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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파리 인천

180809 Venice Paris Incheon

by 장영진

약 3주 여행의 진짜 마지막 날.

분주한 아침이다. 여행이 끝난다니 마음이 무겁다. 하지만 한가롭게 무거운 마음을 되뇔 여유는 없다. 새벽부터 산마르코 광장에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침 7시 다 같이 잠에서 깼다. 어차피 잠은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자면 되니 문제 될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6시에 못 일어난 것이 아쉽다. 간단히 옷을 입고 길을 나섰다. 마침 수상 버스 티켓 시간이 남아 있다.

밖으로 나오니 베니스의 아침 햇살이 참 좋다. 어제보단 부쩍 한가한 버스를 타고 광장으로 이동하니 마지막이라는 아쉬움도 조금은 달래진다. 하지만 마음속 여유는 없다. 더 일찍 일어나서 나오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늦어진 탓이다. 여러 장 사진을 남기고 싶어도 왠지 쉽지 않을 거 같은 느낌이다. 너무 일찍 일어났는지 아이들 상태도 그리 좋아 보이진 않는다.

빠른 걸음으로 산마르코 광장에 도착했다. 예상보다 늦었지만, 다행히 우리를 반기는 건 거의 비둘기뿐이었다. 넓디넓은 광장 그대로의 모습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다만, 너무 아침 이른 시간이었는지, 가족 모두 얼굴이 부어있었다는 걸 한참 후에야 알았다. 더 멋진 가족사진을 기대했던 나와 아내는 조금 아쉬웠지만, 이제 우리에게 남은 기회는 없다.


이른 새벽, 한적한 산마르코 광장에서 가족사진 (2018.8. 이탈리아 베니스)


사진 촬영을 마치고 바로 호텔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제 정말 끝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영 불편하다. 여행의 힘든 순간마다 그렇게 한국이 그립다가도, 여행 마지막 날만 되면 왜 이리 아쉬운 걸까. 여행할 때마다 감정의 기복이 반복된다.

때마침 돌아오는 수상 버스 뒷자리에서 감상하는 도시 풍경이 우리의 서운함을 더욱 부추기는 듯했다. 베니스의 아름다운 모습이 점점 멀어져 간다. 동시에 우리 여행이 정말로 끝난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왠지 모르게 아이들 표정도 여행이 끝난다는 사실을 눈치챈 듯 보인다. 아이들은 지금, 과연 어떤 감정일까.


마지막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복귀하는 길 (2018.8. 이탈리아 베니스) / 여행의 끝, 이 녀석들은 어떤 마음일까? (2018.8. 이탈리아 베니스)


숙소에 들어오니 벌써 8시다. 간단하게 빵을 주워 먹고, 많은 짐을 들고 다시 로마광장으로 향했다. 9시 20분 버스를 타야 하기에 시간이 촉박했다. 몇 차례 유럽에서 비행기를 놓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엔 미리 준비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블로그를 통해 검색한 폴란드항공 수속 카운터로 향했다. 일찍 도착해서인지 얼마 기다리지 않고, 금방 체크인을 완료할 수 있었다. 폴란드항공 자리 배정 문제(가족인데도 옆자리로 배정이 안 되는 일도 있다고 함)가 있다는 글을 블로그에서 확인한 지라 걱정도 됐지만, 우려와 달리 좌석도 연석으로 배정받을 수 있었다. 공항 직원의 배려로 탑승구역 입장도 아주 원만하게 완료했다. 귀국을 위한 아주 완벽한 전개다. 여기까지만 해도.


그러나 면세구역을 거쳐 게이트에 들어가면서 무언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우리 비행은 12:05 베니스 출발 – 바르샤바 경유 – 인천 도착 계획이었다. 하지만 12시 5분 출발 예정이던 베니스 – 바르샤바 구간 폴란드항공이 14:00로 연착되었다는 안내가 나오고 있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바르샤바에서 인천으로 향하는 항공편이 16:30 출발이었기에, 이대로 가면 바르샤바에서 경유 시간이 40분 정도밖에 안 남기 때문이다. 나와 아내는 걱정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일까. 다행히 아이들은 자기 시작한다.

