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를 소개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그를 처음 접한 건 「상실의 시대」였다.
원제는 「노르웨이의 숲」
아이러니하게도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에 이끌려 그 책을 사게 되었다.
1988년 노르웨이의 숲으로 출간했으나 판매량이 부진했고 이후 문화사상사에서 상실의 시대라 제목을 바꿔 재출간하며 대히트를 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내 독서에 영향을 준 작가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천천히 소개하려 했지만….
이쯤에서 하는 건 어떨까 싶어서 모셔왔다.
하루키 소설에는 오컬트적 요소와 초현실주의적인 존재가 종종 등장한다.
이 때문에 하루키를 즐기지 못하는 독자들도 있다.
반대로 하루키를 열광적으로 사랑하고 탐닉하는 팬들도 존재한다.
그들을 하루키스트라 부르기도 한다.
재즈바를 운영할 정도로 재즈를 사랑하며 박식한 그에게 영향을 받아 나도 재즈를 즐긴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차차 풀어나가도록 하고.
소설가, 수필가, 번역가라는 직업 중,
소설가로서의 첫걸음을 하게 해 준 작품.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리뷰를 해보려 한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집필 초기 제목이 Happy birthday and white christmas였다고 한다.
이는 영문판으로 발매되었을 때 부제로 표기되었다.
이 작품은 1970년 여름, 29세 대학생 화자가 도쿄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18일간을 그린다.
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화자는 대학생 때 우연히 알게 된 어떤 작가의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는 글에 대한 많은 것을 데릭 하트필드에게 배웠다고 한다.
여기서 많은 독자들이 호되게 당하게 된다.
(데릭 하트필드는 하루키가 만든 허구의 인물이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들어 독자에게 재미를 주는 일은 언제나 환영이다. 난 이런 부분을 좋아한다.)
책이 나오고 나서 데릭 하트필드의 책 문의가 도서관과 서점에 적지 않게 있었다고 한다.
이는 단순한 혼란을 주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하루키는 화자와 하트필드를 겹쳐 맞추어 글의 깊이를 더한다.
글을 쓰는 것의 어려움을 말하는 동시에 삶의 어려움으로 확장시킨다.
그것을 권위 있는 데릭 하트필드라는 인물을 통해서.
고향 바 제이스에서 절친 쥐를 만나 맥주를 기울이며 시간을 보낸다.
내가 충격에서 깨어나 부서진 문짝을 발로 걷어차고 밖으로 나오자, 피아트의 보닛 커버는 십 미터가량 앞쪽의 원숭이 우리 앞까지 날아가 있었고, 자동차 앞대가리는 돌기둥 모양대로 움푹 패어 있었다.
…
쥐는 두 손을 핸들에 올려놓은 채 몸을 꺾듯이 웅크리고 있었는데, 다친 건 아니고 대시보드 위에다 한 시간 전에 먹은 피자를 토하고 있었다.
둘 다 몹시 취해 있었고 어떤 사정으로 쥐의 차를 얻어 탄 뒤 사고가 난 장면이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이처럼 강렬했다.
작품 초반부 쥐를 소개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쥐라고 서술하기에,
하루키식 판타지라 생각해 화자가 생물 쥐와 소통하는 줄 알고 읽어 내려갔다.
쥐는 이후 「1973년의 핀볼」과 「양을 쫓는 모험」에도 등장하며, 이 세 작품을 엮어 ‘쥐 3부작’으로 칭한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
화자는 우연히 새끼손가락이 없는 여자와 가까워진다.
그녀는 쉽게 친해지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녀의 손가락은 어쩌다 없어진 것일까.
화자와 손가락이 네 개뿐인 여자는 조심스럽게 관계를 맺어 나간다.
십이 년, 십삼 년 전쯤,……아버지가 병에 걸린 해야. 그 전의 일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계속 좋지 않은 일만 일어났어. 머리 위에선 언제나 나쁜 바람이 불고 있어.
바람의 방향도 때가 되면 바뀔 거야.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언젠가는.
이야기는 차분하게 흘러간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묘하게 닮아 있다.
둘의 관계는 구원도 책임도 지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운 관계다.
고백도 책임도 없는 관계.
그래서 이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화자는 도쿄로 되돌아가며 이야기는 끝난다.
이후 화자는 스물아홉 살이 되고,
쥐는 서른 살이 된다.
화자는 결혼해서 도쿄에 살고 그녀를 더 이상 만나지 못한다.
변함없이 그의 소설에는 섹스 장면이 없고, 등장인물은 단 한 사람도 죽지 않는다.
원고지의 첫 장에는 언제나,
해피 버스데이, 그리고 화이트 크리스마스.라고 쓰여 있다.
내 생일이 12월 24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목을 해피 버스데이, 그리고 화이트 크리스마스로 쓰고 싶었구나.
무릎을 쳤다.
이야기의 큰 줄기는 이랬다.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루키의 소설은 일반적인 전개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그렇기에 정리하기가 까다롭다.
하루키는 이 작품으로 ‘군조 신인상’을 받는다.
첫 작품에 신인상이라니.
가히 세계적인 작가의 위대한 행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흔히들 생각하는 찬사만 있었던 건 아니다.
하루키 본인이 밝히길 ‘이런 걸 소설로 인정할 수 없다는 분위기도 농후했다.’고 했다.
그건 소설 작법 방식이 앞서 말한 바와 같아서 그렇다.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또 다른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는 얽혀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읽어보라고 말한 것이다.
모든 건 스쳐 지나간다. 누구도 그걸 붙잡을 수는 없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하루키의 첫 소설인 만큼 공백이 돋보인다.
그 공백은 작가의 말에서 채워진다.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계기는 실로 간단하다. 갑자기 무언가가 쓰고 싶어졌다. 그뿐이다.
순수한 창작 욕구와 열정이 그대로 담겨 있다.
우리는 어떤 꿈을 꾸며 살아가는가.
모두 스쳐가지만, 그 시절에는 그것을 붙잡고 있는가.
지금 당신은 어떤가.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
1949년 1월 12일 출생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태엽 감는 새」, 「해변의 카프카」, 「1 Q84」, 「기사단장 죽이기」,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등 다수의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이 있다.
뿐만 아니라 수필집도 상당히 존재한다.
모두 기술하지 않겠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오랜 세월 루틴을 지키며 사는 것으로 유명하다.
새벽 4시 기상 후, 원고지 20매 글쓰기
오후 달리기 또는 수영
저녁에는 독서와 음악감상 혹은 번역
9시 취침.
이 덕분에 상당량의 저서가 있다.
능력부족으로 여기까지만 하겠다.
더 많은 이야기는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