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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화 Jun 18. 2020

우리 가족의 새로운 집 입성

소중한 사람, 어머니

시댁에서 산 지도 1년이 조금 넘었다. 1층은 두 가구로 나뉘어 있었는데 그중 한 가구에 우리 가족이 살았집이 습해서 벽에 자주 곰팡이가 피어올랐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호흡기 질환을 늘 달고 살았다. 아이를 바라보며 남편이 늘 속상해했다. 시부모님께서 어느 날 갑자기 우리 가족이 살아갈 집을 보러 가자고 했다. 새 아파트에 넓기까지 했으니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결국 큰 아이의 건강을 생각해서 아파트를 마련해 준 것이다. 시부모님 덕분에 너무도 과분한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갑자기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시부모님의 경제력에 놀랐고 배려해주는 마음에 더 놀랐다. 변두리에 있는 아파트였지우리 가족에게는 궁궐 같은 집이었다. 산 밑에 자리 잡고 있어 사계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파트에서 살게 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걸으며 살아왔던 내게는 지금 사 집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그저 가족이 함께 오순도순 웃음꽃이 피어오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하늘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나무와 꽃을 보며 바뀌는 계절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곧 태어날 아이까지 내 편이 3명이나 생겼다는 것.

내가 나로서 온전히 존재한다는 것.

존중받고 있다는 것.

사랑하며 살아간다는 것.

사랑을 받으며 살아간다는 것.


이 모든 것이 갑자기 내게로 찾아왔다. 전율이 느껴졌다.

여기에 더불어 더 좋은 환경의 집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은 현재를 넘어 앞으로 펼쳐질 지속 가능한 나의 미래의 모습이기도 했다. 충만한 삶을 살아본 기억이 없다. 아니 그런 삶은 태초부터 불가능했다. 그런데 그 충만한 삶이 기적처럼 내게로 찾아왔다.


결혼 이전의 삶과는 완전히 다른 삶이 펼쳐지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일들이 현실인가. 누가 나를 이전의 삶과 완전히 다른 세계로 옮겨놓았나. 행복한 당황스러움이었다.

 

시댁에서 나올 때 아버님이 서운해했지만 감사한 마음을 품고 큰아이 세 살, 둘째를 임신한 지 5개월 되었을 때 드디어 새로운 집에 입성했다.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새 아파트에 살게 되다니 꿈만 같았다. 무엇보다도 분가하면 더는 어머님이 우리 가족 때문에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다행이었다.

온갖 반찬을 해줬고 돈 들어갈 일이 생기면 늘 어머님이 신경을 썼으니 마음이 편치 않았었다. 이제는 어머님이 편하게 지낼 수 있게 되어 안심하고 있던 터였다.


그러나 그것은 나만의 큰 착각이었음을.

어머님은 오히려 더 많은 종류의 각종 반찬을 아버님을 통해 보내왔다. 배추김치는 기본이고 계절에 따라 깍두기, 물김치, 파김치, 총각김치 등 김치의 종류가 다양했다.

또한, 어머님이 직접 가꾸던 소중한 화초 중 우리 집에 어울릴만한 것으로 여러 개 챙겨줬다. 그뿐만 아니라 여분의 그릇과 냄비 등 필요한 것들을 계속 챙겨 줬다. 마치 여느 집의 친정엄마처럼.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오히려 더 신경 쓰게 한 셈이 되었으니 너무 죄송해서 마음이 다시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해드리는 것 없이 받기만 하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천사 같은 어머님의 마음을 뿌리칠 수 없어서 주시는 것 모두 감사히 받았다.


언젠가는 냉장고가 꽉 차서 들어갈 곳이 없었는데 수박을 사다 줬다. 김치냉장고에 있던 김치통을 꺼내놓고 그 자리에 수박을 넣어놨다가 남편한테 핀잔을 들은 기억이 있다. 수박보다는 직접 만들어 준 김치가 훨씬 더 소중한 것이었으니까.


어머님의 세심한 배려가 부담스러웠지만, 묵묵히 채워주기만 하는, 부족한 것이 없는지 늘 살펴주는 그런 어머님의 따듯한 마음에 어느새 물들고 있었다.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컸기에 살뜰히 챙겨주는 어머님이 낯설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어머님의 모습에 '이런 것이 사랑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집에 입성하여 시작된 삶.

오로지 우리 가족만이.

온전히 아내로 엄마로 살아가는 삶.

행복한 삶이 시작되었다.


둘째가 태어나고 큰아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고 남편은 건강한 모습으로 회사에 다니고 나는 집안일과 육아로 보통의 가족처럼 자연스러운 삶을 새로운 집에서 영위했다.


꿈꿔보지도 못했던 보통 가족의 삶, 그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축복 그 자체였다.  어머님의 배려로 살게 된 집에서 사랑이 꽃피는 가족이 되어갔다.


*사진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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