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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화 Jul 02. 2020

거대한 선물

소중한 사람, 어머니

선물은 생각만 해도 설렌다. 어떤 선물일까. 어떤 마음으로 준비한 선물일까. 선물은 상상 속에서나 있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선물을 받아본 기억은 없지만, 생일이 되면 할머니가 끓여주던 닭 미역국이 떠오른다. 그 닭 미역국을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으로 여기며 기쁨 가득히 한 그릇을 뚝딱 먹었던 기억이 있다. 닭 미역국은 할머니의 사랑이 가득 담긴 소박한 생일 선물이었다. 어린 시절 몇 되지 않는 따듯한 기억 중 하나다. 생일은 그렇게 따듯한 닭 미역국이면 충분한 날이었다.


결혼 이후, 이전의 소박했던 생일 때와는 완전히 다른 놀라운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다.


우리 가족이 새로운 집에 입성한 후 몇 달 있다가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두 아이의 육아가 시작된 것이다. 내게 온 아이들이 너무 예쁘고 소중해서 아무리 힘들고 피곤해도 견딜 수 있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두 아이에게 온 마음으로 사랑을 쏟았다. 육아로 바쁜 가운데 웃음꽃이 활짝 피어나는 한 가정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여름이 가고 늦가을 내 생일이 다가올 무렵.


어머님은 생일이 되기 일주일 전부터 생일 선물이라며 화장품과 귀금속을 주기 시작했다. '어머님은 생일 선물을 미리 챙겨주시네.'라며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흐르고 생일을 맞이한 아침 일찍 전화벨이 울렸다. 아버님이었다.

"밑에 내려와 봐."

"네, 아버님."

얼른 내려가 보았다. 1층 엘리베이터 앞에 어머님이 보내준 어마어마한 뭔가가 있었다. 너무 놀라서 물어보았다.

"아버님, 이게 다 뭐예요?"

아버님은 대답 대신

"생일 축하해."

라고 말하며 금일봉을 건네주었다.

"돈까지 주시고 너무 과하세요."

아버님은 출근길이라서 선물을 전달해 주고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아버님 뒷모습을 보며 인사를 했다.

"아버님, 감사합니다."


또 다른 선물을 챙겨준 것이다. 어마어마한 뭔가를 집으로 옮긴 후 풀어보았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잔칫집 음식이 한가득하였다.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이번엔 어머님이었다.

"생일 축하해."

"네, 어머님 감사드려요. 그런데 이 음식 뭐예요?"

"별거 아니여. 저녁에 케이크 사서 가져갈게."

"아니에요. 그냥 오셔도 돼요. 그런데 어머님 음식을 왜 이렇게 많이 하셨어요? 깜짝 놀랐어요."

"맛이나 있을지 모르겄네. 이따가 갈게."

어머님은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뜻밖의 일이라서 잠깐 멍하니 서 있었다.


내 생애 이렇게 거대한 생일 선물은 처음 받아 보았다.

어머님께 받은 생일 선물


'이 많은 음식을 다 하시다니.' 너무 당황스럽고 놀라웠다. 내가 이런 것을 받아도 되는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저녁이 되어서 아버님, 어머님이 왔다. 그런데 또 아버님 손에는 케이크, 어머님 손에는 커다란 꽃바구니가 들려있는 것이 아닌가. 어머님은

"생일 축하해."

말하면서 꽃바구니를 안겨주었다.

"어머님, 이 꽃바구니는 또 뭐예요? 아 어떡해요. 왜 이렇게 많이 주세요. 이미 많이 주셨는데요."

너무 큰 관심에 마음을 진정할 수가 없었다.


우리 가족, 아버님, 어머님과 함께 간단한 다과 시간을 갖기 전에 케이크에 꽂아놓은 촛불을 끄며  온 가족의 축하를 받았다. 아버님, 어머님은 나보다 더 기뻐해 줬다.

'이렇게 큰 관심으로  축하해 주시다니.'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생일 축하를 받으면서 지난날의 불행했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불행했던 지난날들 속에서 어느 날 사랑이 찾아왔고 결혼이라는 또 다른 삶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결혼 생활은 다행스럽게도 내 행복의 시작이었다. 남편은 자상했고 소통이 잘 됐으며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행복한 가정으로 완성되어가는 느낌이었다.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건가.'

게다가 시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지까지 받고 살다니 꿈만 같았다.


거대한 음식, 화장품, 귀금속, 금일봉, 꽃바구니, 케이크.

생일에 받은 선물 목록이다. 너무 과분한 선물이었다. 그렇게 생일을 어안이 벙벙해하며 보냈다. 어머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어머님은 생일이 되기 일주일 전부터 귀금속점에 가서 귀걸이를 고르느라 애썼을 것이고 화장품도 예약해놓았을 것이다. 생일 음식은 잠도 못 자고 밤새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 어머님의 정성이 담긴 선물이라니. 이 거대한 선물은 그 어떤 표현으로도 부족할 만큼 커다란 감동을 안겨주었다.


다음날 어머님께 전화해서 진심 어린 마음을 전했다.

"어머님, 저예요. 생일을 이렇게까지 챙겨주셔서 감사드려요. 음식 만드시느라 고생 많으셨지요? 음식 맛있게 잘 먹을게요."

"아니여, 뭐 해준 것도 없는데."

어머님은 많이 베풀어 주면서 해준 게 없다고 했다.


결혼 후 시부모님이 챙겨준 첫 생일은  잊히지 않는다. 태어나서 생일에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아본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해마다 찾아오는 생일을 어머님은 이전의 생일과 똑같이 챙겨줬다. 여전히 밤새워서 음식을 만들어서 보내줬고 화장품, 귀금속, 금일봉, 케이크, 꽃바구니까지 변함없이 챙겨줬다. 그렇게 몇 년 동안은 기쁘게 생일을 보냈다. 육아로 바빠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랬기에 늘 챙겨주는 생일 선물을 기쁜 마음으로 받았다. 큰아이가 7살 둘째 아이가 4살 정도 되니 육아가 덜 힘들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다니기도 했으니까.

그렇게 여유가 생기다 보니 어머님이 챙겨주는 거대한 생일 선물이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왜냐하면 처음 한두 번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3년이 흘러도 4년이 흘 5년째가 되어도 어머님은 변함이 없었다.


생일이 다가오기 전 곰곰이 생각한 끝에 어느 날 어머님께 전화했다.


"어머님, 이제는 제 생일에 이렇게까지 힘들게 하지 마세요. 어머님이 밤새워 음식 해주시는 거 부담스러워요. 이젠 받기가 죄송해요. 어머님이 밤새워서 만든 음식을 어떻게 먹어요."

"내가 서운해서 그려. 신경 쓰지 마."

"그냥 케이크만 놓고 해도 돼요. 아무것도 안 해주셔도 어머님 마음 이미 충분히 알아요. 어머님 마음이 가장 큰 선물이에요. 이젠 고생하지 마세요."

"알았어. 걱정하지 마."

어머님은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어머님은 변함이 없었고 결혼한 지 6년째도 10년째도 15년째도 20년째도 그렇게 어머니의 거대한 생일 선물은 한결같았다.


아마도 세상에 이런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것 같았다. 어머님이 대단해 보였다. 어머님의 한결같은 진심 앞에서 난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머님이 주는 마음은 순수한 사랑 덩어리였다.

언제부턴가 어머님이 챙겨주는 사랑 덩어리를 무조건 받았다.

가슴 깊이 감사하고 기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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