항공사 사정으로 연착된 것이니, 어떻게 해서든 비행기 환승을 가능하게 해 줄 것이라고 막연하게 믿으면서도, 불안하다. 수시로 폴란드항공 홈페이지에서 들어가 항공 상황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의 믿음도 그리 오래 가진 못했다. 홈페이지에 해당 항공편이 취소되었다고 표시되는 것이다. 아직 게이트 전광판엔 나오지 않았지만, 항공사 홈페이지엔 분명 취소라고 나왔다. 믿을 수가 없었다. 혹시 홈페이지 오류는 아닐까? 라고 생각하며 상황을 주시했다.

하지만 결국 우려했던 대로 일이 전개된다. 공항 안내 게시판에도 취소 공지가 나왔고, 게이트 앞에 대기 중이던 많은 승객은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당장 이 상황을 극복해 내기에 턱없이 부족한 나의 영어 실력 때문에 걱정만 깊어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른 한국인 가족이 있었기에 위안이 됐다. 문제는 그 한국 가족은 바르샤바가 목적지였다. 그러니 이 비행기가 취소되어도 그냥 다른 또는 다음 항공편을 이용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서든 한국까지 가야만 한다. 상황이 이런데 항공사 측에서 어떤 설명도 해주지 않아 참으로 답답할 노릇이었다.

누군가를 필두로 사람들이 이동하기 시작한다. 무리를 쫓아가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입장했던 곳으로 가서 경찰에게 이야기해도 별다른 대안을 내놓지 못했고, 심지어 면세구역 내 헬프 데스크엔 아무도 없었다. 이쯤 되면 상황을 주도할 수 있는 리더가 한 명쯤 나와야 하는데, 그도 아니었다. 나도 영어 실력 때문에 나설 수가 없었다.

결국, 돌아다니며 사람들 모여 있는 곳에서 대기하던 중, 헬프데스크에 드디어 직원이 왔고 이탈리아어와 영어로 상황과 해결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용 전체를 이해하진 못했지만, 요약하자면 체크인 한 짐을 다시 찾은 후, 항공사 측에서 새로운 솔루션을 제공할 것이라는 이야기인 듯 보였다. 우리는 직원을 따라가 짐을 찾고, 새로운 항공 일정을 받기 위해 줄을 섰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가. 우리가 늦어서 비행기를 놓친 것도 아니고, 한두 시간 연착도 아닌, 전면 취소라니. 비행이 취소된 이유도 도통 알 길이 없다. 아이들 없었더라도 이 얼마나 혼란스럽고 긴장되는 상황인가. 한 보따리 짐과 유모차, 어린 두 아들까지. 한국까지 가는 길이 너무 막막해 보였다. 막연하게 베니스에서 하루 더 자고 가도 되려나. 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줄을 서서 기다리던 중 혹시 한국으로 향하는 다른 비행편이 있는지 검색했다. 확인하니 가장 빠르게 인천에 도착할 수 있는 일정은 베니스 – 파리 – 인천 일정이었고, 에어프랑스기로 파리를 경유한 후, 파리에서 밤 9시에 인천으로 향하는 대한항공에 탑승하는 일정이다. 하지만 폴란드항공은 스타얼라이언스, 에어프랑스와 대한항공은 스카이팀이었기에 그렇게 바꾸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다. 차선책으로 이스탄불을 거쳐 가는 터키항공도 있었다. 이는 같은 계열사로 가능성이 커 보였다. 그 외에 에미레이트 항공, 내일 출발하는 아시아나 직항 또는 폴란드항공 동일 일정 등이 가능해 보였다. 아내와 대한항공 타고 갈 수 있다면 참 좋겠다며 웃으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드디어 우리 차례. 공항 직원에게 여권을 건네주자, 그녀는 우리에게 대한항공편을 솔루션으로 제시했다. 지금 내가 처한 어려운 상황을 까맣게 잊은 채, 속으로 환호했다. 아내에게 내용을 전하니 아내도 웃어 보였다. 항공기 취소만 아니었다면 이미 바르샤바에 도착해 다음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을 시간이지만, 두 사람 모두 뭐가 좋다고 웃고 있는 걸까. 예약 내용이 인쇄된 종이 한 장을 받아 들고 근처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제 좀 마음이 진정된다. 베니스 공항에 대략 7시간 넘게 대기해야 하는 상당히 불편한 상황이지만, 해결이 돼서 참 다행이다.

