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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화 Jul 06. 2020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소중한 사람, 어머니

어머님은 애석하게도 48세에 시어머니가 되었고 49세에 할머니가 되었다. 지금은 69세이다. 남편이 장남인 데다가 결혼을 일찍 했기에 어머님은 너무 이르게 시어머니, 할머니가 되었다. 지금의 내 나이 즈음에 그렇게 되었으니 난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몇 년 후 행여나 아들이 일찍 결혼하게 된다면 어떨까? 내가 시어머니, 할머니가 된다는 건 아직 자신이 없다. 나는 아직 영글지 않은 어른이기 때문이다. 아직 부족한 채로 자연스럽게 지내는 것이 좋지 영글지 않은 채로 어른인 척 산다는 것은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남편과 나는 도대체 어머님께 무슨 짓을 한 건지. 어머님의 마음은 얼마나 무거웠을까. 어머님을 너무 젊은 나이에 시어머니, 할머니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왜 중년이 된 지금에서야 죄송한 마음이 가득해지는지.


나의 형편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결혼하기 전부터 어머님은 내가 상처 받을까 봐 세심하게 배려를 해주려 노력했다. 어머님의 배려심이 얼마나 따듯하던지 그때부터 어머님을 좋아했다. 자식이 결혼한 이후부터 어머님은 어머니, 할머니로서의 또 다른 대여정이 시작된다.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어머님은 갑자기 결혼하게 된 아들의 생계부터(학생이라서 생활비를 지원받음) 곧 태어난 손자까지 세심하게 신경 써줬다. 시댁에 들어가 1년 남짓 사는 동안에도 생활비에 반찬까지 챙겨줬다. 그럴 때마다 경제적으로 독립을 못 한 자식 입장에서 좌불안석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곧 취직이 되었다.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게 된 것이다.


갑자기 큰아 건강상의 이유로 분가를 하게 되었는데 어머님이 아들 앞으로 오랫동안 열심히 모아둔 적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돈으로 시부모님은 아파트를 장만해준 것이다. 시부모님의 큰 희생에 놀랄 뿐이었다. 아마도 책임감이었으리라.


첫째가 태어난 이후부터 어머님이 시작한 일이 있다. 바로 정기적으로 손자의 옷을 사는 것이었다. 아직 우리의 형편으로는 가끔 살 수 있는 브랜드 옷을 어머님은 다양하게 사서 갖다 줬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서 그 아이 옷까지 사서 갖다 줬다. 부담을 드리게 되어 죄송해서 어머님께 만류도 해봤지만, 한편으로는 어머님이 진심으로 손자들 옷 쇼핑하는 것을 즐기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두 아이가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대부분의 의류는 모두 어머님이 챙겨줬다. 중학생이 된 이후로는 본인들의 취향 때문에 어머님은 정기적으로 현금을 챙겨주며 아이들이 마음에 드는 것으로 사주라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명절은 설빔, 추석빔이라는 이유로 현금을 주며 아이들 옷을 사주라고 했다. 큰아이가 자라서 대학생이 된 현재까지도 용돈을 챙겨주고 있고 물론 고등학생인 둘째 아이의 용돈까지 챙겨주고 있다. 이 과분한 챙김에 대하여 너무 과하다고 말하면 어머님은 늘 수줍은 미소가 대답이었다. 나름 챙겨주는 기쁨이 컸던 것일까. 그런 어머님께 감사하면서도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희생만 하는 어머님 같아서.

베풀기만 하는 어머님 같아서.


그런 어머님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아버님께 어머님의 과한 챙김에 대하여 부탁해보았다.

"아버님, 어머님 좀 말려주세요. 이젠 그만하셔도 되는데요."

"어머니는 청소하는 것, 김치 만드는 것, 가족들 챙겨주는 게 취미여."

아버님도 어쩌지 못하는 일이었다.


이밖에도 어머님은 김치, 식자재, 과일, 생필품을 결혼 이후부터 현재까지 정기적으로 챙겨주고 있다. 우리 집뿐만 아이라 결혼한 둘째 아들 집에도 챙겨주고 있다. 또한 큰 며느리, 작은 며느리의 생일까지 변함없이 챙겨주고 있다.


그렇게 하는 어머님이 나는 생각만 해도 숨이 턱 막혔다. 왜 그 많은 것들에 대하여 지나친 희생을 자처하는지. 어머님 몸은 하나인데 여러 사람이 해야 할 몫을 홀로 온전히 감당는지. 물론 경제적인 뒷받침이 되어주는 아버님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들이었다. 그렇지만 아버님은 어머님이 지나치게 고생하는 것을 탐탁지 않아했다.

어머님은 아버님의 사랑하는 여자였을 테니까 고생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어머님의 희생이 더 안타까웠다.


희생이라는 그 이름의 대여정, 가족 사랑이 취미인 어머님의 마이웨이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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