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경 에세이
정기 연재일이 아닌데도 문득 올리고 싶은 글이 생겨 올린다.
내 인생에 외로움은 없을 줄 알았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 했다.
그래서 고독을 잘 즐기는 사람이라 착각했다.
갑자기 무너졌다.
무너지면서 알았다.
난 사실 외로움을 아는 사람이구나.
애써 외면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초봄이 되니 괜히 청승 떠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이 그런 걸.
굳이 만난 외로움을 놓치지 않는다.
얼마 전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단순히 기분 문제로 뭉뚱그려 말해선 안 된다.
이대로 가면 난 무너질 것 같았다.
난 정말로 운이 좋은 사람이다.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귀인을 만난다.
귀인은 내게 활동하기를 권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람을 만나길 즐기지는 않지만,
사람 관찰하기를 즐긴다.
거리로 나갔다.
나를 스쳐가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지나치는 이들을 바라본다.
얼굴과 차림새를 지나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하나 같이 피곤해 보인다.
무표정해서 그렇겠지 싶었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많지만,
나와 관계를 맺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오히려 저들이 지인이었다면 난 어땠을까 생각했다.
그들에게 위로를 건네려고 했겠지.
지금 내겐 그럴 힘조차 없으면서.
여전히 멍청한 생각들 뿐이다.
저들이 내 지인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관계 맺는 사람이 없어서 외로운 것이 아니다.
외로움은 불쑥 나타난 게 아니라 처음부터 내 안에 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릴 적 온 가족이 흩어져서 살았다.
(그 사정은 훗날 좀 더 솔직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이야기하고 싶다.)
다른 건 기억이 나지 않는데,
엄마와의 이별 장면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유년기를 그렇게 보냈다.
외롭지는 않았다.
내 옆에는 외할머니가 있었고, 그녀의 사랑을 충분히 받았으니까.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던 건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 아이들 무리와 함께 지내다 보면, 내가 다르다는 걸 알았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함께 살았고, 난 그러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일 뿐인데, 어린 날에는 그런 부분을 결함으로 생각했다.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니, 내 감정을 통제했다.
좋은 일이 있어도, 나쁜 일이 있어도 크게 티 내지 않았다.
수업 중 선생님이 질문을 하면 일어서서 답해야 했다.
멍 때리고 있다가 갑자기 그런 일이 벌어지면 귀가 빨개졌다.
그러면 주위에서 수군거리며 정답을 말해주었다.
난 그 소리들을 애써 외면했다.
아이들은 그런 내 모습을 답답하게 여겼다.
왜 답을 알려줘도 말하지 않냐는 거였다.
선생님이 성질을 부리고서야 조심스럽게 정답을 말했다.
그러면 앉으라는 신호를 주었다.
그때에 난 왜 그랬을까.
아이들이 알려준 건, 내가 알지 못하는데 훔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쓸데없이 정직하고, 미련하다.
동전의 양면 같은 모습을 가진 사람이다.
정직하면서도 솔직하지 못한 사람.
난 스스로를 고지식하고 똑똑하다 판단했다.
지금 보면 그리 똑똑한 것 같지는 않고, 고지식한 건 맞는 것 같다.
여전히 정직하지만, 능청스럽게도 행동할 때가 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경계가 흐릿해지긴 했지만, 곤조가 크게 바뀌진 않았다.
그래서 외로운 건 어떻게 됐냐고?
그냥 그 상태 그대로다.
다만 정직하게 외로움을 마주하고 있다.
난 고독을 즐길 줄 아는 사람에서,
외로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으로 진화했다.
절대 퇴화한 게 아니다.
내 감정을 솔직하게 바라보려 한다.
평소에 잘하던 판단은 한발 물러선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만 한다.
내 마음에 색깔이 다채로워질까 기대된다.
내가 얼마나 다양한 색으로 칠해진 사람인지,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돈 많고, 안정적인 어른이 되진 못했다.
(곧 될 생각이다.)
자신에게는 솔직한 어른이 되고 있다.
좋은 사람이고 싶다.
그 정도의 어른으로 성장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