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는 추억을 기억한다

백경 에세이

by 백경

백경 에세이 2, <했던 말 또 하기>에서 예고한 것처럼, 백경 에세이 초반부는 하나의 공통주제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정답은!

신체기관과 관련된 이야기다.

1편은 손을,

2편은 입을,

3편은 코를 주제로 한다.

(다음 편이 어느 부위인지 궁금하시면 구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난 계절의 변화를 민감하게 느낀다.

겨울의 차가운 바람 사이에 스치는 서늘함을.

봄의 따사로운 햇볕에서 나는 향긋함을.

여름의 뜨거운 열기에 풍기는 싱그러움을.

가을의 시원한 바람이 가져다주는 아련함을.


아이러니하게도 난 비염 때문에 늘 한쪽 코가 막혀있다.

심한 날에는 두통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냄새에 예민한 편이다.


얼마 전 어머니께서 곰국을 끓여 보내주셨다.

비닐 팩에 정성스럽게 쌓인 곰국을 냄비에 담아 다니 끓여냈다.

얼어붙은 곰국이 녹으며 수증기를 만들어냈고 그 사이에 곰국 냄새가 올라왔다.

그 순간 알아차렸다.

엄마 곰국이라는 것을.


어머니 곰국을 맛보기 전 다른 곰국을 먹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맛있는 곰국이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이 곰탕은 끓이며 엄마 곰국이라고 알아차렸다.


맛있게 한 그릇을 비우고 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드린 다음 앉아서 글을 쓰려다 생각이 스쳤다.


엄마 곰국을 못 먹는 날이 오면 어쩌나….

섣부른 걱정이긴 하나 그런 날이 오면 무척이나 그리워질 것 같았다.


어떤 냄새는 존재를 떠올리게 하는 것 이상으로 그날로 돌아가게 만든다.

조금 다르지만 이런 느낌이었다.

내게는 베이비파우더 향이 그렇다.

피부가 예민한 난 참 손이 많이 가는 아이였다.

(사실 피부만 예민한 게 아니라 많은 부분이 예민하다.)

피부가 틀 때면 어머니는 양철통에 담긴 베이비파우더를 꺼내 찍어 발라 주셨다.

그 향을 맡으면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하다.


여름향이 날 때면, 첫사랑 기억이 떠오른다.

중학생 때 연상의 첫사랑이 있었는데, 그녀와 만난 건 한여름이었다.

오래 만난 사이는 아니지만, 여름향이 코끝을 스칠 때면 그때가 떠오른다.


병원 냄새를 지독하게 싫어한다.

병원에 오래 입원한 적도 없지만 말이다.

병원 냄새를 맡으면 담도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 생각이 떠오른다.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는 차후에 좀 풀어가기로 하고.)


언제나 건강한 것 같던 아버지는 말랐고 노랬다.

입에서는 씁쓸한 냄새가 풍겨 나왔고 몸에서도 낯선 냄새가 풍겨 나왔다.

내 기억 속에 그 냄새는 죽음의 냄새로 각인되었다.


대학교 일 학년 때, 병원 중환자실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오래전 잊고 지냈던 그 냄새가 났다.

중환자실에는 안타까운 사연이 많았다.

지금은 시간이 흘러 그들의 얼굴이며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그 냄새가 풍기는 기억은 선명히 남아 있다.

지금은 병원에 가면 죽음에 대한 공포가 덜하긴 하지만 여전히 내게는 병원 냄새가 불안을 가져온다.


문득 잊힌 기억이 냄새를 통해서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하고,

그리웠던 냄새가 반가운 기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공포처럼 각인된 냄새가 두려움을 주기도 한다.


우리는 수많은 냄새를 맡으며 과거를 떠올리고, 오늘을 기억한다.

우리는 오늘도 은연중에 많은 냄새를 맡고 산다.

오늘이 냄새 덕분에 특별한 날로 기억될 수 있다.

분명 그 기억은 머리로 남기는 것보다 더 깊은 곳에 자리 잡는다.


당신은 어떤 냄새를 기억합니까.

당신은 어떤 향기를 풍깁니까.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