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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아빠도 여행이 가고 싶다

덧붙이는 글

by 장영진

2015년 8월,

뜨거운 여름 어느 날, 세현이를 만났다.

그 이후 해를 보낼수록 여름 날씨가 더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지만, 아마도 그해 여름 또한 무척이나 더웠을 것이다. 그해 여름 시작은 만삭의 아내 덕분에, 여름 막바지엔 세상 빛을 본 아들놈 덕분에 에어컨이 충분히 가동되는 실내에서 지낼 수 있었기에 더위는 내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여름방학 막바지 산후조리원에서의 2주간의 시간은, 그 이후 수년간 누리기 힘든 최고의 휴양이었다. 곧 시작될 길고 긴 육아 레이스 앞에서.

2017년 5월,

따스한 봄 어느 날, 세온이를 만났다.

날씨와 기온은 완벽했다. 하지만 미세먼지가 극심했다. 둘째 아들놈이 처음 본 서울 하늘은 아마도 뿌연 회색빛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동생 때문에 집을 비운 엄마의 부재를 느끼며, 세상 이치를 다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첫째 녀석의 마음도, 그리고 첫째의 슬픈 얼굴을 보고 있는 내 마음도 그 하늘빛과 비슷했을 것이다. 둘째 아들을 만난 기쁨, 첫째 아들이 지닌 슬픔과 함께 지내야 한다는 어려움이 공존했던 따스한 봄의 어느 날이었다. 아마 그때 감정을 평생 잊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사실 난 아이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고등학교 선생이면서도, 혹시 내가 초등학교 교사나 유치원 교사였다면 큰일 날 뻔했다고 생각하곤 한다. 아이들(어리면 어릴수록 더)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늘 어색하고 힘들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나면 며칠 사용할 에너지를 다 써버린 것처럼 피곤하다.

이런 내가 부모로서 아이와 함께 지낸다는 것은 대체 어떤 의미일까. 나에게 이 질문은, 부모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묻는 것과 같다. 그동안 아이를 키우면서 깨달은 사실은 부모가 된다는 것이 ‘어른’이 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내 내면의 "아이" 같은 모습들을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한없이 연약하고, 부족하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그런 나약한 나란 존재. 또 어떻게 아이들이 나의 안 좋은 모습만 골라 닮아 가는지. 이 녀석들의 모습 속에서 어린 시절의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매 순간, 나는 자연인으로서 원초적 형태의 감정을 마주한다. 왜 그러할까 생각해보면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생각하고 계획한 대로 그 어떤 일도 진행되지 않기 때문인 거 같다. 부모가 되면서 ‘자기 삶’이 사라진 것 같다고 느끼는 것 또한, 삶이 내 의지대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혼자 지낼 때, 결혼 후 부부가 되었을 때, 부모가 되었을 때, 그리고 아이 둘의 부모가 되었을 때. 시간이 지나면서 내 계획대로, 내 의지대로 삶을 이끌어갈 수 있는 여지는 점점 사라져 간다. 부모 앞에 놓인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에 개인으로서의 삶을 위축되기 마련이다. 결국, 그런 과정을 거치며 내 감정의 밑천을 드러내고, 내가 그리 여유로운 사람은 아니었다고 깨닫게 된다.

