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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화 Jun 22. 2020

어머님표 산후 조리원

소중한 사람, 어머니

15일을 남겨둔 출산예정일.


아침 일찍부터 갑자기 배가 아파져 왔다. 간격을 두고 아팠기에 심상치 않았다. 대구에 살고 있었고 출산은 시댁 가까이에 있는 병원에서 할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진통이 시작된 것이다. 급히 필요한 것들을 챙겨 시댁이 있는 경기도로 향했다. 올라가는 고속도로가 막히기 시작했다. 다시 진통이 시작되었다. 막혀 있는 도로에서 전전긍긍하던 남편은 도로에 있던 경찰한테 도움을 요청했다. 다행히 경찰의 도움으로 경기도에 있는 병원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병원에 갑자기 들어서니 의사 선생님이 당황해했다. 한 번도 진료를 받은 적이 없었다. 출산 2주 전에 올라와 병원에 진료받으러 갈 계획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진통이 시작되면서 병원을 찾았으니 의사 선생님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병원에 입원하여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 어수선한 상황에서 진통 끝에 아이를 낳았다. 드디어 아기를 보게 되었다. 그토록 궁금했던 아기를 보게 되다니, 내가 엄마가 되다니 믿기지 않았다. 신생아실에 있는 아기를 볼 때마다 전율이 느껴졌다. 아기를 향한 모성애였다.


몸이 회복된 후 아기와 함께 퇴원했다. 아기를 안고 움직이는데 아기를 다치게 할까 봐 조심스럽고 무서웠다. 또 아기를 잘 키울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산후조리를 위해 시댁으로 향했다. 남편이 학생이었기에 비싼 산후조리원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때는 태어날 아이를 간절히 기다렸기에 모든 시선이 아이에게 향해 있었다.


내게 온 아이

아직 엄마가 될 준비는 부족하지만

온 마음으로 기쁘게 맞이 할 수 있었고

그토록 어색했던 '엄마'라는 이름

내가 바로 그 엄마가 된 순간

아이를 맞이한 이후

경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몸조리를 위해 시댁으로 향했었다.


끼니마다 정성스러운 음식과  간식을  차려주신 어머님

이른 아침부터 젖병 소독을 해주신 어머님

모든 빨래와 청소를 해주신 어머님

젖 잘 나오라고 돼지족을 끓여 주신 어머님

온몸의 부기 빠지라고 호박즙을 챙겨주신 어머님

어머님표 산호 조리원은 완벽했다.


그러나 경이로움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려보니 곁에 있던 남편은  학교에 다녀야  해서 대구에 있는 집에 돌아가고 없었다. 어려운 시댁에 남편 없이 아이와 남겨진 느낌이었다. 매 끼니를 받아먹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고 부담스러웠다.


왜 어머님께 이 힘든 일을 하게 했는지

 자연스럽게 시댁에 들어왔는지

 돌아갈 수 있는 마땅한 친정이 없는지


갑자기 모든 상황이 내면을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아이를 안고 소리를 죽이며 울곤 했다.

나는 무력했다. 그저 차려주는 밥을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우는 아이를 보면서


아, 내가 엄마가 됐지.

맞아, 나는 엄마야.

아이에게 나는 젖과 사랑을 주는 절대적인 존재인 엄마지.

마냥 슬퍼할 수만은 없었다.

내가 엄마, 엄마, 엄마가 됐다는 것을 실감했다.


작디작은 눈, 코, 입

어디에 둘지 모르는 움직이는 손과 발

여리디 여린 피부와 머리카락

감히 함부로 만지기도 조심스러운

나의 아기가 곁에 와 있음을.


아기는 잠들어 있는 시간이 짧았고 자주 울었다. 아기의 리듬에 맞춰 지내야 했다. 아기가 깨어있을 때 같이 깨어있어야 했고 아기가 자면 같이 자야 했다. 천 기저귀라서 자주 갈아줘야 했다. 자다가 깨면 분유도 수시로 먹여줘야 했다. 심신이 힘들고 피곤이 누적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기를 보고 있으면 금세 힘이 났다. 아기는 모유를 잘 먹지 않았다. 초유라도 짜서 먹이려고 애를 써봤지만 거부했다. 젖을 먹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속상한지 결국 아기는 분유만 먹었다.


초보 엄마라서 뭐든지 서툴렀다. 아기가 왜 우는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한주 두 주 시간이 지나면서 아기가 왜 우는지 어디가 불편한지 알게 되었다. 분유를 먹고 있는 아기의 얼굴을 바라보는데 그 모습이 천사 같았다. 손짓과 발짓은 또 얼마나 귀여운지 하루가 다르게 크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했다. 목욕을 시킬 때가 가장 어려웠는데 가까이 사는 동생이 와서 도움을 주곤 했다. 엄마라는 삶이 시작되었다. 두려웠지만 아기의 얼굴을 볼 때마다 용기가 생겼다.


주말 그토록 기다렸던 남편이 올라와 곁에 있어 줬다.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심신의 안정을 금방 되찾았다.

산후조리 후 처음으로 마당에 나가서 맑은 공기를 마셨다. 아카시아 향기가 진동했다. 가까이에 있는 초록이 무성해진 산에서 바람을 타고 온 아카시아 향기가 모든 슬픔을 잠재워줬다.

맑은 하늘, 적당히 시원한 공기, 산에도 마당에도 초록이 무성했고 촉촉한 습기가 느껴졌다.

엄마가 되어 바라본 자연에서 희망, 기쁨 등 감당할 수 없는 충만함이 밀려왔다.


잊을 수 없는 나날들.

아카시아 꽃향기가 물씬 풍겼던 그해 5월.


보름 정도 산후조리를 끝내고 남편과 함께  대구 집으로 내려왔다. 둘이 아닌 셋이 되어서.


3년 후 아카시아꽃이 활짝 피던 5월에 둘째를 출산했다. 둘째 아이도 5월의 아이라니 우연이었다. 너무나 예쁜 아기가 또 나에게로 왔다. 난 여전히 부족한 거 투성이 인데 어느새 두 아들의 엄마가 되었다. 퇴원 후 다시 시댁에서 산후조리를 했다. 여전히 어머님은 한결같이 끼니마다 정성을 다해 챙겨줬다. 두 번째 어머님표 산후 조리원도 완벽했다. 그러나 도저히 더는 어머님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고 또한 첫 아이를 챙기기 위해 일주일 동안 산후조리를 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님께서 걱정했지만, 마음이 편하고 싶었다.


두 아이를 출산한 후 산후조리를 도맡아 해준 어머님. 어려운 일을 힘든 내색도 없이 정성을 쏟아줬다. 늘 수줍은 미소를 머금고 있던 어머님께 한없이 감사했다.


하느님이 천사 대신 내게 보내준 듯했다. 바로 어머님을.


*사진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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