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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화 Jul 13. 2020

너무 아름다워서

소중한 사람, 어머니

곁에서 지켜봤던 어머님의 삶은 모든 면에서 인상적이었다.


어머님은 매일 집안을 구석구석 부지런히 청소한다. 바닥이며 선반 창틀 등 그 어디나 반짝반짝 항상 깔끔했다. 어머님만의 루틴이 있다. 언제나 정해진 그 시간에 수건을 삶고 집 안 청소, 마당 청소를 했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다. 그것은 게으름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계절 따라 김치를 만들 때 어머님만의 작은 연구를 한다. 오이 물김치를 만들면 장식이 되는 당근을 이런 모양으로 할까 저런 모양으로 할 거라던가. 오이지를 담을 때는 소금물을 사용해 담아봤다가 오이 자체에서 나오는 수분을 이용해 담아봤다가 더 맛있는 방법으로 결정한다던가. 어머님은 매일 하는 요리 하나하나에도 온 정성을 쏟았다. 그러니 어찌 맛이 없을 수 있겠는가. 평생 일을 하면서 집안일을 병행했지만, 어느 것 하나 빈틈이 없었다.


봄이 오면 마당의 텃밭에 고추, 상추, 강낭콩을 심고 마당에서는 고추장을 담는다.

여름에는 그 마당에서 매실 효소, 오이지를 담고 열무 물김치를 담는다. 

가을부터는 보름에 먹을 토란대, 고구마 줄기, 시래기, 각종 나물 종류를 따사로운 가을볕에 말리기 시작한다. 늦봄 마당에 심어놓았던 강낭콩도 수확하여 날라주고 마당의 중간에 있는 감나무에 탐스럽게 열렸던 단감도 따서 날라준다. 늦가을에는 겨우내 먹을 멥쌀과 찹쌀, 콩류, 고구마를 구매하여 보관해놓는다.

초겨울이 되면 마당에서 김장을 끝으로 한해의 먹거리를 갈무리한다.


겨울, 어머님의 작은 정원은 차디찬 기다란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얼어붙어 있던 정원은 동백나무, 향나무만이 하얀 눈 속에서 초록빛을 머금고 있었다. 정원 한편에 묻어놓은 항아리에서는 잘 숙성된 김치를 맛볼 수 있었다. 땅이 녹기 시작하면서 슬며시 찾아온 봄의 정원은 생기가 돌았다. 은행나무와 감나무엔 연둣빛의 작은 잎이 얼굴을 내밀었다. 어머님은 정원 한 귀퉁이에 있는 텃밭을 일궈서 야채를 심었고 정원에서 차례로 자라나는  화초들을 가꿨다. 정원은 금세 초록빛으로 무성해졌다.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면 텃밭에 재배해 놓은 풋고추, 상추, 강낭콩을 먹을 수 있었다. 그야말로 사랑이 흐르는 보물이 가득한 정원이었다.


각각의 계절에 맞춰 먹거리를 미리 준비해 놓는 삶. 바로 선조들로부터 내려온 생활방식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삶이었다. 집안의 아내 또는 어머니가 가장 신경 써야 할 일이었다.  

어머님은 어머님의 어머니가 살아온 삶을 엿보며 자연스럽게 그러한 삶이 체득되었으리라. 어느 순간부터 오늘날 삶의 형태는 급변했고 어머님의 무거운 삶(짊어지는 삶)은 바쁘게 돌아가는 삶과는 많이 달랐다. 나부터도 점점 더 간소하고 가볍게 살기를 원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런 어머님의 삶을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하듯 지켜보기 시작했다. 너무 아름다워서.


제때 뭔가 만들어놓고 양식을 비축해 놓아야 하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삶을 어머님을 통해 알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나는 어머님처럼 살 자신은 없었다. 급변하는 삶의 형태를 핑계로 결혼 이후 어머님 생신상을 10년만 챙겨주고 그 이후엔 외식으로 대신했다. 김치도 몇 번 담아보지도 않은 무늬만 며느리였고 착하고 좋은 며느리가 되지도 못했다. 그런 며느리를 어머님은 가족이었기에 최선을  다해 정성을 쏟아준 것이다.


그랬던 어머님께 수술 당시 속상함을 내비쳤던 이후로 내내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시선으로 바라본 어머님 얼굴이 시무룩해 보여서 밥을 먹고 얹힌 것처럼 가슴이 꽉 막혔다.


'어머님이 짠해 보여요. 너무 애쓰시는 모습이. 무거운 짐을 지고 그저 묵묵히 살아가시는 모습이 제 마음에 자꾸만 걸려요. 저는 어찌해야 하나요. 저도 나름대로 애쓰지만요. 어떠한 위로와 힘도 되어 드리지 못하잖아요. 그저 기도할 뿐이에요. 어머님께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요.'


추석이 다가왔다. 시댁에 가서 음식 준비하기 전에 어머님께 다가가

"어머님, 그동안 어머님 속상하게 만들었어요.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그 순간 어머님 얼굴이 환해지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어머님 그때 왜 그러셨어요?"

"며느리 고생시킬까 봐 그랬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머님은 그게 진짜 진실이었으니깐. 그렇게 단단했던 벽이 무너지면서 다시 어머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다. 그 이후로 어머님은 더 많은 정성을 쏟아줬다.


시간이 흐르고 보니 뭐 그리 머리 아프게 살았나 싶고, 애쓰고 살아야 마음이 편한 어머님을 존중해주기만 하면 되는데 뭐가 그리 어려웠나 싶다. 


다시 어머님의 삶을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 천만다행이었다. 어머님의 삶을 지켜보는 것이 나의  즐거움이자 교과서이기도 했으니깐.  인내심, 책임감, 생활력, 참을성, 관찰력 등을 배우게 된다. 여전히 내겐 너무도 부족한 것들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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