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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화 Jun 29. 2020

어머님, 이제는 그만 하실 때도 되지 않았나요?

소중한 사람, 어머니

어느 조용하고 평화롭던 집안의 맏며느리가 된지도 21년째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며느리  생활은 행복했지만 나름 굴곡이 있었다. 


분가하기 전의 삶은 시부모님의 일거수일투족, 또는 우리 가족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드러나 그 가운데 예의범절을 지키면서 살아야 했기에 아무래도 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삶이 결코 싫었던 것은 아니지만 자유롭지 못하다는 불편함이 있었다. 늘 조심스러운 마음가짐을 갖고 행동해야 했고 시부모님의 안색을 늘 살펴야 했고 우리 가족 또한 불편함을 끼치지 않도록 애써야 했다. 그랬다. 되도록 폐 끼치지 않으면서 적어도 걱정을 안겨드려서는 안 되겠다는.


그래서 나도 모르게 온 정신은 늘 긴장한 상태였다. 결혼하여 사는 삶이 이런 건가 보다 하며 자연스럽게 그 삶에 젖어들 즈음.

갑자기 분가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새로운 집에 입성하여 시작된 우리 가족만의 삶. 예의범절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유로움을 표출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우선 즉각적으로 달라진 것은 경직되었던 나의 몸과 마음이 한결 유연해졌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편안한 의상을 마음대로 입을 수 있다는 것. (편안한 홈웨어를 의미-짧은 반바지, 민소매 셔츠, 민소매 원피스)

덜 조신해도 된다는 것. (내면에 숨겨져 있는 나도 모르는 본능적인 호들갑스러움이랄까.)

집안일을 잠시 미뤄둬도 괜찮을 수 있다는 것.

낡은 것을 마음대로 버릴 수 있다는 것.

가족여행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는 것. (시부모님은 거의 휴일 없이 일을 하기 때문에 같이 여행 가기가 어렵다. 아주 가끔씩은 가지만.)

아이들 앞에서 온갖 애교를 부릴 수 있고 맘껏 장난을 칠 수 있는 엄마일 수 있다는 것.  


분가하기 전에 저렇게 살았다 해도 아무런 말을 하는 시부모님은 아니지만 며느리였던 나는 시부모님 앞에서 완벽하고 싶어 하는 습성이 있었다.


왜 나는 편안하게 있지 못할까?

왜 자꾸 책잡히지 않기 위해 노력할까?

왜 자꾸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면서 몸과 마음이 경직될까?

왜 자유할 수 있는데도 자유하지 못하다고 느낄까?


이런 습성은 결손가정에서 살아왔던 나의 삶에 대한 자격지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의 자격지심은 결혼 이후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위축되어 있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데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데도 나 홀로 애쓰고 있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것이 늘 신경 쓰였고 그렇게 살아온 삶이 결혼하여 사는 삶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다. 그렇게 자격지심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가고 있던 중 어머님은 끊임없이 우리 집에 뭔가를 날랐다.


분가하면서부터 각종 김치, 식재료, 과일 생필품을 한 달에 2~3회에 걸쳐 정기적으로 날라줬다. 전형적인 캥거루족이었다. 세밀하게 신경 써주는 것이 처음에는 감동스러웠고 기뻤다. 육아 때문에 배려해 주는 것이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이러한 어머님의 챙겨줌이 몇 년 동안 지속되다 보니 부담스럽다 못해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아니 한계에 치달았다. 챙겨주지 않아도 얼마든지 해 먹을 수 있는데. 아무것도 사다 주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 경제적으로도 안정이 되었는데. 아무리 거절을 해도 어머님은 무조건 무조건이었다.


어느 날 어머님께 전화를 했다.


"어머님, 그동안 김치부터 식재료며 과일을 늘 사다 주셔서 감사했어요. 이젠 그러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더 이상 어머님께서 고생하시는 것이 싫어요. 그리고  더 이상 냉장고에 넣을 곳이 없어 버려지게 되는 것이 많기도 하고요. 그러니 어머님, 이제 그러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월급 받고 살면서 얼마나 쪼들리겠어. 뭐 사다준 것도 없는데. 그려, 걱정하지 마."


늘 똑같은 부탁과 똑같은 대답의 연속이었다. 우리 가족의 음식 소비 속도가 어머님이 김치, 식재료, 과일을 날라주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어머님의 배려가 스트레스로 자리 잡아갔다.


남편과 부부싸움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 많은 김치와 식재료를 다 어떻게 먹어. 버리는 게 더 많아. 스트레스받아."

"그냥 어머니가 주는 사랑이라고 여기면 안 돼? 뭐 스트레스까지 받고 그래."

"지나치게 챙겨주시고 또 받기만 하니까 부담될 수밖에 없잖아. 또 버려지는 것이 너무 많아서 아깝기도 하고."

"알았어. 어머니께 말씀드려 볼게."


남편과도 티격태격하는 날이 종종 있었다. 그럴 때마다 불필요하게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니 더욱 속상했다. 아버님께도 부탁을 해 보았지만 어머님은 변함없이 무조건 무조건이었다.

결국은 체념하기로 했다. 어머님은 변함이 없는데 자꾸 거절하게 되니 오히려 상처를 주게 되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어머님과의 이런 일로 신경을 쓰게 되니 버티는데 한계가 왔다.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일까. 남는 것은 버리더라도 그냥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야겠다고 결론지었다. 또 다른 방법은 이웃과 나눠먹기로 했다.


그렇게 체념한 이후에는 어머님의 마음을 받았다.  자식을 독립시키지 못한 어머님. 이제는 그만해도 되는 일을 계속하고 있는 어느새 연세가 지긋해진 어머님이 그저  안쓰러웠다. 그냥 어머님을  이해하고 존중하기로 했다. 결혼한지 2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70세를 앞둔 어머님은 여전히 각종 김치, 식재료, 과일, 생필품을 나르고 있다.


'어머님, 이제는 그만하실 때도 되지 않았나요?

어머님, 그거 아세요? 어머님의 수줍은 미소가 어머님이 고생하는 모습을 가슴 아프게 한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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