡고 가는 가족, 팔짱을 끼고 히히덕거리며 지나가는 연인, 짓궂은 장난을 치는 학생들 무리.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소음도 분위기를 한몫한다.

재즈가 흘러나오는 주말 카페, 사람들의 대화가 공간을 감싼다.

마치 대화도 자유로운 연주를 시작하듯 각자의 삶과 일상이 테이블마다 이어진다.


이런 자유를 맛본 게 얼마만이던가!

지난 시간 동안, 주식이며 코인 열풍이 불었고 나도 거기에 함께 했다.

투자라는 이름으로 도박을 하고 나니, 그동안 벌어두었던 돈은 신기루처럼 사라졌고 만져보지도 못한 돈이 빚으로 남았다.


정신을 차리고 그 상황에서 벗어났다.

삶의 무게는 대단했다.

밤낮없이 일했고 삼 년 만에 그 빚을 다 갚았다.


지금처럼 느끼는 일상은 당시 영영 맞이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때 결혼을 약속했던 연인은 떠나갔다.


“우리, 더 이상 안 될 것 같아.”


“갑자기 왜?”


“넌 너무 제멋대로야. 나도 이제는 안정적인 사람에게 기대고 싶어.”


며칠 후 그녀는 짧게 말했다.


“만약에.. 네가 그때 그러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


“잘 지내, 행복해. 그리고 미안해.”


그날 나는 술과 담배를 끊었다.


Chet Baker의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가 흘러나오자, 난 노래에 집중하고 싶었다.

그녀와 즐겨 듣던 음악이었다.

마음속에서 간질간질한 기분이 올라왔다.

카페라테를 한잔 마시며 눈을 감으려 할 때, 꿈에 그리던 그녀가 카페에 들어왔다.


내가 긴 머리를 좋아해서 언제나 자르지 않던 그녀가 어깨 위로 오는 단발을 한 채.

순간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요동치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었다.

트럼펫 소리가 온몸을 관통한다.


이건 운명이 아닐까 하는 찰나, 아이를 안은 건장한 남자가 따라 들어온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감싼다.


“저 사람이구나….”


나도 모르게 말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멀끔한 외모에 훤칠한 키.

나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난 조심스럽게 눈을 감았다.

만약에,


.

.

.


내가 시험에 합격했다면 어땠을까?

안정적인 직장이 있다고 넌 떠나지 않았을까?


내가 코인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포근한 보금자리를 갖고 싶다던 너의 말에 무리하지 않았다면.

우린 비록 남의 집에서 살아갔겠지만, 넌 떠나지 않았을까?


내가 글을 쓴다고 우기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내 꿈을 포기하고 널 위해서만 살아간다고 했다면, 넌 떠나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런 ‘만약’은 없어.

그렇기 때문에 난 나를 위해서 최선을 다했고,

넌 너를 위해서 최선을 다한 거야.

우린 그렇게 각자를 위해서 최선을 다했어.


평행세계에 우리가 다시 연인이 되어 결혼을 했다 하더라도

이 세계에 우리는 다시 이어질 수 없는 평행선을 그리고 있어.


그러니까.

난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그러길 진심으로 바랄게.


.

.

.


조심스레 눈을 떠보니 그녀의 가족은 보이지 않았다.

난 내 옷을 둘러보았다.

안도했다. 오늘은 깔끔하게 차려입고 나와서.

남은 카페라테를 털어 넣었다.

우유 때문인지, 미련 때문인지 입안이 텁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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