그래서 더 여행을 가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딘가로 떠나면, 일상의 삶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니까. 떠나기 전 여행이 힘들 것이라 이미 알고 있어도, 여행을 계획하고 상상하면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 같은 기분을 누릴 수 있다. 물론 공항으로 가는 길부터 또다시 여러 불편한 감정을 만나게 된다. 그동안 내가 숨겨왔던 은밀한 나약함마저도,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다 보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사실 태어난 지 36개월도 채 안 된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이유를 갖다 붙이더라도 부모의 욕심이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러한 사실이 너무나도 명백한 이유는, 우리가 여행을 떠난다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쉽게 이야기하지 못한다는 현실에서 증명된다. 언젠가 인터넷 댓글에서 돌도 안 된 아이를 데리고 비행기에 탑승하는 것이 상식 밖의 행동이라는 이야기를 읽은 적 있다. 이어진 댓글에서 여러 사람의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고 공방이 이어졌다. 어쩔 수 없이 타는 사람들도 있으니 아이 동반 비행을 싸잡아 비난할 수는 없다는 의견, 비행기 안에서 아이를 돌볼 어떤 의지도 보이지 않는 부모의 무책임함에 대한 비난. 양쪽 이야기 모두 공감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누가 어떤 경험을 했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논란에 대한 다른 입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은, 아마도 부모가 되기 전과 후가 다를 것 같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부모의 마음을 좀 더 세심하게 돌아보고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그런 의미에서 부모에게도 자신의 욕구와 삶이 중요하며, 그것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내가 다른 부모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다 할지라도, 나 또한 육아 중이기에 남들이 당연히 배려해줘야 한다는 생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국, 한 개인으로서 부모가 지닌 욕구와 삶에 대한 의지의 실천은,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에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부모가 자신만 생각한다는 눈초리, 여행에 중독되었다는 말들. 상식 없는 부모라는 비난. 여행에 대한 욕심, 그리고 외부의 시선을 회피하고 합리화하고자 하는 내 안의 천박하고 이기적인 감정들. 이러한 복합적인 고민 속에 여행을 꿈꾸고 계획하고 실천한다.

이번 유럽 여행은 꽤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계획한 여행이었다. 2016년 여름, 첫째 아들의 돌 무렵 유럽 여행을 준비했었다. 실제 항공권까지 구매했는데, 처음 경험하는 육아에 우리는 너무 지쳐버렸다. 나아지겠지, 나아지겠지, 기대하며 여행 날짜를 기다리다 결국 여행 직전 포기하고 말았다. 도저히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리고 다시 용기를 내서 6개월 후 일정으로 항공권을 예약했지만, 둘째 아들 녀석을 만나게 되는 바람에 포기했다. 결국은 둘째가 돌을 갓 넘긴 2018년 여름, 그제야 계획을 실천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오기에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가까운 지역으로 여행은 갔었지만, 멀리 가는 것은 겁이 났다. 마치 20대 중반 이후 점점 어른이 되면서 나의 내면의 나약함을 발견하는 것이 괴로웠고, 그것들을 받아들이는데 용기가 필요했던 것과 비슷하다.

인생을 살다 보면 용기를 내야만 하는 상황들에 마주하게 된다. 각급 학교를 진학하고 학년이 올라갈 때,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을 때, (남성의 경우) 군인이 되어 훈련소에 입소할 때, 처음 자대 배치를 받고 선임병들을 만날 때, 사회에 진출할 때, 결혼을 앞두었을 때, 아이를 갖기로 할 때, 출산을 앞두고 등등. 돌이켜보면 어지간한 용기로는 감히 해낼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아들들이 엄마의 뱃속에서 나오는 과정을 직접 지켜보면서, 아이들에게도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깨달은 사실은 이런 상황을 마주했을 때, 나 혼자만의 용기로는 그 모든 일을 이겨낼 수 없다는 것이다. 나 혼자 용기 낸다고 될 일도 아니었다. 엄마의 뱃속에서 나오는 일, 유아 시절에 자라는 과정, 학교에 진학하고, 졸업하고 사회로 진출하기까지 누군가의 도움이 없었다면 분명 불가능했다. 부모의 도움, 가족의 도움, 친구의 도움, 스승의 도움, 어느 누군가의 도움.

