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경 에세이
난 또 다른 도시로 밀려왔다.
울산이었다.
그때 즈음 난 유목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일을 배워야 했다.
돈을 많이 벌고 시간이 충분히 보장된다기에 선택했지만.
원래 난 모든 자극으로부터 예민한 사람이다.
어릴 적 야영을 하게 되면 잘 때면,
다음 날 눈을 뜨면 집이길 간절히 바라요.
라고 매번 기도하였다.
빛과 촉각, 청각과 후각에 예민하다.
사람들의 행동이나 말에 예민하다.
그것들을 관찰하고 비언어적인 것까지 캐치를 잘 하지만, 피로감을 쉽게 느낀다.
예민한 것에 비해 표현이 서툴다.
상담을 공부한 적 있는데, 실습을 준비하는 날 본 동료가 로봇 같다고 말했다.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표현을 잘 못한다.
회복탄력성이 좋지 않다.
이별을 극도로 힘들어한다.
누군가에게 마음의 자리를 쉽게 내주지 않는다.
다만 내준 자리에 사람이 떠나면 오래도록 힘들어한다.
아무튼 이러한 것들은 나이가 들어도 농도만 옅어질 뿐 여전히 남아있다.
난 내향인 유목민이다.
스스로 정의를 내렸다.
역마살이 낀 건지 한 자리에 정착해야 안정감을 얻는 삶이지만, 그랬다.
인정했다.
부정한다고 내 삶이 갑자기 바뀌진 않으니까.
새로 이사한 곳에 책상과 의자를 주문하고 노트북을 설치했다.
때는 겨울이 끝나갈 시기였고, 한 번 공모전을 체험했던 터라 5월이 되면 공모전이 열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느긋하게 공모전을 준비했다.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시간이 부족했다.
늦은 밤까지 일하는 날이 점점 많아졌고, 주말에 출근하는 날도 많아졌다.
일이 힘든 만큼 돈을 더 벌긴 했지만, 고민에 빠졌다.
난 글쓰기와는 맞지 않는 사람인가 보다.
조금씩 써 놓았던 이야기를 꺼내 읽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더 이상 이어서 쓰지 못한다는 걸 깨닫고 과감히 포기했다.
말이 과감히 지 그 시절 난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소설을 연재했어도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봐도 노잼이다.)
무사히 울산 파견을 마쳤다.
그 무렵 난 사촌동생인 디자이너 I 씨와 자주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창작자의 외로움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고, 웹진을 만들 멤버를 구할 거라고 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난 그 웹진 멤버로 초대되었다.
기뻤다.
아직 아무 결과도 내지 못했지만, 창작자들 모임에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렜다.
그는 내게 서울행을 제안했다.
조바심이 났다.
웹소설 작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여러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중 도와주신다는 분을 만났다.
글을 보내고 감평을 받았다.
그의 선의로 도움을 받았지만 내가 줄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렇게 생애 처음으로 타인에게 글을 보여주고 도움을 받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미안해서였다.
그 무렵 난 작법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가득 찼다.
좋은 작법서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작법서가 있다면 좋은 글쓰기가 될까 싶었다.
사람들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오픈톡방에 검색을 하고 들어갔다.
그곳에는 웹소설을 쓰는 작가와 지망생들이 많았다.
격려도 하고 감평도 해주고, 좋았다.
그곳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언젠가는 도움 받은 걸 돌려주고 싶다. 그들이 아니라 하더라도.)
시간이 빠르게 흘러 해가 지났다.
벌써 입사한 지 이 년이 흘렀다.
공모전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웹소설은 계속 썼다.
내 글의 문제점을 발견했다.
웹소설과는 맞지 않다.
독자들은 식당에 자극적인 음식을 먹으러 갔다가 심심한 보양식을 얻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소재는 신선하고 좋은 것들로 많았다.
하지만 그걸 도파민 터지게 풀어내질 못했다.
웹소설을 본격적으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한창 주식과 코인 열풍이 지난 터였고, 웹소설 시장에 주식 이야기가 주류로 치고 올라왔다.
한동안 주식을 열성적으로 공부했기에 쓸 이야기가 많았다.
이번에는 재미있게 한 번 써보자 싶어서 도전했다.
자신감이 넘쳤다.
결과는요?
그토록 꿈에 그리던 베스트 순위 안에 들어갔다.
하지만 어느 순간 더 이상 힘을 받지 못하고 못 올라갔다.
한계를 깨닫고 연재를 중단했다.
왠지 다음 작품은 유료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갈림길에 섰다.
본격적으로 작가가 되기 위해서 준비할 것인가.
글쓰기를 취미의 영역으로 남겨 둘 것인가.
고민 끝에 난 서울행을 택했다.
무모한 도전이기도 했지만,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다.
내향형 유목민은 다시 짐을 쌌다.
이번에는 서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