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를 소개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난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처음 겪은 건 중학생 때였다. 아버지는 담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와 함께 산 기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다.
사기를 당하면서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 살았다.
몇 년 만에 만난 아버지는 피부가 어두웠고 눈이 노랬다
그때까지도 난 몰랐다.
그가 내게 남긴 마지막 말은 엄마를 잘 지켜달라는 말이었다.
그러기엔 난 너무 어렸다. 어쩔 수 있는 나이는 아니었지만, 스스로를 가장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병실에 둘러 선 가족들이 한 마디씩 했다.
유쾌하고 강해 보였던 그는 깡말라 있었다.
두 눈을 감은 채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수줍음이 많던 사춘기 소년은 구구절절 인사를 나누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당최 알 수 없었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겨우 참으며 한 마디 뱉었다.
아빠, 잘 가.
난 외할머니 손에서 길러졌다.
그녀와 내 나이 차이는 59살이나 났다.
난 언제나 불안했다.
어느 날 그녀가 날 버리고 떠날까 봐.
그래서 신께 자주 기도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게 해 달라고.
그녀는 내가 사회생활을 할 때까지 살았다.
치매를 앓으며 온전치 못한 상태로 말년을 보내긴 했지만, 그녀에게 꽤 큰 행복을 주었다.
언젠가 외할머니가 내 어머니께 이런 말을 했단다.
엄마, 백경이 키우는데 힘들죠?
아니, 걔가 내 선물이다. 키우면서 내가 즐거운 일이 더 많았다.
이 말은 그녀가 떠난 뒤, 어머니를 통해 들었다.
내 존재가 그녀에게는 선물이었다니.
고마웠다. 함께 살아줘서.
시간이 흘러, 떠나간 사랑과 남은 사랑에 대한 소설을 쓰고 싶었다.
문득 잠에서 깼을 때, 머릿속에 하나의 문장이 떠올랐다.
소설을 읽기만 하던 내가,
감히 쓴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못한 내가,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그때였다.
(아직 그 글을 쓰고 있는 중이고 2026년 중순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듯하다. 그날이 오면 가장 먼저 알리고 싶다.)
내가 생각한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했다.
한때 영화를 좋아했다.
그 시절 보았던 영화가 떠올랐다.
그리고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그 책이 오늘 소개할 노희경 작가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다.
난 책을 처음 펼 때 중요하게 보는 게 두 가지다.
하나는 목차.
다른 하나는 헌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의 헌사는 다음과 같이 쓰였다.
세상의 모든 부모님, 자식이 철들 때까지만 부디, 건강하시길
중년의 주부가 암에 걸리면서 이를 둘러싼 가족 이야기다.
치매에 걸려 며느리에게 쌍욕을 하는 시어머니.
의료사고로 월급쟁이 의사가 된 무뚝뚝한 남편.
유부남을 사랑하는 첫째 딸 연수.
삼수를 하며 대학 진학을 못한 막내아들 정수.
도박에 빠진 엄마의 남동생 근덕과 올케.
사건의 중심은 엄마의 힘겨운 삶과 죽음이다.
지나온 세월은 모두 헛된 망상 같은데, 쏜살같이 흘러간 세월 끝에 맞은 자신의 현실이 암에 걸린 아내와 치매 환자가 되어 누워 있는 어머니라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들이 마치 잘못 살아온 인생의 결과물인 양,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기만 하고 있는 자신에게 아버지는 더없이 화가 났다.
무뚝뚝한 남편은 아내의 오줌소태에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병원이 아닌 다른 병원에 가라고 했다.
그리고 뒤늦게 아내의 몸에 종양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의사인 자신이 아내의 상태도 몰랐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고 분노한다.
젊어서 남편을 잃고 세상의 모진 풍상을 혼자 맞아가며 외아들 키워내느라 몸 고생 마음고생이 많았던 어머니다.
처지가 그렇다 보니 남들 눈엔 지독하고 괴팍한 성격을 비쳤을지 모르나, 그래도 하나뿐인 아들한테만 온갖 정성을 다 바친 어머니였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는 며느리를 고생시킨다.
