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야화 Jun 24. 2020

나는 백년손님?

소중한 사람, 어머니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그 당시 초등학이던 동생과 나는 명절을 손꼽아 기다렸다. 삼촌들이 선물로 과자 종합세트를 사 왔고 용돈도 주었기 때문이다. 시골에서의 생활은 뭐든지 넉넉하지 않았다. 별다른 간식거리가 없었으니 그 어린 시절 명절 때 받은 과자 종합 선물세트는 최고의 간식거리이자 선물이었다. 그러니 명절이 기다려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명절 전날이 되면 의례히 할머니는 우에게 송편을 빚게 했다.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면 우리는 어설프지만 송편을 열심히 빚었다. 빚다 보면 제법 모양이 갖춰졌다. 작은 손으로 마치 미술시간 찰흙공예를 하듯 빚다 보면 어느새 큰 쌀 반죽 덩어리가 금세 작아졌다. 동부로 만든 소가 다 떨어지면 검정콩을 남아있는 쌀 반죽에 섞어 송편을 빚었다. 어느새 송편 만들기는 끝이 난다.


굴뚝에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부엌에서는 들기름 향내가 진동한다. 들기름 향내는 식욕을 한껏 돋운다. 할머니는 나물무침, 수육, 모둠전 (녹두전, 배추전, 멸치전)등을 만드느라 분주했다. 명절 음식인 나물무침, 수육, 모둠전 등을 해서 보물 다루듯 보관해 놓았다. 제사상에 올릴 음식이라서 그러했으리라. 그 시절 명절은 먹을 것이 많아져 특별하고 기분 좋은 날이었다. 그뿐인가. 동네 집집마다 찾아오는 손님들로 북적북적 명절은 그렇게 따듯하고 넉넉한 날이기도 했다.


설날에는 만두를 빚는다. 할머니가 재료 준비를 해주면 동생과 만두를 빚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할머니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얼굴이다. 역시 부엌에서는 들기름 향내, 떡국에 올릴 고명(돼지고기에 갖은양념을 하여 자작하게 끊이는 것)  향내가 진동한다. 당장 떡국을 먹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그렇게 명절은 늘 할머니와 함께 음식을 준비했던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결혼한 이후부터는 명절이 다가오면 시댁에 명절 전날 미리 가서 음식 만드는 것을 돕는다. 어머님의 공간은 매우 깨끗하고 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오래된 찬장과 그릇, 오래된 나무 인테리어, 곳곳에 걸려있는 낡은 커튼, 초록이 짙은  화분들 이 모든 풍경이 따듯함으로 다가왔다.


어머님의 손길이 가득한 공간


명절이 다가오면 어린 시절 설레며 기다렸던 기억이 있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결혼하여 맞이한 명절의 음식 문화는 친정과 많이 달랐다. 홍어무침, 10가지 가까이 되는 나물 무침(더덕무침, 도라지나물, 고사리나물, 시금치나물, 숙주나물 , 무나물, 취나물 등), 소고기 산적, 소갈비찜, 잡채, 식혜, 수정과, 모둠전, 나박김치, 배추 겉절이 등 종류가 많았다. 어머님은 이 모든 음식을 만드느라  분주했다.


어머님의 오래된 손길 가득한 공간에서 나는 어머님으로부터 모둠전 부치는 일을 부여받는다. 호박전, 버섯전, 동태전, 고추전, 꼬치전, 동그랑땡, 매생이 전, 굴 전등 다양한 전을 부친다. 전을 부치면서 기름 향내를 맡게 되면 명절임을 실감한다. 전을 부치기 시작하면 어머님은 커피를 맛있게 타 준다. 결혼하여 21주년이 된 현재까지도 변함없이 명절 때마다 커피를 타 주는 어머님. 그 커피를 마시면서 전을 부치면 힘든 줄도 모른다. 시간이 한참 지나면 시원한 수정과나 식혜를 준다. 며느리가 힘들지는 않나 순간순간 배려해 주는 어머님. 그 따듯한 마음에 더 즐겁게 모둠전을 부칠 수 있었다.


시댁에서 명절에 만들었던 모둠전


모둠전을 하기 전에 추석에는 송편, 설날에는 만두를 빚어 놓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어린 시절 명절에 동생과 즐겁게 송편과 만두를 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래서인지 송편, 만두 만드는 것이 즐거웠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며느리들 힘들까 봐 송편과 만두는 시장에서 사다 먹게 되었다.


시댁에서 명절에 만들었던 만두


명절 때마다 모둠전을 다 부치고 나면 그 시간에 맞춰 어머님은 정성스러운 밥상을 차려줬다. 갓 지은 밥, 굴 뭇국, 파래무침 등 기타 여러 가지 반찬은 그 맛이 천상의 맛이었다.

어머님은 명절 음식을 만들게 한 것이 늘 미안했었나 보다. 미안함이 가득한 몸짓과 표정에서 어머님의 배려심을 읽을 수 있었다. 어머님은 맛있는 밥을 먹이고는 수고했다며 수고비(일종의 용돈)를 챙겨주면서 며느리들을 서둘러 집으로 보낸다.

'어머님은 어쩌면 저렇게 배려를 많이 해 주실까? 나는 백년손님도 아닌데. 안 그러셔도 되는데. 왜 늘 혼자 더 고생을 하시는지.'

사위가 백년손님이라고 하는데 마치 며느리인 내가 백년손님이 된 기분이었다.


정작 어머님은 홀로 새벽까지 음식 준비를 마무리한다. 아마도 어머님의 과업이라 여기는 것 같았다. 이 또한 결혼하여 21주년이 된 현재까지도 변함없이 한결같다. 이렇게 분주히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풍경은 어머님이 존재하는 동안일 것이다. 이제는 연세가 있는 어머님이 명절 때마다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 애처로운 마음뿐이다. 아련했던 그 명절 풍경을 할머니가 아닌 어머님과 함께 음미해 왔다.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님과의 그 시간이 점점 더 귀해짐느낀다.











작가의 이전글 소중한 사람, 어머니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