무엇보다 대한항공을 타고 갈 수 있었다는 생각에 한편으로 위안이 되기도 했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외항사를 이용해 장거리 비행을 하는 것도 조금은 부담이 됐었기 때문이다. 가격이 저렴해 폴란드항공을 예약했지만 부담스러웠다. 혹여나 아이가 울거나 아프면 제대로 도움을 요청할 수나 있을 것인지. 그런 의미에서 대한항공을 탈 수 있게 되어 다행이었다. 근래 한진 그룹 오너 일가의 갑질 문제가 사회문제로 이슈화되었고, 분명 잘못된 점이 있다고 느끼지만, 대한항공을 타게 되어 마음이 안정된다니 사람이 참 간사하다. 머리로는 사회적으로 잘못되었음을 비판하고 불매운동까지도 고민하면서도, 내가 처한 상황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나의 감정 사이에 부조화가 있다고 느낀다.

어찌 되었건, 한결 여유가 생긴 아내와 나는 14시가 되어서야 비로소 점심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베니스 공항 자체가 그리 크지 않아서, 메뉴 선택의 폭은 넓지 않았다. 우리는 바로 식당가로 이동하여 샌드위치, 파스타, 피자 등을 먹기로 했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때마침 세현이도 잠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마르게리따 피자와 알리오 올리오 스파게티를 주문했다. 그리고 음식이 나올 즈음 온이도 잠에서 깼다.


먹어도 먹어도 맛있는 피자 (2018.8. 이탈리아 베니스)
막 잠에서 깬 온이. 잘 자고 일어나 줘서 고마워 (2018.8. 이탈리아 베니스)


이 두 녀석은 우리가 처한 상황을 과연 알고 있을까? 그래도 위기의 순간에 딱 맞춰 낮잠을 자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혹여나 아이들까지 챙겨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우리 부부는 아마 너무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시원한 공항에서 잘 잤나 보다. 때마침 일어난 아이들에게 약간의 음식을 다 먹이고 나서, 파리행 비행시간이 다 되어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는 바로 카운터로 향해 체크인을 완료하고 탑승구역으로 이동했다. 이번에도 우선 입장을 허용해줘서 감사하다. 앞서 겪은 일이 너무 커서 큰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지만, 파리행 항공기도 30분 정도 지연되었다는 안내가 나왔다. 파리에서의 경유 시간이 1시간 45분 정도였기 때문에, 갈아탈 수 있을지 약간의 불안감이 생기긴 했다. 그나마 시간이 다시 10분 앞당겨졌고, 결국 1시간 25분 정도의 환승 시간이 확보되었다. 뭐, 파리에 가서 못 갈아타면 다음 날 비행기로 바꿔주겠지. 한번 겪고 나니 그래도 이제 자신감이 생겼나 보다.

면세구역에 들어와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한 이탈리아 여학생(?)을 만났다. 내가 화장실 간 사이 아내와 대화 중이었는데, 특이하게 학생도 서울로 여행(표현대로라면 holiday)을 가는데 비행기가 연착되어 갈아탈 수 있을지 불안하다는 내용이었다. 아니, 우리와 똑같은 상황에 부닥친 이탈리아 사람이라니. 다행히 학생이 영어를 잘했기에 어느 정도 대화는 가능했다. 아니 유창하다기보다는 우리와 비슷한 표현력을 지니고 있어 대화하기 불편하진 않았다.