쌍욕을 하기도 하고 막무가내로 괴롭히기도 한다.
며느리는 그런 시어머니를 돌본다.
한시라도 곁을 지키지 않으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할머니 때문에 엄마는 외출을 해도 늘 바늘방석이다.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모진 말을 뱉어내는 시어머니를 측은하게 생각하는 사람.
무뚝뚝한 남편을 위해 칼다림질로 옷을 다리는 사람.
하루에도 수십 번 지옥을 오가며 견디던 무모한 기다림. 하지만 그 기다림에서 오는 모멸감은 그의 달콤한 속삭임에 한순간 무너져 내리곤 했다. 이 넌덜머리 나는 사랑. 연수는 이 지옥에서 구원받고 싶었다.
연수는 유부남과 사랑을 한다.
그 끝이 파멸만 남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끊을 수 없다.
이제 쓸데도 없는 자궁 들어내는데 뭐가 어때서 그래요?
구파발 선자도, 평창도 계 친구들도 들어냈다는데 뭐….
아이구, 차라리 잘됐어.
혹시나 싶어 나두 조마조마하두만. 이제 이 나이에 애 낳을 일이 있어, 달거릴 할 거야?
아이구, 난 그런 거 하나두 겁 안 나네. 사는 게 무섭지. 그런 게 겁나?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큰일에 오히려 담담한 사람.
그런 엄마가 죽어가고 있다.
엄마의 죽음 앞에 가족들의 태도는 분명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삼수생 아들 정수였다.
삼수생 아들은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다.
정수가 엄마의 병을 알게 되고 아빠에게 술 한잔 사달라 청한다.
어색하게 술만 홀짝거리던 정수가 퉁퉁 부은 눈으로 아버지에게 말한다.
아버지, 전 엄말 이렇게 보내드릴 수가 없어요. 너무 미안해서. 미안해서… 안 돼요.
이렇게는 안 돼요. 미안해서, 죄송해서 안 돼요.
나두 딱 한 번만이라도 자식 노릇 하게 해주세요.
나두 딱 한 번만이라도 엄마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요.
아버지 제발….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정수와 닮아서 그런가.
정수의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아버지와 외할머니.
두 분을 떠나보내면서 내 표정은 어땠을까.
울음이 터져 나올 때 거울로 달려간다.
그날의 표정이 어땠을지 궁금해서다.
거울 속 내 모습은 한껏 구겨져 있다.
추하다.
이별이란 구차하고 추한 감정인지 알게 되었다.
하지만 추한만큼 사랑한 건 아닐까.
그러다 문득 엄마는 고개를 젓는다. 이젠 내 몫이 아니다. 산 자의 인생이고 산 자의 몫이다.
저 자개장롱이든 무엇이든 남은 사람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새집 안방에 다시 틀고 앉든 말든, 내 죽은 육신 태울 불쏘시개가 되든 말든….
엄마는 장롱에서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노희경 작가의 이별은 준비되지 않은 작별이다.
그래서 남은 사람들은 미안해하고 아쉬워한다.
우리는 충분히 사랑하지 못했고,
충분히 말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난 뒤에야 깨닫는다.
과연 충분할 게 있을까란 생각을 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미완의 감정을 끝까지 외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이별을 견디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이별을 받아들이는 법을 알려준다.
떠나보낸 이의 선물을 곱게 받아 남아 있는 이에게 전한다.
사랑한다고.
오늘은 쑥스럽지만 사랑한다는 말을 어머니에게 전해야겠다.
2026년 새해는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 가득찬 한해 되세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혼자 있을 때 읽기를 추천한다.
원하지 않게 터져 나오는 눈물 때문에.
노희경 작가
1966년 경상남도 함양 출생
대한민국의 드라마 작가다.
거짓말, 우리들의 블루스, 그 겨울, 바람이 분다, 디어 마이 프렌즈 등의 드라마를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