이번 여행도 그러했다. 내가 혼자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내의 용기도 필요했고, 아이들의 용기도 필요했다. 3주간의 유럽 여행 중 잔병치레 한번 하지 않은 아이들의 용기가 대견했다. 여행을 다니며 만난 그곳 현지인들은 어떠한가. 멀리서 온 낯선 이방인에게 많은 도움과 호의를 베풀어 주었다. 여행을 통해 남겨진 사진과 이야기들이, 앞으로 우리 가족이 서로 용기 낼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도록 하는 버팀목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 글이 여행을 위한 글인지, 육아를 위한 글인지 잘 모르겠다. 나는 여행 전문가도 아니다. 그렇다고 육아 전문가도 아니며, 더군다나 아이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내가 육아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은 양심상 받아들이기 힘들다. 내가 육아에 관한 글을 쓴다고 하면 당장 내 아내부터 반대할 것이다. 나아가 큰 서점에 가면 얼마나 많은 여행 전문 서적이 있고, 얼마나 많은 육아 관련 서적이 있는가.

다만 시중의 많은 육아 책들이 ‘좋은 부모 되기’ 또는 ‘우리 아이 잘 키우기’를 위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이 조금 불편하긴 했다. 왜냐하면, 내게 있어 육아 현실은 언제나 내가 얼마나 “좋은 부모”가 되지 못하는지 깨닫고, 절망하는 경험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육아의 과정이 항상 좋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또, 어떻게 부모라고 항상 좋은 모습만 보일 수 있겠는가. 그리고 과연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육아의 결과적 성공(한글을 배우거나, 수를 배우거나, 걸음마를 빨리하거나 등등)만이 아이 잘 키운다는 근거가 되는 것일까?

이런 고민 속에 내가 글을 쓰며 하고 싶었던 것은 여행을 좋아하는 개인으로서 나, 그리고 우리 가족의 “오늘의” 이야기를 남기는 것이었다. 나는 부모로서, 교사로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무언가 더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지금 그대로도 괜찮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 글도 단순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행이라는 매체를 통해, 현재의 시간을 부모로 살아가는 나 자신과 아내, 비슷한 상황 속의 누군가와 삶을 나누고 서로를 위로하고 싶었다. 단 한 가지 욕심을 부려본다면, 여행을 좋아하면서도 육아 문제로 주저하고 있는 부모들에게 용기를 가지라고 위로를 건네 보고 싶다.

물론 아이들과의 여행에는 육체적, 경제적 부담이 뒤따른다. 하지만 우리 가족이 이렇게 다닐 수 있는 것은 육아가 할 만해서도 아니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도 아니다. 그리고 돈 많이 드는 여행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아내와 결혼하고 여행을 다니며 감사한 일 중 한 가지가 아끼며 여행하는 과정에 동의해 준다는 사실이다. 저렴하고 괜찮은 항공권이나 호텔, 가성비 좋은 식당을 찾는 재미 또한 여행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라 생각하기에, 우리의 여행 스타일은 늘 검소하다. 조금 저렴한 숙소면 어떻고, 하루 한 끼만 사 먹으면 좀 어떤가. 또 최신식의 교통 시설을 이용하지 못한다면 어떤가.

유모차를 끌고, 고풍스러운 거리를 걸어보는 경험. 유럽의 마켓에서 반찬거리를 사고, 요리를 해 먹을 수 있는 경험. 소소하게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 몇 컷. 이 모든 것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여행을 꿈꾸며 용기 내려는 부모들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다. 실제 여행의 과정은 힘들 수 있다. 생각한 것 이상으로 힘들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때로는 부부간에 갈등도 생기고, 아이에게 소리치고, 혼내고, 서로 짜증 내기 바쁘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을 겪고 나서, 남겨진 사진과 영상들을 보고 있으면 부부간에 그리고 아이들과 더 가까워졌다는 느낌을 한껏 받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때로는 아이들을 위한 여행이라 생각하지 않아도 좋다. 평소에 이미 아이들을 위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부모 자신을 위해 여행을 떠나라 권하고 싶다. 아이가 기억하건 못하건, 분명 가족 모두, 그리고 서로 간의 관계도 더 자라서 돌아올 것이다. 부디 용기를 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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