베니스에서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2018.8. 이탈리아 베니스)


그나저나 우리 부부는 파리와 무슨 인연이 있는 것일까. 의도치 않게 다시 파리로 간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하다. 신혼여행 때 비행기 놓쳐 고생하고도, 다음 여행 때 또다시 고작 1박 일정으로 파리에 들렀다. 2014년에는 파리에서 새벽 로마행 비행기를 놓쳤다. 게다가 이번 여행에서 유모차 파손 사건까지. 좋든 싫든 우리 부부에게 이 도시와 인연이 참 많다. 아니, 솔직히 대부분 부정적 경험이다. 한데 왜 또 생각나고 오고 싶은 것일까?? 파리라는 도시는 참 특별하다. 적어도 나에겐.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사히 파리 샤를 드골 공항 2F 터미널에 도착했다. 아이들도 비행기 안에서 잘 버텨주었다. 우리 가족, 그리고 아까 만난 이탈리아 여학생과 함께였다. 아마도 서로 의지하고 있었나 보다. 그 학생도 지금 안 좋은 상황에 놓여있지만,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된다. 게다가 외국인과 부모가 대화하는 게 신기했는지, 세현이가 그 학생에게 관심을 보인다. 그 학생도 세현이를 귀엽게 봐주어 참 다행이다. 다섯 사람은 빠른 걸음으로 환승 구역을 통과했고, 대한항공 탑승장이 있는 2E 지역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우려와 달리 탑승까지 50분 넘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저녁을 제대로 못 먹었기에 커피와 음료, 마카롱 등을 사서 간단히 요기하고 비행기에 올라갔다.

인천행 비행기 출발 시각은 밤 9시경. 파리를 떠나는 대한항공 항공편은 A380으로 초대형 기종이다. 한국을 떠나 오는 독일행 아시아나 항공기도 같은 기종이었다. 비행기 크기가 큰 만큼 정말 많은 한국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항공사 직원들도 정말 많았다. 이젠 정말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아이들 덕분에 빠른 입장이 가능했고, 타이밍 좋게 온이도 잠이 들어서 기분 좋게 탑승할 수 있었다. 우리 좌석은 비행기 후반부 구역 맨 앞줄이었다. 갑작스레 예약이 잡혀 유아 식사는 받지 못했지만, 남는 아기 바구니 설치도 가능하다고 하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우리 구역 담당 승무원도 아이들에게 너무 잘해주어 고마웠다. 어찌 보면 비행 자체로도 힘들 텐데, 지나칠(?) 정도로 친절해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곤히 잠든 두 아들, 여행의 끝 (2018.8. 인천행 비행기)


세현이는 잠시 영상을 보다가 기내식을 먹고 바로 잠들었다. 비록 눕혀서 내 자리 쪽으로 다리를 놓이느라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지만, 착륙 직전까지 계속 자서 고마울 따름이다. 문제는 세온이. 자다 깨기를 계속 반복했다. 아내가 수유해서 재우면 금방 깨고 다시 수유해서 재우면 또 금방 깨기를 반복. 아내가 비행하는 내내 고생했다. 이럴 땐 녀석에게 아빠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아내 눈치 보는 일밖에는. 여하간 쉽진 않았지만, 밤 비행이라 아이들이 계속 자면서 왔기에 서울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인천에 도착하니 오후 시간이다. 만약 폴란드항공을 타고 왔다면 새벽에 도착했을 터. 그래도 반나절 정도만 늦어지고 한국에 돌아와 참 다행이다. 아니, 무사히 돌아와서 무조건 감사하다. 우리는 수화물을 찾고, 입국장 밖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기 전 이번 여행에 마지막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베니스에서부터 힘들게 같은 일정으로 인천에 온 이탈리아 학생을 돕는 일이다. 보아하니 한국에 처음이고, 알고 있는 정보가 많지는 않아 보였다. 우리가 베니스 공항에서 느꼈던 답답함을 그녀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에, 공항 내 편의점에서 티머니 카드를 사서 건네주고, 숙소(명동 게스트하우스)까지 가는 6015 버스를 안내해 주었다.

세현이는 갑작스레 생긴 외국인 친구와의 작별이 아쉬운 눈치다. 같이 사진이라도 남겨 줄걸, 또다시 지나고 나서 후회만 한다.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잖은 에너지가 필요한 것 같다. 아마도 그럴만한 에너지가 나에게도, 아내에게도 없었던 것은 아닌지. 여행을 다닐 때마다 사실 외국 친구들을 만나고 대화할 기회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늘 나와 아내는 그 상황을 어려워했었다. 좀 더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게 참 어렵다. 더군다나 안 되는 외국어를 써 가며 친구를 사귀는 일은 너무 큰 에너지를 소비해야만 한다.

공항철도를 타고 디지털미디어시티역까지 와서, 마중 나온 할머니 덕분에 편하게 집에 도착했다. 여행의 시작도, 여행의 끝도 도움을 주셔서 참 감사하다. 3주 동안 자식들과 손주들 걱정을 얼마나 하셨을까. 죄송하고 또 감사하다.

이렇게 아이들과의 첫 유럽 여행이 끝났다.

여행의 길에서 느낀 즐거움과 힘듦 모두 뒤로한 채, 집에 도착하자마자 시차 적응, 아이들 밥 먹이기, 짐 정리와 빨래, 사진 정리 등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학교 방학은 며칠 남아 있지도 않다. 곧 개학을 준비해야 하는 처지다.

여행의 끝은 늘 씁쓸하다. 마치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 잠시간의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하지만 아무리 씁쓸한 감정이 들고 정신이 없어도, 감사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독일에서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를 거쳐 다시 이탈리아까지. 그 많은 도시를 이동하기 위해 정말 많이 비행기와 기차를 타야만 했다. 또 네 가족 짐은 어찌나 많은지, 그 많은 짐과 유모차를 끌고 도시와 도시를 이동하는 것이 참 힘들었다. 유모차가 고장이 난 사건은 또 어떤가. 돌이켜 보면 사서 고생한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그 멀리까지 네 사람 모두 한번 아프지 않고 집에 무사히 돌아와 감사한 마음이 가장 크다. 나는 배에 약간의 화상을 입었지만, 그래도 나라서 다행이다. 이 정도는 괜찮다. 무엇보다 아프지 않고 묵묵히 옆을 지켜준 아내, 그리고 두 아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매번 여행을 마치고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내가 나한테 이야기한다.

“너무 힘들었어. 이제 당분간 여행을 가지 않을 거야”

나는 대답한다.

“그래, 힘들었지. 고생했어. 나도 이제 더는 힘들다.”

하지만 나의 이 대답이 진심이 아님을, 나도 알고 아내도 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또 여행 계획을 세우고, 아내한테 이야기하겠지. 우리 여행은 늘 그렇게 시작된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나는, 아내는, 그리고 세현이와 세온이는 무엇을 배웠을까. 우리들의 관계는 어떤가. 조금은 더 가까워졌을까? 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었음을 느낄 수 있을까?

아이들이 너무 어려 아마도 우리 첫 유럽 여행을 기억하긴 어렵겠지만, 나와 아내에게만큼은 앞으로 아이들과 지내며 어려운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자양분이 될 것이라 믿는다. 우리 부부의 추억이 담긴 여러 도시를 배경으로, 네 살, 두 살 아들들의 가장 귀여운 모습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나와 아내는 평생 이 사진들을 꺼내볼 것이다. 그리고 이 추억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언제, 어디가 될지 모르지만, 다음 여행을 떠날 땐 아마 우리 네 사람 모두 더 자라 있겠지. 특히 세현이 세온이가 여행의 매 순간을 추억할 수 있는 그때가 오면 좋겠다.

아내와 두 아들에게 존경의 마음을 전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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